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했다면 반드시 퇴사하게 되어있다. 출생과 사망 같은 필연적 관계이다. 퇴사자를 미워하는 것은 어쩐지 어색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더 함께하지 못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우선이고, 떠난 사람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이 다음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마무리에 대해 깊게 고민했고 행동에 옮긴 사람일 뿐이다.
퇴사자는 시간이 부족하다. 퇴사 절차도 낯설고, 게다가 어렵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인수인계를 위해 한 달 전 공지했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부족했다. 퇴사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최근 퇴사를 생각하는 선후배들이 많아진 듯하다. 나도 한번뿐인 퇴사였는데 그들에게 절차를 알려주는 사람이 되었다.
'너만 힘드냐, 버텨야지. 버티는 게 장땡이야.' '어딜 가도 똑같아. 여기 있는 게 더 나아.'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저런 말들이 정설로 여겨지면서 힘들어도 버티기로 시간을 유보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인식이 많이 변했다.
'힘들면 방법을 찾아야지. 해결해야지.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이제는 많은 선후배들이 생각을 바꾸고 있다. 마지막 출근길은 어떻게 장식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나의 이야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마지막 출근 날, 퇴사자는 평소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마음이 시원할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보안 규정을 이유로 회사 관련 서류를 파쇄하고, 그동안 사용했던 PC와 사무용품을 반납했다. 이게 무슨 큰일도 아닌데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부터 정리할 걸.
오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조용히 개인 짐을 챙겼다. 영화에서는 깨끗한 박스를 주던데 그마저도 없어서 사무실 구석에서 마스크가 담겼던 박스를 구했다. 어차피 책 몇 권이 전부여서 다행이었다.
친했던 동료들이 쭈뼛쭈뼛 하나둘씩 선물을 줬다. (기프티콘도 너무 고마웠지만 담지 못했다.) 잠시 같이 있었던 신입부터 휴직 중인 동료까지 나의 마지막 날을 장식해줬다. 비었던 박스 공간이 다행히 채워졌다. 울컥울컥 하는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꾹꾹 누르고 있었다.
평소 나랑 비슷한 성격으로 말이 잘 통했던 선배가 내 등을 아무 말 없이 툭 쳤다. 그리고는 그냥 멍하니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서로를 쳐다봤을 뿐인데 슬픈 감정이 그대로 다 느껴졌다.
'네 마음 그대로 다 이해하고 있어.'
그때부터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시뻘게진 눈으로 서둘러 나머지분들께 인사드리고 건물 밖을 나왔다. 그냥 몰래 나가고 싶었는데 같은 팀 동료들이 가는 길을 배웅해줬다. 동료 몇 명은 내가 외롭지 않게 함께 눈물을 흘려줬다.
마치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팀원들은 군인 결혼식 입장처럼 손으로 통로를 만들어줬다. 내가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지 감동이었다.
몇몇 리더분들은 푹 쉬고, 친정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돌아오라고 달래주셨다. 말 뿐이었겠지만 그마저도 감사했다. 단지 그때 울던 모습이 생각날 때마다 조금 창피할 뿐이었다.
사업부 전체에 퇴직 메일을 보내고 나왔을 때 친하게 지내던 형들이 연락 왔다. 나랑 10년을 함께했던 형들이다 보니 느낌이 남달랐나 보다.
'다른 사람들 메일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네가 쓴 메일은 진하게 와닿는다. 읽다가 울컥했어.'
그 밖에 오래전 같은 팀이었던 분들의 놀람의 전화 몇 통. 갑작스러워서 축하를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겠지만 이번이 아니면 연락하지 못할 것 같아 용기 내서 주신 전화라는 거 다 알고 있다.
밤늦게는 선배 한분이 따뜻한 회신을 보내주셨다.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제 탓일까 미안한 마음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나마 적어 보냅니다. 글은 짧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짧지만 감동 있는 시 한 편을 읽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시던 분이었는데 마지막 안부 인사도 역시나 젠틀하고 멋지다.
퇴사자는 여러 가지 눈길을 받게 된다. 첫째로는 부러움의 눈길, 둘째로는 안타까움의 눈길, 세 번째는 낙인의 눈길이다.
퇴사자는 되도록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나름의 배려를 하고 나간다. 그러나 한 집단의 일부였던 내가 나가게 되면 주변은 당연히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업무를 선 딱 갈라서 분장했다면 상관없겠지만 일이란 그렇지 못하다. 조금씩 겹친 경우도 있고 정말 겹친 경우도 있다. 퇴사자의 빈자리는 실무진, 리더들에게 크나큰 타격이다. 그러다 보니 좋은 눈길을 줄 수가 없다. 응원의 말도 잠시, 현실로 돌아와 보면 원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분들을 생각하고 최선의 노력을 했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떠나는 분들도 남은 분들을 위해 최대한 인수인계 잘하고 마무리 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