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순간조차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사람
요즘은 쉬는 날이면 집에만 있기 아쉬워서 어디든 나가곤 한다. 특히 피크닉을 즐겨하는데 차가 있는 남자친구 덕분에 한강공원, 올림픽공원, 을왕리, 행궁동 할 거 없이 방방곡곡으로 계절을 즐기러 향한다. 한 번은 토요일에 남자친구와 망원한강을 갔는데 다툼을 하고 난 후라 우리는 어색한 공기로 함께했고 그 어색함이 싫어 괜히 노을이 예쁘다는 형식적인 말을 주고받았다. 연인 간의 싸움은 늘 그렇듯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여 후회로 마무리된다. 그때의 나는 뭐가 그렇게 불만이었을까 어른스럽지 못했던 나의 행동을 반성하며 어색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날의 한강은 여전히 평화롭고 예뻤지만 내 기억 속 행복으로 저장되진 않았다.
다음 날 일요일, 남자친구와 화해를 하고 어쩌다 보니 이틀연속 한강을 가게 되었다. 이번엔 반포한강으로 갔는데 맛있는 밥을 먹고 한강으로 향하던 길에 전에 가고 싶었던 카페가 보여 차를 새웠다. 멀리서 봤는데 역시나.. 줄이 너무 길어서 실망하던 찰나에 포장 손님은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직원분의 말에 우리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길게 줄을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승리? 의 미소를 지우며 당당히 카페로 입장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잔뜩 사들고, 덥다는 핑계로 옷가게에 들어가서 괜히 어울리지 않는 옷을 서로에게 대보며 시시콜콜한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늘이 있고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아 캠핑의자를 폈다. 입이 짧은 우리는 사 온 디저트를 반 이상 남겼지만 적당히 배부른 그 기분이 딱 좋다. 뉘엿뉘엿 해가 져물어가며 비슷한 노을인데도 어제와는 다른 온도로 서로를 바라보며 노을이 너무 예쁘다는 진부한 말을 다시 주고받는다. 이상하게 남자친구와 화해한 후에는 냉전상태에서 하지 못했던 말이 많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계속 재잘되게 된다. 그날도 한강을 등지고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바쁘게 입을 움직이고 있는데 계속 떠드는 내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말하였다.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부끄러워 별다른 티는 내지 못하고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저 들어주는 남자친구의 그 표정도 너무 예뻤기 때문에. 그 순간, 정말 소소하지만 분명하게 행복했다.
비슷한 하루를 보냈는데 다른 하루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특별한 일이 줄어드는 나의 인생에 평범한 순간마저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행복감을 결정짓는 건 나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는 것을 최근 들어 많이 느끼고 있다.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주는 그와 그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내가 너무 좋다. 역시 행복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어떤 순간을 함께하느냐가 결정짓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