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도 모르는 내가 사회정책부에 갈 수 있었던 이유
돌이켜보니,
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위인전 가장 뒷면에 있는 독후감 예시를 살짝 베껴서 썼던 글이 우수 독후감으로 선정되면서, 갑자기 나는 글을 잘 쓰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니 정말 잘하게 되는 효과는 있었다. 몇 년 후 지역 문인협회가 주최하는 글쓰기 대회에서 차하를 수상하면서, 나 스스로도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절대적인 독서량도 부족하고, 나중에 수능시험 공부할 때는 난독증 비슷한 것이 와서 언어영역 지문만 보면 머리가 하얘지는 증상도 겪었다. 애초에 글을 읽거나 쓰는 것에 재주가 없었다. 어떤 아이들은 책이 너무 좋아서 방학 내내 전집에 파묻혀 지냈다고 하는데, 유명한 작가들은 활자 중독이라고 할 만큼 책이 좋았다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독서를 즐겼던 경험이 없다.
책을 펴면 한 두 페이지 읽다가 잠이 들었고.
데이트 장소에 30분 일찍 도착해서 책을 펼쳤는데, 눈은 글자를 읽고 있지만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외출할 때마다 가방에 책을 넣었던 건, 독서와 글에 대한 나의 부채의식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현실도피 목적으로 책을 읽고, 책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 뭔지도 알 것 같고, 책이 주는 위안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런 내가 생명과학 석사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우연히 한 방송사에서 낸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방송사와 연계된 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저널리즘 스쿨의 학생을 뽑고 있었다. 대학생 또는 대학 졸업생 모두 지원할 수 있었고, 일주일에 서너 번 저녁에만 강의가 있기 때문에 대학원생인 나도 수업 참여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날 밤 실험을 마치고 연구실 책상에 앉아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갔다. 그전까지 언론에 대해 무지했던 나였지만 전공이 독특했던 덕분에 저널리즘 스쿨 강의를 들을 기회가 주어졌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이나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것은 사실 없었다.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 언론을 업으로 생각했던 적이 없으니 고민할 기회도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저널리즘 스쿨에 가 보니 언론정보학, 사회학 등 문과 계열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계 전공자는 거의 없었다. 당시 내가 관심이 많았던 일본의 줄기세포 과학자 야마나카 신야의 이야기와 우리 몸의 세포 사멸 시스템, 그리고 이러한 과학적 내용을 세월호 사건과 결부시켜 작문을 썼다. 글을 쓰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슴이 뛰었던 건,
그 당시 스스로 쓴 글이 마음에 들었고 독창적이라 생각해서였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건 내가 글을 잘 써서가 아니었다.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맴도는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나마 남보다 조금 더 알고 있다고 믿는 알량한 지식으로 뭔가 많이 알고 있는 척하는 것이 좋았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내 글은 생명과학이나 의과학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가 봐도 부실했을 것이고, 사회 문제와 정책을 오랜 기간 고심한 전문가가 봐도 이상했을 것이니 말이다.
나만의 세상에 갇혀서 다른 사람의 글은 안 보고, 내가 썼던 글만 보고 또 봤던 어리석은 날들의 기억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역시나 독특한 이력 덕분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 신문사의 인턴기자 모집에도 합격하였고 그렇게 나는 대학원 졸업 후 얼떨결에 기자가 되었다.
사회정책에 대해 고민해본 적도 없는 내가, 사회정책부에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