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찬 꿈을 꾸던 어린 날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를 가면 자유로울거란 희망을 가졌고, 대학생 때는 직장인이 되면 더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될거라는 희망을 품었었다.
나의 마지막 수강신청은 2010년 2학기였다. 11년이 지나 다시 수강신청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학기의 성적과 여유로움은 이 수강신청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보를 최대한 모아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수강신청 과목 선정은 주전공과는 상관이 없다. 최고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건 시대가 지나도 같은 것 같다. 선배 학생들의 조언으로 힘든 과목을 빼고 4과목을 선택해서 시간표를 구성했다. 전쟁은 지금부터였다.
IT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서버 접속이 원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펐다. 선배 학생이 수강신청 때는 서버가 엄청나게 느려지니까 유선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했다. 더 좋은 방법은 PC방을 가는 것이라 했다. 어째서 그 옛날과 변한게 없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그냥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사실 귀찮은 것이 더 컸다. 우리집은 인터넷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선 인터넷이 없었다. PC방은 폐쇄된 공간이라 가기 두렵기도 해서 그냥 집에서 휴대폰 테더링으로 접속했다. 노트북 시간으로 10시가 되는 걸 멍하니 지켜봤다.
9시부터 시간표를 점검하고 어떤 과목부터 들을지 하나씩 우선순위를 정했다. 머리속으로 무사히 성공하는 장면을 시뮬레이션했다. 9시 30분부터 자리에 앉아 시계를 지켜보면서 혹시나 접속이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로그인을 수시로 했다.
'수강신청 기간이 아닙니다.'
시계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30분동안 오랜만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멍했던 정신이 또렷해지고 둔했던 클릭이 조금씩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셔서인가, 그 떨림이 더 가중된 것 같았다.
'5초 전, 4초 전, 3초 전, 2초 전, 1초 전'
'클릭. 클릭,,, 클릭,,,,,클릭,,,,,,,클릭'
조금 전까지만해도 굉장히 빨랐던 서버가 갑자기 느려졌다. 화면이 멈춘 듯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 학생이 알려준대로 가만히 기다렸다.
'느려질 수 있어요. 그냥 신경쓰지 말고 천천히 기다려요. 그러다가 튕기면 다시 접속하고, 듣고 싶은 과목 하나씩 눌러요. 그러면 다 클릭 되어 있을 거에요.'
그냥 평범한 이야기였는데 당사자에겐 엄청난 꿀팁이었다. 조언을 듣지 않았더라면 다른 브라우저로 계속 재접속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차분히 기다렸다. 2분쯤 지나서야 화면이 바뀌고 접속이 되었다.
아까 정한 우선순위대로 과목을 클릭했다. 역시나 화면이 멈췄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묵묵히 다른 과목을 클릭했다. 5분이 지나서 접속이 끊어졌다는 에러가 떴다.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점점 접속자가 늘어서인지 더 느려지는 듯 했다. 5분이 더 지나서야 접속이 되었다.
'어? 2과목 성공했다.'
와, 그 성취감이란 우습지만 대단했다. 어려움을 극복한 기분이랄까. 이 기분에 힘을 얻어 남은 클릭을 이어갔다. 역시나 접속이 끊어졌다. 몇번을 반복하고 나니까 20분이 훌쩍 지났다. 잠시 후 화면이 떠서 보니, 수강과목을 보니 내가 계획한 4과목이 들어가 있었다.
해냈다. 클릭이 느린 37살 대학원생이 해냈다. 이게 뭐 대단한 성과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뿌듯하고 기뻤다. 수많은 유선 인터넷 접속자를 인내심과 노련함으로 이겨냈다. 하지만 잠시 후, 선배, 동기 학생이 수강신청에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괜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선배 학생도 다행히 다른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안타깝지만 수강신청 전쟁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듯 하다. 다음 전쟁은 최신식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스피드 전을 선택할 것인가. 인내심과 노련함으로 또한번 극복할 것인가를 잘 선택해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