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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Feb 22. 2024

눈으로 덮힌 새벽의 천변을 거닐며



  새벽 6시 30분.  출근하는 아들을 따라나선 것은 눈 때문이었다. 밤은 세상을 설국으로 바꾸어 놓았다. 입춘도 지났으니 곧 봄이 오겠다고 설레발을 치던 조급한 마음들을 돌려세워 다시 겨울의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찾아온 겨울 순백의 아름다움은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사람의 발자국과 차들의 바퀴에 훼손되어 있었다. 희뿌윰한 새벽하늘 아래 가로등의 불빛을 받는 나무들 만은 눈을 온통 뒤집어쓴 채 아직은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드문드문 자동차들이 느릿느릿 지나갔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아 차바퀴와 사람들의 발자국에 도로의 눈들은 벌써 녹아서 질척거렸다. 눈이 내리는 것 같지 않은데 가로등 불빛이 비친 허공에는 사선으로 천천히 내려앉는 눈발이 보였다. 마치 불빛이 비치는 곳에서만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새벽 배송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쿠팡트럭이 천천히 아파트로 들어서고 출근길인 듯한 행인 두세 명이 눈길을 헤치며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들의 뒤를 짧은 다리로 종종 종종 뛰다시피 따라가다가 아파트 정문에서 다녀오라는 짧은 인사말을 하고 돌아섰다. 곧장 도로를 따라 아파트의 후문 쪽으로 걸어가 도로가 끝나는 지점과 천변 위의 짧은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 사잇길로 들어섰다.  사철 푸른 침엽수의 긴 가지가 쌓인 눈의 무게에 휘어져 좁은 길을 터널입구처럼 만들어 놓았다. 눈의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으로 흰 눈을 밟으며 천변으로 내려서자 제법 카랑카랑한 물소리가 들렸다. 그저께 밤에 비가 와서 불어난 물이 내는 소리였다. 혹시 내가 눈 덮인 천변의 첫 행인은 아닐까 일말의 기대를 품었으나 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조성된 산책길에는 벌써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어지러웠다. 겨우 6시 40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내가 사는 아파트 뒤편의 이 천변은 천천히 걸어서 왕복 30분 정도로 짧다. 주위는 온통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으며 천변이 끝나는 지점에 창고형 할인마트가 있다. 폭이 2cm 정도 되고 양쪽의 산책로도 비슷한 폭이다. 중간중간에 대리석 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와 무지개모양의 다리가 서너 개 있고 중간 지점의 갈대습지에 가까운 폭이 가장 넓고 둥그스름한 곳은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놓은 데크도 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가문 날에는 냇물이 말라 바닥의 모래와 이끼 낀 돌들이 고기의 내장처럼 드러나고 장마가 지면 황톳물로 변한 냇물이 산책로까지 차올라 천변으로 내려가는 입구마다 출입금지라는 노란 안전띠를 걸어 놓는다. 바닥이 다 보일만큼 얕은 곳도 있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곳도 있다. 모래바닥도 있고 자갈바닥도 있다. 어떨 때는 물이 맑고 어떨 때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뿌옇다. 팔뚝만 한 잉어나 붕어들이 한가롭게 유영하기도 하고 그들의 새끼인 듯한 작은 고기떼가 한 곳에 모여 있다가 화르르 흩어지기도 한다. 어떨 땐 그 많은 고기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인공과 자연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한여름에는 물풀들이 웬만한 아이 키만큼 크고 무성하게 자라 산책로까지 침범하는데 제초기의 기계음이 요란한 다음 날이면 꼭 터벅 머리 총각이 뒤늦게 이발한 듯 시원하고 깔끔하게 변신해 있다.  서울의 청계천이나 어디 어디의 호수공원에 비하면 볼품없고 작고 허접한 천변이지만 이 근처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최고의 산책길이고 운동길이다. 봄이 오면 봄꽃이 차례로 피고 지고 여름에는 싱싱한 풀이 무성히 자라고 가을에는 맥없이 시들고 겨울에는 묵묵히 견딘다. 가장 가까워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수고하지 않고(물론 몇몇 관리인들의 수고는 있겠지만) 누리는 자연이다. 수인(囚人)에게는  작은 창으로 밤하늘 별과 달과 눈과 비를 볼 수 있는 것이 살아서 누리는 소박하지만 절절한 기쁨이라고 한다.  나는 십 년이 넘도록 이 천변 가까이에 살고 있다. 나는 수인(囚人)이고 천변은 수인에게 소박하고 절절한 위로를 주는 작은 창이다.

  

  내가 천변에 갈 때마다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은 해오라기이다.  천변 건너 아파트 지나 낮은 언덕길을 오르면 유난히 키가 크고 오래된 나무가 밀집해 있는 철망을 쳐 놓아 접근을 금하는 둥그렇게 낮은 언덕이 있는데 그곳이 해오라기 서식지다. 이 천변에는 가끔 거기서 날아온 듯한 해오라기가 눈에 띄는데 항상 한 마리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마음이 갔다. 어둑어둑하게 해는 지는데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고요히 가는 두 다리를 물속에 담그고 서 있는 해오라기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고 직장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도 정서적으로 외롭고 쓸쓸하고 허허로운 날들이 많았다. 혼자인 해오라기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심각한 시기는  지나온 것 같지만 아직도 나는 그런 정서가 가슴 깊숙이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음을 느낀다. 스스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무리에서 내쳐져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 혼자 떨어져 나왔다고 믿고 싶었다. 언제부터인지 혼자인 해오라기가 우연히 만난 친한 친구처럼 반가워졌다. 안녕 해오라기야... 너도 혼자구나... 나도 혼자야... 괜찮지?... 나도... 괜찮아... 그렇게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어느 날 저녁 무렵의 천변 산책길에서는 해오라기가 보이지 않았다. 날은 어두워지고 나는 왕복 두 번의 산책을 한 후 막 천변을 떠나려 할 참이었다. 그때 나는 다리 밑 옅은 어둠 속에 고요히 서 있는 해오라기를 발견했다.  그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다리 밑 해오라기를 향해 어머... 안녕... 하고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소리가 작지 않았는지 산책하던 두 세명의 사람들이 나를 흘끗거리며 지나갔었다.


   천변의 눈 덮힌 산책로는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더욱 어지러웠다. 우산을 쓰고 정담을 나누며 나란히 걷는 중년의 여자들도 있고 출근길인 듯 급하게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보였다. 해오라기는 주로 저녁 무렵 만날 수 있으나 혹시나 싶어 나는 자주 눈 덮힌 아름다움에서 시선을 거두어 물 위를 살폈다.  어느새 새벽은 지나가고 아침 이 다가와 있었다. 천변의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때는 이미 세상을 가득 채웠던 순백의 아름다움은 햇빛을 받은 눈사람처럼 눈에 띄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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