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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N Jul 28. 2021

퇴사의 마지막 관문, 면담

내게 주어지는 선택권들

 그 어떤 보고를 하러 갈 때보다 심장이 뛰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되면 차례차례 호출이 온다. 심호흡을 한번 들이켜고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열려있는 임원실 문으로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퇴사의 마지막 관문인 면담을 치를 차례다.






 퇴사 면담은 파트장, 팀장, 실장, 사업부장, 보안팀, 인사팀, 기획팀장까지 총 7번을 했다. 사업부장님과 기획팀장님은 바빠서 사실 면담할 필요는 없지만 꼭 인사드리고 싶었기에 찾아뵈었었다.


 어쩐지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정리해왔던 말을 덤덤히 꺼냈다.



# 직속상관과의 면담


 나의 바로 직속상관이었던 파트장님을 찾아갔다.


 "저, 회사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응? 퇴사? 아.. 너무 당황스러운데..? 파트를 옮기는 게 아니고 퇴사를??"

 

 "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요. 쉬면서 미래를 계획해볼 생각입니다."


 "응. 알겠어. 팀장님께 말씀드릴게."


 퇴사 통보를 처음 한 사람은 나의 직속상관인 파트장님이었다.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처음 말하는 거라 떨리는 목소리를 숨길 수 없었고 순서도 뒤죽박죽 두서없이 말했다. 듣는 입장에서도 얼마나 생뚱맞았을까. 어제도 열심히 일하면서 보고서를 쓰던 부하직원이었는데 말이다.


 30분쯤 지나서 메신저 하나가 날아왔다. 임원실에서 잠시 보자는 팀장님의 메시지였다. 두 번째 면담인데도 처음과 같이 떨렸다.


 "음.. 파트장님한테 전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없나?"


 "네, 지금은 이게 결론인 것 같습니다. 좀 쉬면서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어요."


 "여기서 하지 왜. 잘 적응하는 것 같았는데."


 "학위도 따고 싶고, 개인 창작활동도 하고 싶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서요."


 "글쎄... 개인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거 다 성취한 거랑 여기서 성장하는 거랑 차이가 있나?"


 "주변에 성공사례가 있어서 저도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도전해보려고요."


 "그래.. 이제 열매를 따먹을 시기인데 아쉽네. 그럼 나머지 절차를 부탁할게."


 이 면담이 끝나고부터 이제 동료들에게 퇴사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팀장님 면담하는 모습을 보고 다들 궁금했었나 보다. 부서이동 수준인 줄 알았다가 퇴사 면담이라고 하니 다들 화들짝 놀랐다.


 하루가 지난 뒤, 마지막 정식 면담자인 실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얘기 들었어요. 제가 생각해봤는데, 지치고 힘들면 좀 쉬고 오는 게 어때요? 업무에 매너리즘이 오면 다른 부서로 옮겨줄게요. SRN이 가진 역량이 필요한 부서가 있어요. 불이익은 절대 주지 않을게요. 제가 약속할게요."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고민했던 부분을 잘 해결해주시려고 하셔서 더 망설여지네요.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 처음 마음처럼 움직이고 싶습니다."

 

 "그럼 날 봐서라도 1주일만 시간을 줘요. 다음 주에 다시 만나서 얘기하죠."


 이렇게 1주일을 연기했다. 점점 퇴사의 마음은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정중히 제안을 거절하였다. 이어서 퇴직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다음 면담이 이어졌다.



  # 인사팀, 보안팀 면담


 마지막 출근 일주일 전인데도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메신저와 이메일로 문의를 하고 나서야 겨우 면담을 할 수 있었다. 보안팀은 내 근무지까지 출장 오셨고, 인사팀은 전화로 끝났다.


 "보안 점검을 위해서 휴대폰 검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의무는 아닙니다."


 휴대폰 점검이 끝나고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벌써 여러 번 면담을 거쳐와서 아무 감정 없이 단순 반복하듯 대답했다. 오히려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하게 됐다.


 "경업금지 3년이 어떤 근거예요? 연구원은 1년이다가 책임연구원은 갑자기 3년으로 기간이 뛰는 건 왜 그렇죠?"


 "그 부분은 인사팀 쪽에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저희도 그 정책에 대한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 네. 동종업계도 어디가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자동차 업계인지 연료전지 업계인지요."


 "글쎄요. 저도 궁금한 부분입니다만 인사팀 쪽에서 알지 않을까요?"



아직 답변 받지 못한 문의


 딱히 본질적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인사팀 면담 때도 똑같이 질문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었다. 그래서 이메일과 사직서에 이 내용에 대한 부분에 답변을 바란다고 적어 보냈다. 혹시나 메일 전달이 되지 않았나 싶어서 몇 번 더 보냈지만 답장은 받지 못했다.



# 기획팀장, 사업부장 면담


 우리 상급부서의 기획팀장님과는 면담보다는 덕담 수준의 대화였다. 이 산업 분야의 이해가 있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데, 혹시 기획업무를 해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을 해주셨다.


 이미 퇴사 프로세스를 다 마친 상황이라 거절을 했다. 프로세스는 문제가 되지 않다며 원한다면 그거 다 취소해주겠다고 하셨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면담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사업부장님을 찾아갔다. 대화 중 번아웃이라는 말을 드리니 이해해주시면서 푹 쉬고 좋은 선택 하라고 격려해주셨다. 본인도 예전 걱정이 많을 때 자고 일어나니 이불이 다 젖을 정도로 진이 빠진 적이 있다고 하셨다. 다 잘될 거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의 현 상황을 이해해주시고 덕담까지 해주셨다.



 이렇게 나의 최종 면담이 끝났다. 퇴사 면담에서 나는 휴직, 부서이동의 선택권을 받았다. 우선 휴직이라는 선택권은 작년 3주의 휴가를 지냈음에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서이동 선택권은 현재 양산 업무에서 벗어나서 좀 더 연구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회사에 올인해야 하는 것은 같기 때문에 나의 불안감을 없애긴 역부족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인 창작활동이나 대학원 진학 등의 활동을 해도 되는지 물었는데 답변은 '노'였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확정 짓게 되었다.






 퇴사의 순서를 간단히 읊자면, 고민 > 결정 > 통보로 이뤄진다. 많은 사람들은 고민 단계에서 멈춰있다. 고민은 많이 할수록 좋은 것 같다. 결정 단계로 넘어갔다면 절대로 흔들리지 않기를 추천한다. 결정했다면 이제 통보할 방법만 고르면 된다.


 통보 역시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알릴 사람은 직속상관이다. 나의 경우 파트장, 팀장님께 가장 먼저 사실을 알렸다. 친한 지인에게 알리는 것은 이다음 할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단계에서 번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인과 퇴사 고민을 나눴는데 면담 중간에 취소를 하면 어떻게 될까.


 소문은 생각보다 빠르다. 그리고 내용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누군가가 교묘히 왜곡하여 전파한다. 이로 인해 의도치 않게 면담 전보다 더 회사를 다니기 힘들어질 수 있다.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처음 생각을 바꾸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럴 경우는 희박하지만, 못된 리더는 어차피 나갈 사람이니 힘든 일을 몰아서 줄 가능성이 있다. 인사 평가도 물론 바닥을 칠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퇴사 고민은 현 직장과 관련이 하나도 없는 외부 사람들과만 하는 게 좋다. 객관성도 확보하고 고민도 하소연하고 일석이조다. 고민 속에서 내가 퇴사하는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면담 과정에서 이 이유를 말하게 되고, 리더는 그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리더와의 면담이 끝나면 동료와 마지막 티타임을 갖길 바란다. 우스갯소리로 하루에 티타임을 10번도 가진 적이 있다. 음료수에 함유된 카페인, 당 때문에 불면증, 당뇨 오게 생겼다고 장난쳤던 게 생각난다. 생애 저런 여유도 한번 겪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이런 시간들이 모두 다 소중하다.


 이 단계를 지나면 이제 생각과 마음이 정리된다. 이렇게 되면 몸은 생각하지 않아도 움직이게 된다. 짐을 다 챙기고, 동료들에게 마지막 이메일을 보내고, 동료들의 마지막 얼굴을 기억하고, 정문을 나오면 된다.



 두서없었지만, 퇴사에도 순서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리더, 지인의 순서로 말하고 꼭 직접 말하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보는 그들이지만, 퇴사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퇴사의 이유를 잘 찾아내고, 이걸 해결할 방법도 함께 찾아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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