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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군분투 서른살 Aug 05. 2023

오늘부터는 나는 순례자(Pilgrim)다

06. 일단은 Azambuja(아잠부자)로 가자

아침 일찍 호스텔에서 나와 리스본 대성당으로 향했다. 

바로 이 크레덴셜을 받기 위해서, 이게 있어야지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를 이용할 수 있고 필그림 메뉴인 순례자 식사도 할 수 있다. 


10유로를 내고 크레덴셜을 산 뒤,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인 Azambuja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본래의 코스는 리스본에서부터 이틀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인데, 차도와 공장을 가로질러 가야 하기 때문에 안전 상의 이유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리스본에서 1시간 30분 정도 이동해서 도착한 Azambuja

이 마을엔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운영하는 1곳의 알베르게가 있었고 숙박비는 15유로, 원화로 1만 6천 원으로 저렴한 가격에 숙박이 가능했다. 


알베르게엔 나 말고도 체코에서 온 커플, 뉴욕에 살고 있는 대만 남자, 핀란드에서 온 중년의 여성분 그리고 이후 3일을 같이 걷게 될 네덜란드에서 온 25살 학생이 있었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들과 있자니 급 외로워지는 마음이 들었다. 

핸드폰 데이터라도 마음껏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28일간 10GB로 버텨야 하기 때문에 와이파이가 없는 알베르게에선 꼼짝없이 멀뚱하니 멍 때릴 수밖에 없는 상황..


옆 침대의 네덜란드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았지만, 짧은 영어 실력으로 대화를 이어가기엔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한국말로도 스몰토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영어로는 영 시원찮다.


어디서 왔니?, 이름이 뭐야?, 내일은 어디까지 걸을 생각이야?, 순례길은 처음 걸어보니? 4개의 질문이 끝나면 정적이 찾아오고 서로 하하^^; 하며 대화가 종료된다. 


여기서 드는 고민은 외로운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어색한 분위기를 깨트리기 위해 억지로 대화를 주고 받는게 맞는건가 싶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도 외국 사람이니 정서와 문화가 달라 내가 느끼는 것들을 시원하게 얘기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 같다는 편견이 있다. 


왠지 나이는 물어보면 안될 거 같고, 직업도 물어보는 게 실례가 될 거 같은 느낌?

외국인 개인주의 문화가 있다고 하니 괜스레 소심해진다.


에잇 그만 생각하자!


복잡한 머리 속과 어색한 공기를 박차고 일어나 내일 먹을 아침과 맥주 한 캔도 살 겸 마을을 좀 둘러보기로 했다. 

길에 소를 풀고 마을 사람들이 소를 피해 도망치는 행사? 페스티벌이 자주 열리는 마을인 Azambuja에서는 소를 막기 위한 문 앞의 나무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알베르게 호스트에게 물어보니, 내가 오기 며칠 전에 행사가 진행되었고 몇 사람은 소에 받혀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얼핏 세계테마기행 같은 TV쇼에서 본 거 같기도 하고.. 

큰 마트로 걸으며 낯선 듯 익숙한 포르투갈 시골 마을의 풍경을 감상하며 진짜 내가 오긴 왔구나 싶다.

요 몇 달 느끼지 못했던, 마음이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내일 아침은 딸기 요구르트와 뺑오쇼콜라, 맥주는 주머니 속에 쏙

알베르게로 복귀하는 길에 로컬 사람들만 갈 거 같은 식당을 발견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출발해야 하니 저녁을 일찍 먹는 편이 좋을 거 같아 이른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메뉴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영어로는 대화가 어려워 한국어->포르투갈어 번역을 해보려 했지만 실패

예전에 즐겨보았던 비정상회담에서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는 서로 대화가 통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네이버 파파고 어플을 켜서 스페인어로 음식을 먹을 수 있냐 물어보니 신기하게도 알아들으신다. 


"맛있는 거 알아서 주세요!" 그래서 나온 돼지고기, 파스타, 병아리 콩에 라구(토마토 베이스) 소스의 음식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맥주 한 잔은 원 샷 때리고 다시 새로 한 잔을 시켰다.


전통 한식파인 나에게도 나쁘지 않았던 포르투갈 가정식 느낌 낭낭한 음식을 먹고 터덜터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내일은 Azambuja에서 Santarem까지 33km를 걷는다. 

드디어 원하던 몰입과 집중을 통해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그날이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음을 담아 걸어내야지


부디 내일도 부엔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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