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 폴란드 일기 7
하얀 십자가(White Crosses)를 찾아나섰다.
구글 지도에는 ‘White Crosses’라고 치면 검색이 가능하고, 하얀 십자가 기념 공원이라고 불린다. 이곳은 국가의회 의사당에서 가깝다. 슈프레 강변을 따라 걷다가 하얀 십자가들을 발견하는데, 강 맞은 편에 연방정부 사무소가 있다. 십자가마다 새겨진 이름들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뒤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사살된 사람들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가를 따라 나란히 서 있는 하얀 십자가는 지금 누리는 평화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 만들어낸 것인지 알린다.
꽃다발을 놓고 가는 사람도 있고, 뜻밖에 마주한 십자가들에 걸음을 멈춘 사람도 있다. 장벽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가두고 가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가두는 것은 끔찍한 것이라고 온몸으로 외쳤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왔다. 그리고 동독을 통일하기 위한 서독의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는 사실도 이번 여행에 앞서 다시 확인했다.
이들의 희생에 묵념을 보냈다.
그대들이 넘으려 했던 장벽은 이제 없다, 그러나 아직 우리 나라에는 무수한 장벽들이 있으니 혹시 그 장벽을 넘을 방법을 안다면 알려주시라.
십자가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슈프레 강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네가 찾아야지.”
장벽을 넘든, 돌아가든, 넘어뜨리든, 허상인 장벽을 깨부수든, 그건 내 몫이겠지.
‘국가의회의사당’ (Reichstag Building)은 1933년 2월 27일에 불탔다. 범인은 잡혔으나 히틀러는 공산주의의 소행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러고는 공산당과 사민당 의원들 등을 모조리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외쳤다. 며칠 사이에 예비 검속으로 4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사회민주당원, 노동조합 간부, 좌파 지식인들도 잡아들였다. 그 뒤 이어진 선거에서 나치당이 승리했다. 국가의회의사당이 불에 탄 사건은 나치당이 독재 체제를 완성하는 기폭제가 된다. 이 건물은 이후에 영국과 미군의 공습과 베를린 공방전에서 파괴되었다.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 연방의회가 베를린으로 옮겼다. 유리 돔을 가진 지금의 모습은 1999년에 완성된 것이다. 미리 예약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짐 검사를 철저하게 한다고 했다.
건물 앞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베를린의 옛 모습들이 찍힌 사진들을 찾았다. 불에 타던 국가의회의사당 사진을 들어 현재 모습에 겹쳐서 찍었다.
고작 백 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이 독일에서만 일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념이 무조건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우리도 겪었다.
몇 년 전 다하우에서 ‘다하우 수용소’를 찾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서 당황했다. 숙소에 있는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하려는데, ‘Nazzi’라는 단어가 금지어였다. (독일에 설치된 기기들이 그렇다) 독일에서 이를 금지어로 삼을 줄 몰랐다. 숙소에 사정을 설명하자, 프론터에서 수용소 주소와 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브런치에 연재를 하다 보니, 우리 나라에서는 ‘나치’가 금지어가 아니라서 연관 검색어로 ‘나치’가 떴다. 우리와 독일의 차이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위안부사기청산연대라는 단체가 베를린에서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시위를 벌였다고 했다. 심지어 한국말로 구호를 외쳐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단다.
“돈을 받은 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죠?”
시위를 지켜본 독일인이 한 말이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비슷한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그 뒤에 숨어서 비용을 대고, 겉으로 드러난 몇 명이 움직일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신념을 믿을 수 있다. 그건 자유다. 하지만 일어난 일을 아니라고 우기거나, 일어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거나,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고쳐야 한다. 제대로 된 어른이거나, 진짜 엄마라면 자신이 달라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진짜 어른은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거짓과 진실이 섞였을 때, 진실을 제대로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생각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거짓으로부터 나와 우리를 지킬 수 있다. 일본군 종군 위안부가 사기라고 주장하는 저 거짓으로부터, 일본이 점령기간에 했던 일들 덕분에 한국이 가난을 떨칠 수 있다는 거짓은 지금도 우리 옆에서 들린다.
“그거, 거짓말이야!”
여행 중에 내가 만났더라면 대거리를 했을 텐데!
누구한테 돈을 받고 그런 거짓을 퍼뜨리냐고 물어봤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