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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Apr 09. 2021

봄이고, 오늘 나는 몇 번 더 웃었다.

언제나 겨울이 좋았다. 나는 바람이 차가워지면 겹겹이 옷을 입어야만 계절을   있는 사람이지만, 스무  언저리부터 눈의 나라에 가고 싶었다. 눈이 많은 곳에 가기 전에 평소에는 입지도 않는  패딩을 사고, 부츠도 샀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난 여행이지만 준비할 겨를도 없이 마음과 삶이 온통 흔들렸던 시간을 보냈다. 여행에서 돌아와도 일상으로 돌아갈  없었다. 아니, 매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누군가를 삶에서 지우기 위해 애쓰고, 다친 마음을 부둥켜안고 울면서 보냈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없는 순간들을 헤아리다 지쳐 내가 달아나기 위해 보낸  번의 겨울과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그렇게 보냈던 계절은 매일이 겨울이었다.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 추운 겨울도, 하얀 눈도 싫다고 적었다. 항상 가고 싶던 곳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됐다. 그곳에서의 겨울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프다.


“밖이 좀 추울까?”


비가 내리고 있으니 당연히 춥지 않을까. 모든 계절마다 추위를 타는 나는 나가기 전에 몇 번을 고민했다. 반팔만 입고 위에 봄 코트를 입었다. 왼 손에는 카디건을 쥐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서면 춥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나는 여름에도 간혹 옷깃을 여미는 사람이니까. 늘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는 사람이니까.


문을 나서며 우산을 챙겼다. 비가 많이 내린다. 혹시 몰라 꺼낸 겉옷은 의자에 걸쳐 두고 나왔다. 계속 차로 이동할 테니 추울 틈이 없을 거라고, 네가 말했다. 너의 말에 코트만 걸치고 한 겹은 집에 두고 차에 올랐다.


두 시간, 세 시간. 차에 오르고, 내리며 몇 번 빗방울을 맞았다. 점심을 먹기까지 밖에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좀 춥지?”


겨울에도 옷을 가볍게 입는 사람, 네가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기다려서 늦은 점심을 먹고, 차까지 우산을 쓰고 걸었다. 소매로, 목둘레로 찬 기운이 들어왔다. 추웠다. 조금 서둘러 걸어 들어온 주차장에서, 접은 우산 끝 자락에 시선이 갔다. 벚꽃 한 장이 보였다. 봄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뒷좌석에 싣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너는 내가 앉은 좌석의 온열 시트 전원을 켰다.


주차를 하고, 어제까지 하얗던 벚꽃 나무를 올려다봤다. 하얀 꽃이 비에 다 지고 초록 잎들이 많이 올라왔다.


“폭탄 맞은 것 같네.”


그 말에 벚꽃 나무 아래 주차된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에 진 꽃들이 차를 뒤덮고 있었다. 온통 하얗게 바닥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장미가 곧 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꽃들이 비에 다 졌다. 겨울이 지고, 봄이와도 나는 겹겹이 옷을 입는다. 때로는 몇 꺼풀을 더 입어도 내게 든 한기가 가시질 않는다. 장미가 피는 계절이면 내게도 온기가 스밀까.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걸어가며 내가 말했다. 봄이지만 난 아직 추우니까.


“저녁에 나갈 때에는 옷을 더 입어야겠어.”


눈이 비처럼 내리던 곳에서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울었다. 울며 보내느라 추위를 탈 새도 없었다. 아름다운 것을 두고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이제 더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돌아왔지만 시간을 보내도 계절이 변하지 않았다. 추위를 타는 것이 아니라 한기가 들었던 걸까.


종일 내린 비에 져버린 꽃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여전히 옷을 껴입는다. 아직 가시지 않은 지난겨울의 추위가 몸에 남았다. 지금은 봄이고, 오늘 나는 몇 번 더 웃었다. 장미가 피는 날도 가까워지고 있다. 계절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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