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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텅 빈 방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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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은 Jul 11. 2022

장벽에 남은 눈물

- 베를린, 폴란드 일기 9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일은 동과 서로 나뉘었다. 베를린에는 그 흔적이 꽤 많이 남아 있다. 동독에서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물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동독에서 서독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은 베를린을 통과하는 장거리 열차와 시내 전철이 함께 통과하는 곳으로, 환승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가기 위해 기차를 타는 영화들에서 나오는 기차역이 바로 이곳이다. 동독과 서독의 교통이 통제되었을 때 양국을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역이었다. 1938년 11월 9일 밤, ‘수정의 밤’이라는 사건이 벌어진다. 나치돌격대와 히틀러 청년당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 유대인들의 가게, 집, 교회당, 묘지 등을 약탈하고 부수었다. 이때 산산조각 난 건물의 유리창 파편들을 빛났다는 비유를 들어 ‘수정의 밤’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 이후로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을 통해 많은 유대인들이 베를린을 떠났다. 

    

이곳에서 출입국 사무소의 절차를 밟아 서독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절차는 까다로웠고, 쉽게 허가가 잘 나지 않았다. 특히 이 역을 통해 서독으로 아예 망명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확인 절차는 나날이 까다로워졌다.

그래서 이곳을 ‘눈물의 궁전 (Tränenpalast)’이라고 불렀다. 기차를 타기 전에 출입국 사무소에 들르면 사방에 놓인 감시 카메라와 제복을 입은 출입국 관리 직원의 질문에 답해야 했다. 예전에는 출입국 사무소에서 기차를 타는 선로까지 꾸불꾸불한 미로를 지나야 했고, 그러다보면 방향 감각을 상실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이 ‘눈물의 궁전’이 된 이유는, 서류 심사를 통해 서베를린으로 갈 수 있는 사람과 갈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었고, 가족이 생이별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노인들은 갈 수 있고, 젊은이들은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 추모공원은 장벽을 많이 남겨둔 상태에서 나머지를 공원으로 꾸몄다. 근처 아파트 창문을 통해 서독으로 넘어가거나 동독으로 물건을 보내는 경우가 늘어나자, 창문은 널빤지로 막아야 했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건물에는 당시 상황을 찍은 사진들이 크게 그려져 있다.

길게 서 있는 장벽들과 빽빽이 들어선 철근이 눈에 들어온다. 이 철근들도 장벽에 있던 부속물이다. 장벽에 붙은 시멘트가 떨어진 자리에, 철근만 남아서 빨갛게 녹슬어가고 있다.

콘크리트 200만톤, 강철 70만톤을 쏟아부어 길이 155m에 달하는 베를린 장벽을 쌓아서 왕래를 끊었다.


월 메모리얼에서는 내부 사진 촬영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외부에서만 촬영할 수 있었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장벽이 남아 있을 당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구간이 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이고, 탑에서 그곳을 둘러보는 구조는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벽과 철조망, 방해 구조물들을 놓고, 불빛으로 감시하면서 장벽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서로는 점점 다르게 변했다.

베를린에서 보이는 ‘암펠만’은 동독을 상징하는 기호다. 신호등에서 볼 수 있는 암펠만은 모자를 쓴 사람이 ‘가시오’와 ‘멈추시오’를 나타낸다. 빨간 신호등에는 모자를 쓴 암펠만이 멈춰선 모습으로, 푸른 신호등에는 역시 암펠만이 가만히 서 있다. 그래서 베를린에서 동독 지역이었던 곳에는 신호등에서 암펠만을, 서독 지역이었던 곳은 동그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베를린 기념품 중에는 암펠만을 모델로 한 것이 많다. 워낙 인기를 끌다보니 동독 지역이 아니었던 곳도 신호등을 암펠만 모양 등으로 바꾼 곳도 있다고 들었다. 


추모공원에는 ‘화해의 교회’ 흔적이 남아 있다. 장벽이 교회 바로 옆을 지나갔고, 반대편 교인들이 교회에 오지 못했다. 종탑은 경비대 망루로 사용되다가 결국 철거되었다. 교회에 있던 십자가가 바닥에 놓였고, 그 주위로 풀밭이 있다. 

그리고 ‘화해의 교회’에서 철거하면서 남은 잔재들을 모아서 세운 ‘화해의 예배당’이 근처에 있다. 내벽은 흙이고 전나무가 밖을 감싸고 있는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진 예배당은 안으로 들어서면 나무 벽을 빙 둘러가며 걸어갈 수 있다. 독일에서는 목사가 상주하는 곳을 교회라고 부르고, 신도들끼리 모여서 기도하는 곳은 예배당이라고 부른다. 

매일 정오에 장벽 희생자들을 위해 15분 동안 기도를 드린다.

     

‘화해’라는 조각상도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부둥켜안았으나 하반신은 뚝 떨어져 있어서, 마치 다가갈 수 없던 사이가 극적으로 만난 듯 보인다.    

 

장벽을 넘다가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벽이 따로 세워져 있다. 다른 벽들과 직각으로 마주하는 구조로, 나무와 풀이 뒤덮인 이 벽들은 동과 서로 나뉜 시절에 넘으려던 벽이 해체되었음을 드러낸다.

공원 바닥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걸림돌도 있다.

장벽에는 눈물이 아직 남아 있다. 통일이 되어도 여전히...     

베를린 시내에는 아직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 있다. 그리고 시내를 걷다가 바닥에서 마주하는 황동판을 발견할 수 있다. 슈톨포슈타인(Stolperstein), 걸림돌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것은 이 기념물이 있는 자리에서 어떤 유대인들이 살았으며, 그들이 어디에서 죽었는지 기록하고 있다. 한 집에서 몇 명이 동시에 끌려간 걸림돌도 있다. 이곳 장벽 추모공원에서도 슈톨포슈타인을 발견했다. 이곳에 있는 걸림돌은 유대인 희생자가 아니라 장벽을 넘다가 희생된 사람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슈톨포슈타인을 관리하는 시민 단체에서는 이것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 쓴다고 한다. 


‘Berliner Unterwelten’은 ‘지하세계’라고 불리는 곳이다.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기 때문에 글로 적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갔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비행기들이 폭탄을 퍼붓는 공습이 심각했다. 당시를 다룬 영화들에서 공습경보가 울리면, 일상을 누리던 사람들이 지하 대피소를 찾아 들어가는 장면들이 나온다. 어떤 도시에서는 지하철 역으로, 어떤 곳에서는 지역 대피소로 숨는다. 허술한 대피소에 숨을 경우, 폭격을 정통으로 맞아 대피소에서 곧바로 사망하는 경우도 생겼다.


‘Unterwelten’은 당시 베를린의 지하 대피소를 관람하는 것으로, 베를린에만 몇 가지 코스가 있다. 2차 대전 이후에 만든 ‘지하세계’ 중 하나는 핵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동독 지역, 서독 지역 등 여러 곳에 이런 시설들이 있는데 베를린의 상수관이 지하가 아니라 지상에 관으로 돌출된 것이 이런 지하시설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어 가이드가 오고, 같이 탐험할 열 명 정도가 모였다. 역에서 승객들이 오르내리는 층계 말고 그 옆으로 또 다른 층계가 있다. 그곳으로 내려가면 육중한 철문이 드러난다. 철문에 달린 자물쇠를 열고, 일행이 모두 그곳으로 들어가면 가이드가 문을 잠근다. 이때부터 사진 촬영은 금지되고 오직 설명에 집중하면서 들어가야 한다.

들어서서 첫 번째 층계를 내려가자 노출된 변기들과 마주했다. 이곳이 대피소가 아니라 정화조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입구에 가까운 곳에 변기를 놓았다고 한다. 나란히 놓인 변기들은 당시에 쓰던 것과 유사한 것을 가져다 놓았고, 그때 쓰던 물건들은 없다고 했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중에도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층계를 오르고 내려가면서 불이 꺼지는 긴급 상황에도 출구가 보일 수 있게 특수 안료로 칠한 벽,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쓰던 물건들, 임시 약국 등을 보았다. 이곳에 들어올 때 허용된 가방이 침대 위에 있었다. 

전쟁 때 도시간 통신을 어떻게 전했는지를 모형으로 만들어서 설명하는 것까지 듣고 나니 진이 빠졌다.

너무 많이 걸어서 기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60분 동안 걷다가 서다를 반복했고, 설명은 길었다. 특히 영어로 긴 설명을 하는 걸 듣느라 집중하니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보길 잘했다.

혹시 베를린에 여행을 가실 계획이라면, 이곳을 들러보시라고 권한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베를린이 아니라 또 다른 베를린을 느낄 수 있다.


약간 지친 상태로 ‘하케쉐 회페(Die Hackeshen Höfe)’에 들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있는 듯한데, 안으로 들어서면 중정이 있고, 회랑을 거쳐 또 다른 건물로 연결되는 구조다. 이곳은 ‘하케의 호프들’이라는 의미로, 8개 호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핸드메이드 모자, 허리띠, 초콜릿, 사탕 등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오밀조밀하게 있고, 액자를 파는 곳도 있다. 그 가게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물건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황동 연필깎이를 샀다. 이때부터 우리는 가게마다 황동 연필깎이를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작고 반짝이는, 문구를 좋아하는 두 사람에게 걸맞는 기념품이었다. 

   

계산대에서 물었다.

“화장실이 어딘가요?”

직원이 가르쳐주었다. 직진하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다시 왼쪽.

알려준 대로 걸었다. 직진하다가 오른쪽으로 꺾었더니 길이 여러 갈래였다. 어느 왼쪽인지 알 수 없어서 길마다 다 들어가 보았다. 그러다 결국 포기했다.

화장실 표시를 찾기 힘들어서 헤매다가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를 꾹 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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