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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입사와 퇴사

일에서 행복감을 느껴야만 잘 사는 인생일까

by 스마일


일과 내 인생을 일치시키지 않고도 살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직업은 인생에서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안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또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밥벌이의 고단함을 버틴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23살의 나는 몰랐다.

내가 하는 일을, 내 직업을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일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껴야 잘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을 인생의 수단이라 정의하기에는 열정에 넘쳤고, (근거없는) 자신감에 넘쳤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휘둘렸다. 월급을 타려고 버티기엔 회사 일이 도통 적응이 되지 않기도 했다.


물론 나도 월급은 좋았다.

그래도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에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닥 풍족하지도 않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대학 시절에는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운 좋게도 기숙사에 살 때는 주거비용을 아낄 수 있었지만, 마지막 4학년 때에는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학교 근처에서 자취방을 구해야 했다. 당시 과외로 벌었던 월급이 30만원 정도였고, 그래서 월세에 지출하는 비용은 무슨 일이 있어도 30만원이 넘지 않았으면 했다. 언덕 높은 동네 중턱에 있는 반지하방을 구할 수 있었다. 월세 비용 외에는 한 달에 20만원 이상 쓴 적 없었다. 저렴하게 김밥으로 끼니 때우고, 섬유유연제는 동네 마트에서 제일 저렴한 걸로 골랐다.


그렇게 살짝 짠내나게 살아왔으니 매달 200만원 이상 정확한 날짜에 입금되는 월급이 적었을 리 없다. 하는 일은 별로 없는데 과하게 많이 준다는 생각도 했다. 실제 업무에 투입되는 기간이 아닌 입사교육 기간에도 월급을 주다니, 어벙벙하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엄마 세탁기를 바꿔드리고 아빠에게는 용돈봉투를 드렸다.


월급도 꼬박꼬박 주고, 법카로 양대창에 소주도 사주는 그런 회사 생활이 처음엔 싫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졸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친구들, 몇 년 동안 대학 졸업도 미룬 채 고시 준비를 하는 친구들, 전문직이 되려고 여전히 공부 중인 친구들이 떠올랐다. 빨리 돈을 벌고 더이상 시험같은 건 안 봐도 되는 내 인생이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나와는 맞지 않았음을 곧 깨달았다. 나는 편하게 사는 인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너무나 예민했다. 내가 하는 일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월급 금융치료로 버틸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의 남편은 월급 그 자체가 15년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게 견인해 온 동력이라고 했다. 하기 싫은 일도 돈 받고 하는 거라 생각하면 동기 부여가 된다고 한다. 이런 사람도 분명 있다!)



일하는 나로 빙의하기.

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회사생활은 무언가를 앉아서 습득하는 게 아니었다. 업무 매뉴얼을 정확히 숙지하는 것보다는, 직접 그 매뉴얼과 관계 있는 부서 담당자와의 소통이 훨씬 중요했다. 장황하게 글을 쓰는 것보다 회사의 사업을 정확히 파악하고 간결하게 한 두줄로 보고하는 것이 핵심 능력이었다. 말투 자체가 과격한 직원들도 많았다. 약간의 군대 문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 해보고도 싶었다. 근무시간에만 '일하는 나'로 변신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 성격에 맞지 않게 뻔뻔하게 말해보기도 하고, 수화기를 들고 신호음이 울리는 그 시간이 너무 괴로웠지만 상대방이 전화를 받으면 하나도 긴장하지 않은 척, 대범한 척, 그렇게 연기를 했다. '일하는 나'를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동작 하나, 말 한마디 모두 내 것이 아니었으니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이가 그렇게 중요할까.

첫 회사에 23살에 입사했다. 입사 동기들은 대부분 나보다 2~3살이 많았고, 군대까지 다녀와야 하는 남자들은 5~6살이 많았다. 그 사이에서 막내처럼 지냈는데, 주변에서 의미없이 던지는 말에도 많이 흔들렸다. 내가 그 나이라면 다시 학교가서 공부하지 절대 회사원은 안 하겠다, 회사 생활에 얽매이기에는 나이가 너무 적지 않니, 밖에서 조금 더 경험하고 탐색해라, 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회사 계속 다닐꺼야? 잘 생각해봐...


회사에서 잘 해보려고 애쓰다가도 그런 조언 아닌 조언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게다가 바로 취직을 하지 않고 조금 힘든시기를 버텨내다가 드디어 목표를 이루어 반짝반짝 빛나게된 선후배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여러 해의 고생 끝에 마침내 고시에 합격한 친구, 석사 졸업 후 뒤늦게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선배 등등.. 나만 빼고 다 어찌나 주관이 뚜렷한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서 결국은 해내고야 마는 지인들의 이야기는 나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 괜히 위축되었다.


나라고 노력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건 아닌데,

오히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달려왔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단지 사람들이 대놓고 말하지 않는 그 어떤 기준에 의해 내가 마치 패배자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을 울며 고민한 끝에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1)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한 직업, 고소득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

2) 23살이면 월급에 만족하지 말고 시간과 노력을 갈아넣어야 할 시기이다.

3) 난 아직 어리니까 회사원에 만족할 수 없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이유였는데, 지금 보니 이 세 가지 모두 나의 기준이나 신념에서 나온 건 없다. 남들의 시선,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남들한테 부러움 사고 싶어서, 그래서 나왔던 이유들이다.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는 중이다.


사람들은 사실 내 인생에 크게 관심 없고, 무심코 해줬던 말인데도

나 스스로가 나를 패배자로 만들었던 것 같다.

회사원보다 교수, 의사가 되어야 성공한 인생인가?

바보같은 질문 앞에서 왜 스스로를 낮춰 평가해야 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감히 평가할 수 없는 개인의 삶

회사원으로 살든, 전문직이 되든, 공무원이 되든 어떤 '인생'이 '더 좋다'고 평가할 수 없다.

직업은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인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나의 신념에도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내 인생 그 자체는 아니다. 작은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보다 노력을 안했다고 누가 말 할 수 있을까. 큰 회사 다니는 사람이, 고소득 전문직이 더 성공한 인생이라고 감히 누가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건 각자의 인생에서 어떤 가치에 무게를 싣고 있느냐의 차이다.


매일같이 야근하고 휴일 없이 살아도 일이 재밌으면 된다는 사람,

조금 적게 벌어도 가족들과의 시간이 확보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연구분야를 계속 파고들고 싶다는 사람,

월급의 크고 적음과 관계 없이 안정성과 네임밸류가 중요하다는 사람,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럴 듯한 직업이라서 만족한다는 사람.


생김새가 다 다르듯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도 너무나 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기준으로 어떤 인생을 평가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그걸 깨달아서 다행이다.




더 해보고 싶은 공부가 있었다거나, 조금 힘들더라도 꼭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어서 어렵게 퇴사를 했던 거라면 과거의 나에게 조금 덜 미안할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급급해 어딘가에 밀려나듯이 내렸던 결정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 이미 지나간 일 어쩌겠는가. 인생의 중요한 해프닝 혹은 잊지 않아야 할 기점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다른이와 비교하지 않아 보기로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온전한 나만으로 나를 평가하기란 어렵긴 하다. 나이들면서 성숙하면서 더 잘 할 수 있게 될까.)







Every one of us is, in the cosmic perspective, precious. If a human disagrees with you, let him live. In a hundred billion galaxies, you will not find another – Carl Sagan

우리 모두는 우주의 관점에서 소중한 존재입니다. 누군가 당신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그냥 두세요. 수천억 개의 은하를 찾아도 그와 똑같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 칼 세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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