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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너의 선택을 믿는다

시험을 포기하다

by 스마일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한, 전문직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미련한)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 두었던 나는 금방 내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나의 일상은 늘 불안했다. 조바심으로 가득한 마음은 집중력을 흐릿하게 만들었고,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섭렵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은 시작도 하기 전에 나를 넘어지게 만들었다.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나 자신의 습관이 정착되어야 함을 그땐 몰랐다.


그러기를 몇 달,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렇게 불안한 상태로는 최소 2~3년 이상 투자해야 하는 시험 공부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설사 운좋게 시험에 통과한다고 할지라도, 이런 상태로는 어떤 일을 해도 즐거울 것 같지 않았다.


사실 도망친 거였다. 실패할까봐, 시험에 못 붙을까봐 아예 시험을 보지 않는 방법으로 실패를 회피하고 있었다. 좌절은 좌절, 실패는 실패인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하지 않을 테니. 비겁하지만 그때는 그 길을 택했다. 눈을 감아버렸다.


부모님께 시험을 보지 않고 내 진로를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나약한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엄마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보겠니? 시험 한번만 쳐보고 그 다음에 생각을 해보면 어떻겠니? 엄마의 이런 대답을 예상했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딸을 믿는다. 그래서 내 딸인 너의 선택을 믿는다.



엄마 눈엔 다 보였던 것 같다. 회사 다닐 때도 힘겨워보였지만, 그만두고 시험을 공부하던 시절에도 나의 고심과 우울함이 다 느껴졌었나보다. 힘들다고 말한 적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집에서 도망치듯 독서실에 박혀서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내용들을 눈으로 읽고 또 읽고 새벽에 집에 간 적도 있었다. 아마 점점 어두워지는 나의 표정에서, 조급함에 여유를 잃어버린 나의 모습을 이미 엄마는 잘 알고 있었나보다. 엄마는 나를 믿는다고 하면서 조금 홀가분해 보였다. 엄마는 딸의 직업이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든 아니든 상관 없었던 것이다. 그저 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했으면, 스스로를 밝게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며 지내기를 바랐던 것 같다.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야 알겠다.


그렇게 전문대학원 입학 시험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가치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인지 다시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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