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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 2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다시

by 스마일

전문대학원 입시를 포기했으니 바로 다시 취업을 해야 한다고 처음엔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명공학 전공 학사로 기업에 입사했을 때 전공을 살리지 못하여 아쉬웠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최소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다시 취업에 도전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 반, 편안한 마음 반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도 밀려왔고, 다시 안전하게 취업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다시 회사원이 된다면 사무실에서 또다시 답답한 일들을 쳐내가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닐지 불안했다. 동시에 나에게 다시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예감과, 좋아했던 전공 공부를 조금 더 심화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마음 한편은 살짝 편안하게 들떠있었다.


대학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을 돌이켜보니 '세포생물학' '세포생리학' 등이었고, 나는 그중에서도 세포 주기(cell cycle)에 대해 배울 때 가장 흥미로웠다. 세포 주기/노화/사멸/조절 등에 대해 조금 더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포 주기 연구는 암 발생 기전을 탐구하고, 항암제를 개발하는 핵심이 되는 만큼, 많은 연구가 암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암이나 의학 중심의 연구보다는 일상생활과 조금 더 맞닿은 분야에서 실용적인 연구를 하고 싶었다.


여러 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교수님들의 연구실 사이트를 방문해 보고, 관심이 가는 교수 연구실이 있다면 그 연구실에서 최근 발행된 논문을 찾아보았다. 모교 대학원 다른 학과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발행된 세포노화 관련 논문이 재미있어 보였고, 교수님이 여러 산업체와 산학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실용 연구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께 정성 들여 메일을 보냈고, 2일이 채 안 되어 연구실로 찾아와 이야기를 더 해보자는 답장을 받았다. 교수님은 실제로 뵈니 정말 인자하셨고, 그간 회사원/고시생 등으로 방황하던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셨다.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도 물어보셨고 열심히는 대답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아주 미천한 지식수준이 드러났을 법도 하다. 2~3개월 정도 인턴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실험실 분위기를 익히다가 다음 학기 석사 과정으로 입학하기로 했다.


자연계 대학원의 실험실은 교수님마다, 연구실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아래의 루틴을 따르는 듯하다.


실험실 루틴

매일 아침 출근, 랩미팅, 실험 계획 짜기, 박사과정 사수(멘토) 선생님과 실험 계획 확인하기, 실험하기, 점심 먹기, 실험하기, 실험하기... 가끔 랩미팅에서 발표할 논문 준비, 실험하기... 가끔 학회 다녀오기, 다녀와서 자료 만들기, 실험하기, 실험하기... 등등.

GS_note_HY.jpg 나의 다이어리 중에서


부족했던 점

회사 짬밥(?)이 있던 나는 퇴근 시간에 상당히 예민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후회가 된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갔던 만큼, 실험실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례하여 나의 실력과 경험이 늘어난다고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회사 물을 좀 먹다 와서(?) 그런가 오후 7~8시만 되면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 혼났다. 그래서 6시 이후에는 시작하면 3~4시간 정도 소요되는 실험을 아예 시작하기가 싫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2년 동안의 석사과정을 수련과정이 아니라 회사의 출퇴근 마인드로 받아들였나 보다. 당시 연애 중이었던 것도 한몫했다(ㅎㅎ). 그래도 이른 아침부터 집에 갈 때까지는 최대한 실험과 공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힘들었던 점

실험을 하다 보면 금손, 똥손이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된다. 내가 했을 때는 결과가 잘 안 나오던 실험인데, 손을 바꿔서 다른 사람이 하니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어떤 '금손 선배'는 하는 실험마다 결괏값이 깨끗하게 나와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난 똥손 중에 똥손이었다. 똥손의 문제는 어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했는데, 예상하던 결과가 안 나왔을 때다. 이 때는 이 결과를 해석하기가 어렵다. 실험 과정에서 나의 기계적인 미숙함으로 (손 탄다고 표현하는) 결과가 안 나온 건지, 아니면 실험은 제대로 잘 진행되었는데 가설이 틀려서 결과가 안 나온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내 손 탓을 하면서 가설은 맞으니 한 번 더 확인해 보자, 하는 마음이 처음에 드는데 같은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같은 실험인데도, 분명 똑같이 했는데도 할 때마다 다르게 나오는 그래프를 보며 멘붕에 빠진다.


우리 실험실에서는 조직을 얇게 슬라이스 하여 염색을 하는 IHC도 많이 했는데, 원하던 대로 염색이 잘 되면 누군가가 '그거 non-specifc 아니에요? (비특이 반응에 의해 염색이 되었다는 뜻)'이라 말하기도 하고, 반대로 염색이 아예 안 돼버리면 가설이 틀렸다고 말하기보단 '그거 secondary antibody 바꿔봤어요? (염색이 되어야 하는데 마지막 색상(또는 형광)을 보여주기 위한 항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뜻)' 이런 식으로 공격을 받아버리니 매번 멘붕이었다. 결과도, 내 손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격에 대비하여 대조군도 필요하고, 실험 설계를 잘해야 하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내 실험 결과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늘 문제였다.




그래도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실험했던 기간은 대체로 행복했던 것 같다. 궁금했던 분야에 대해 실컷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 처음 생명공학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의 순수했던 내 마음을 되찾은 시간이기도 했다. (금손이었다면 주저없이 박사과정에 등록했을 것 같긴 한데,) 어서 다시 사회로 나와 내 직업을 찾고 싶다는 마음도 작지 않았다. 그렇게 석사 졸업 후 다시 취업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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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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