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년 전 라떼 이야기를 할까 한다. 2011년도 현대자동차 연료전지개발팀으로 입사를 했다. 수소전기차는 생소했지만 친환경차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근무지가 용인이었던 것이 더 좋았다. 직급은 사원급 연구원 1년 차였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높은 초봉으로 인기가 많았던 만큼 애사심이 가득했다.
그 당시 원천징수 금액이 대략 5800만 원쯤 되었다. 타 기업 연봉보다 1000~2000만 원 높았다. 월급 100만 원 차이는 삶의 질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엄청이나 좋은 선택이었다고 자부했다. 부모님, 친척, 친구, 선후배들을 만나도 엄청 좋은 직장을 가졌다고 부러워하고 칭찬해줬다.
2020년도는 150% 120만원
하지만 이상하게도 생각보다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세금, 공과금을 제외한 돈에서 인터넷 쇼핑을 몇 번 하고 나면 월급은 바닥났다. 그나마 성과급으로 받은 금액이 겨우 모을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반토막 나서 기대감은 더 떨어지게 된다. 이 돈을 모아서 차사고 집 사고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석사 졸업한 사원급 3년 차 연구원이 4900만 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액 연봉을 바라보고 입사했던 후배들의 실망감은 당연한 듯싶었다. 성과급이 많이 줄어서 생활비를 제외하면 자산 축적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과장급 책임연구원과는 400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2배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정도다. 진급을 독려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세대 간 갈등만 더 심화된 것 같다. 연구원들은 더 노력해서 진급을 하겠다는 선택보다 적게 받은 만큼 일을 적게 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당연한 결과이다. 진급은 모두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해에 팀의 성과와 진급 TO, 보직자의 평가 등이 다 맞아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열심히 해서 안 될 가능성도 있는데 목숨 걸 필요가 있을까 판단 내린 현명한 결과였다.
그 생각을 전적으로 존중한다. 아무도 당신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선택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지는 게 좋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 다다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일을 무리하게 하지 않는 대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일은 더 진취적으로 쟁취했으면 좋겠다.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회사의 프로세스를 익혀서 하고 싶은 실험을 마음껏 하고, 그중 몇 개는 성공 시켜서 좋은 이력을 남겨놓는 것이다. 사내 논문을 써도 좋고, 특허를 써도 좋다. 개인적으로 특허를 쓰는 게 더 좋을 듯하다. 선택지를 늘릴수록 나중에 덜 아쉬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돈 이외에 다른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사원일 때, 내가 퇴사하고 싶었던 이유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원 중 박사가 50%가 넘다 보니 어리고 직급도 낮은 내게 큰 일을 할당할 수 없었다. 과장급 이상의 책임연구원이 실험을 설계하고, 사원 대리급 연구원이 그 업무를 수행했다. 주로 하루 종일 실험재료를 정리하거나 행정업무를 하고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양산 업무가 늘었고, 단순 반복된 일들로 하루를 가득 채웠다. 심지어 6개월간 2만 번이 넘는 수작업을 해야 하기도 했다. 리더를 설득해서 자동화에 성공했지만 그마저도 선배에게 일을 넘겨야 할 뻔했었다.
하지만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고, 나의 커리어를 위해 꼭 해내겠다고 고집을 부렸었다. 결국 쟁취했고 그것은 나의 재직기간 중 가장 큰 성과가 되었다. 싸울 건 싸워야 한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무엇을 저지르지 않으면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였다. 실패도 경험이다. 연차는 높은데 경험이 없는 것은 금세 나타난다. 가만히 있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끌어다 써야 한다. 연차가 낮을 때 많이 실패해야 한다. 사원급이 책임질 일은 크지 않다. 면죄부를 이용해 많은 경험을 쌓기를 바란다. 그래야 새로운 기회가 두배로 찾아온다.
마지막으로 사원일 때 퇴사하고 싶었던 이유는 회사 정책과 맞지 않는 조직문화였다. 하지만 이부분은 정말 많이 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어졌다.
나는 옷차림부터 머리스타일까지 돌려 돌려 돌려 지적받은 적이 있다. 이 사진은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출근했던 날 찍었다. 비슷한 또래 연구원들은 심플하고 깔끔해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연차가 있으신 선배분들은 흰 티셔츠에는 카라가 없어서 너무 캐주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학교 놀러 온 것처럼 보인다고, 좀 클래식하게 입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해주셨다. 회사에서는 분명 캐주얼하게 다니자고 대대적으로 교육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청바지도 지적받았었다. 바지 통이 타이트한 것과 밑단을 신발 끝선과 맞도록 10부로 줄인 게 문제였다. 또 하나는 발목 양말을 신어서 드러난 발목이 낯설었나 보다.
'그렇게 입지 마!'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농촌 봉사활동에 가냐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천쪼가리가 적게 들어서 좋을 것 같다고 돌려 말하는 분도 계셨다. 요즘은 반바지 입고 출근한 동료들도 많아졌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어차피 편하게 바뀌어갈 텐데... 조금만 참으면 다 변하겠지.
머리스타일도 지적받곤 했다. 시도했던 머리스타일은 스핀스왈로펌이었다. 조금 과할까 봐 덜 꼬부라지게 해 주세요! 하고 자중한 건데 윗분들은 이마저도 눈에 거슬렸었나 보다.
"음. 난 너 자리에 여사우가 앉은 줄 알았어."
처음에는 그냥 인사인 줄 알았는데 뒤에서 한숨쉬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펌이 풀릴 때까지 신경은 쓰였지만 이마저도 잘 지나갔다. 요즘은 단발머리 한 분도 있고, 아주 짧은 머리를 한 분도 있고, 염색을 세게 한 분도 있다. 이제는 전혀 걱정할 게 없다. 사진은 대리급 연구원일 때 똑같은 머리를 하고 찍었던 건데 이때부터는 아무도 터치하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결론을 돌이켜보니, 사원일 때는 역시 연봉을 많이 주고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주는 곳이 최고의 직장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불편한 문화는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게 느껴지니 말이다.
사원, 대리, 과장 중 내게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사원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 신경 써야 하고, 일도 익숙지 않고, 잡무와 반복 업무는 늘고, 원치 않는 회식도 따라다녀야 하고, 복잡한 업무 프로세스에 말만 들어도 벌써부터 지친다. 게다가 월급까지 가장 낮다.
그러니 다 알면서 애써 외면하는 선배가 되지 말자. 이 글을 읽은 선배분들은 사원분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가장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사원님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