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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Sep 10. 2024

요즘 나는 자주 남편을 크게 웃게 한다

당신이 없는 동안 당신이 그리웠나 봐...

매운갈비찜과 아욱국

어렵고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직장 상사 스트레스로 퇴사한 아들은 9월부터 케이티에서 주관하는 6개월 과정의 코딩 교육을 시작했다. 9월 한 달 이론 교육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아들은 아침 9시 모니터 앞에 앉아 온라인 수업을 받으며 중간에 10분 휴식,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점심시간 이후 오후 10분의 휴식시간 후 6시까지 수업을 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와 헬스클럽도 1년 등록하여 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아들이 방문을 닫고 수업에 들어가면 나는 아들의 간식과 점심 준비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글도 쓴다. 오후 6시 즈음되면 안양천에 나가 걷거나 달리기를 한다.


어제는 점심으로 중앙시장에서 사 온 돼지갈비로 매운 갈비찜을 하고 아욱국을 끓였다. 주중의 환한 대낮에 집에서 서른 살이 넘은 다 큰 아들과 함께 마주 앉아 먹는 점심시간은... 그냥... 괜찮았다. 누구나 아니 아무나 가져보지 못하는 귀한 시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 하기로 했다.


나 직원식당 아줌마 됐네... 직원 점심시간에 맞춰 점심하느라 바쁘고... ㅇㅇ씨... 오늘 점심 어때요? 맛있어요? 많이 먹고 열심히 해요...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건의하시고... 그렇게 농담을 건네면 아들은 끌끌 웃으며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비웠다.


어제 저녁에는 안양천에 나가 걷다가 뭔가 미진하고 성에 차지 않고 몸의 근육들이 꿈틀거려 냅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마도 을을 느끼게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낮의 열기는 아직 한여름 못지않다지만 이제 선선한 저녁바람에 맥을 추지 못했다. 9월인 것이다 9월... 9월도 벌써 중순을 향해 치달리고 있지 않은가. 무성하고 빼곡한 천변의 풀들도 기운을 잃기 시작했고 잔잔하게 흐르는 물은 깊고 순해졌다. 나와 같은 속도로 달려와 안기는 바람이 너무 부드럽고 감미로워 나는 자주 가슴을 한껏 내밀고 두 팔을 벌리고 열 손가락을 폈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연인을 맞이하기라도 하듯이.

그래서인지 아무리 뛰어도 힘이 들지 않았다. ㅇㅇ에 살 때는 1분 넘게 뛰기가 힘들었는데 10분을 뛰어도 지치지 않았다. 이 안양천이 나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고 뛰면서 생각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낮 열두 시부터 한강을 향해 걷기 시작하여 열세 개 다리를 지나 석수동까지 걸어갔다가 오후 여섯 시 무렵 출발지에 다시 돌아왔다. 걷다가 천변과 굴로 연결된 '카페 안녕 그린마루점'을 발견했다. 안양천생태이야기관과 기후변화체험교육센타 안에 있는 그린마루는 그래서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들이 많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카페였다. 이렇게 시민들의 최고 휴식공간인 안양천을 관리 관찰하고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교육도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든든하고 고마운 맘이 들어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커피에 샌드위치까지  주문해서 먹었다.

안양천으로 나왔다. 한강을 향해 난 길 위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서성이다가 돌아섰다. 더 걸을 수도 있었지만 거기서 돌아선 것이다.  어쩐지 최종 목적지인 한강은 남겨두고 싶었다. 꿈처럼 남겨두고 좀 오래 희망하며 바라보고 싶어졌다. 한 개쯤 이룰 수 있는 꿈을 간직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날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ㅇㅇ에선 1분 뛰기도 힘들었는데 여기선 10분을 뛰어도 힘이 남아 있더라고, 걷다가 다시 뛴 시간을 다 합하면 이마도 30분은 넘게 뛴거라고  자랑을 했더니 남편은 크게 웃으며 여기로 이사 온 게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아마도 내가 뛴 시간을 엄청 부풀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굳이 진실을 따지지 않았다. 대신에 

그런가 봐... 여기랑 궁합이 맞나 봐... 당신보다 더 궁합이 좋은 거 같아...라고 말해 다시 한번 크게 웃게 만들었다.


오늘 아침 출근준비를 끝낸 남편이 마지막으로 안경을 닦기 위해서 안경집 속 안경 닦는 천을 찾았다. 늘 거실의 티브이 옆 거실장 위에 놓여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서랍들을 열어보았다. 그제야 생각나서 나는 내 방에 가서 남편의 안경집을 가져와 내밀었다.

남편은 안경집 속 안경 닦는 천을 꺼내 안경을 닦으면서 물었다. 이게 왜 거기 가 있어?

나는 대답했다.

당신 출근하고 집에 없을 때 당신이 그리워서인가 봐...

나도 모르게 조금은 연극적인 이런 맨트가 튀어나왔다. 사실은 내 안경집인 줄 알고 가져다 놓은 건데...나의 뜻밖의 맨트에 나조차도 부끄러웠다. 이건... 연애 때나 쓰던... 아니 연애 때도 상대방 바로 앞에서 하기엔 간지럽고 쑥스러운 말이 아닌가...


으으으으으...


우리는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개미가 몸을 기어 다니는 듯 간지러운 느낌에 몸을 꼬면서 크게 웃었다. 남편은 웃음소리가 크고 몸짓이 작았고 나는 몸짓이 크고 웃음소리는 더 컸다. 이런 간지러운 말이... 어떻게... 튀어나온 거지? 우리에게선 이미 멀리 떠난 어느 젊은 날의 짧은 달큰함이 아닌가...


아마도 안양천이 잠깐 마법을 부린 모양이다. 마법은 언제고  풀리는 법... 그때까지만 이 마법의 시간을 누려볼까 한다.  그런데...이러다가...마법의 시간이 끝날때 쯤 우리의 몸이 한껏 오그라 들어 있으면... 어쩌지??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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