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RN Mar 02. 2021

퇴사 후 찾은 내 두 가지 모습

하나씩 주워 담는 중

 퇴사 후 시간 여유가 생겨 주변 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한 나의 모습과 다르게 나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10년 만에 본 사람도 있고, 더 오래된 사람도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정말 변해서 그랬던 것일까. 낯선 내 모습이었다.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잃었던 내 모습을 하나씩 주워 담는 일이었다. 소수의 인원과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 모습도 정형화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습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분야의 지인들을 만나서 얘기 나누다 보니 내게도 꽤나 매력적인 모습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내 현재는 취미도 없고, 회사 일 하나에 목숨 걸고, 외형은 가꾸지 않고, 건강은 돌보지 않아 늘 피곤해하는 30대 후반 남자이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유명한 유튜버가 된 지인을 만났다. 그 지인은 나의 대학시절에 대외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동생이었다. 어렵게 동생의 사무실 앞으로 인사를 하러 갔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 나누다가 최근 퇴사 소식을 전했다. 동생은 퇴사 선배로서 내게 응원과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내가 잊고 지냈던 모습 하나를 찾아주었다. 그 동생은 나를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었다고 기억해주었다.


 ‘형을 대학시절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형이 만나자는 전화를 피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분명 작은 힘이라도 되어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저도 도울 수 있다면 할게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글로 적는 일부터 시작했다. 무엇이든 도전해보던 내 무모한 모습을 찾은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신나고 즐거웠다. 조만간 유튜브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최근 달라진 또 다른 내 모습은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있을 때는 음악조차 소음으로 느껴졌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은 음악을 듣지 않았다. 소모할 감정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퇴사 후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곡을 들을 때마다 희로애락이 굽이친다. 얼마 전,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정주행 해서 다 봤다. 신나는 노래에서는 두근거림을 느꼈고, 슬픈 노래에서는 찡한 느낌을 느꼈고, 멋진 가창력을 내뿜는 노래에서는 몰입된 감동이 느껴졌다. 문득 생각해보니 나의 유일한 취미는 노래를 듣는 것과 부르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취미를 잊고 살았었다.
 며칠 전, 다음 주 결혼 예정인 친구와 청첩장도 받고, 안부도 물을 겸 만났다. 그 친구는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내게 축가를 부탁했다. 최근 3년간 노래방 한번 안 갔는데, 이러한 큰 부탁을 받으니 처음에는 엄청 당황했다. 혹시나 해서 근처 코인 노래방에 가서 이곡 저곡을 불러봤지만, 목에 상처가 난 듯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곡을 부르기로 했다. 오랜만에 노래도 부르다 보니 잃어버렸던 내 두 번째 모습을 되찾은 듯싶었다. 친구에게 흑역사를 남기지 않도록 열심히 연습 중이다.




 월급날 만을 기다리며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바랐던 지난날이 떠올라 씁쓸했다. 매일이 25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 전의 시간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그 시간이 너무도 아까워서 후회가 된다. 이제 내 꿈은 매일이 월급날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다. 잊고 있던 내 모습들이 하나둘씩 살아나면, 지금보다 더 나은 기회가 생길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오늘도 부끄럽지만 이렇게 글 하나를 적었다. 얼른 다른 모습 찾으러 떠나야겠다.

이전 12화 나를 원하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