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 여러 잡다한 뒤처리와 이사의 피로가 가라앉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셋째 주에 의왕에 사는 친구를 불렀다. 30분 정도 되는 거리라 아침 일찍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전화해서 브런치먹으러 오라고 했다.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기뻐하며 내 예상을 크게 빗나갈 만큼 일찍 도착했다. 내가 그동안 유튜브로 익힌 브런치를 다 준비하기도 전에급하게 화장한 듯 허옇게 뜬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얼굴로 들어섰다. 같은 백수이고 독서라는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40년 넘는 친구이다 보니 특히 자신의 집 가까이로 오는 나의 이사를 누구보다 반겼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빵과 계란프라이와 찐 단호박과 사과와 땅콩버터와 딸기잼과 지중해식 오이토마토샐러드를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함께 내놓았더니 와우 너의 집에서 너와 함께 브런치를 먹다니... 하면서 감격해했다.
일주일이 지난 즈음에는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청계산 맑은 숲 계곡으로 소풍을 가자 했다. 김밥과 샌드위치를 준비할 터이니 나는 사과와 읽을 책을 챙겨서 오라 했다. 폭염으로 계곡물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돗자리를 깔고 발을 담그고 있기에는 아주 적당했다. 천천히 샌드위치와 김밥을 먹은 후 친구는 내가 가져간 '2024 현대문학상소설집'을 나는 친구가 가져온 '곰숙씨가 사랑한 고전들'을 읽었다. 책을 느리게 읽는 나는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라는 한 챕터를 겨우 읽었는데 친구는 단편 세 편을 읽었다고 했다. 물가이기 때문에 앉아서 책 읽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발목까지는 물에 담그고 앉아서 읽다가 서서 읽기를 반복했지만 친구는 한 곳에 자리 잡고 앉은 채로 이동 없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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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노년을 두려워할까? 노년을 완숙한 시기가 아니라 결핍의 시기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감각적 쾌락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키케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월이 정말로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약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 준다면, 그것은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쾌락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은 약점이 아니라 노년의 특권이란다. 왜? "자연이 인간에게 준 역병 가운데 쾌락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네... 쾌락의 탐욕스러운 추구는 쾌락을 충족시키도록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거리낌 없이 부추긴다는 것이었네"
쾌락이 역병이라고?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 하지만 한 번 따져 보자. 역병에 걸리면 손쓸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쾌락적 충동에 휩쓸리면 누구도 못 말린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연로한 소포클레스에게 누군가 물었다. 아직도 성적 접촉을 즐기느냐고. 그의 돌직구
"아이고 맙소사! 사납고 잔인한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이제 나는 막 거기서 빠져나왔소이다"
이번엔 '사납고 잔인한 주인'이란다. 그런 주인한테 사로잡혀 있는 한 자유는 없다. 노예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수밖엔. 물과 불이 생리의 기본이라면 쾌락은 불이 물을 압도하는 불균형에서 비롯한다. 불은 방향도 목적도 없다. 그저 타오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그래서 쾌락에 휩쓸리다 보면 내 안의 물이 점점 더 고갈되어 버린다. 생명활동이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그 점을 환기한다면 '역병'이니 '사납고 잔인한 주인'이니 하는 키케로의 비유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 비로소 그 거친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생리적으로 불기운이 약해지면서 물과 불의 잔잔한 균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키케로에 따르면 노년은 '마음과 성욕과 야망 등 온갖 전투를 다 치르고 난 뒤 자신과 더불어 화해하는 시간'이다. 그럼 노년의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친구들과의 대화' 그리고 '왕성한 탐구열'. 요컨대 벗들과 함께 지혜를 일구는 시기, 그것이 바로 노년이다. 참으로 '복된'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당연한 이치가 우리에겐 참으로 낯설기만 하다. 우리 시대에 있어 노인의 삶이란 첫째는 경제, 그다음엔 쾌락이다. 풍부한 노후자금으로 청춘 못지않은 건강을 누리면서 여생을 맘껏 즐기는 것. 이것이 노인담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노후의 즐거움은 오직 에로스적 관계다. 부부 사이의 끈끈한 친밀감을 회복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사랑을 만나라고 부추겨댄다. 오직 그것만이 고독과 쓸쓸함을 극복하는 길이라면서. 과연 그럴까? 키케로의 말처럼 그건 간신히 빠져나온 '사납고 잔인한'주인의 손아귀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P204 -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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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낙천'과 낙관'이 이렇게 다른 줄 몰랐네... "
단편을 세 편이나 읽고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는 친구가 한 말이다.
---낙천적은 세상과 인생을 매우 즐겁고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주로 사람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편. 낙관적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견해를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하는 어휘.---
오호... 무심코 그냥 자주 쓰는 말인데 이런 차이가 있군 그래...
우리 가까이에는 모기장 같은 텐드 속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싸 온 음식을 먹은 후 나란히 누워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중년의 남녀가 있었는데(중년을 약간 넘긴 듯도 하고..) 호기심 많은 우리는 자주 흘끗거렸다. 부부일까? 친구일까? 불륜일까? 궁금해하면서.
끊임없이 주거니 받거니 수다를 떠는 걸로 봐서 부부는 아닐 것 같아... 부부는 그저 말없이 있는 시간이 더 많을걸... 저 봐라... 여자가 앉아서 통화하고 있으니 남자가 누운 몸을 반쯤 일으켜 여자의 허리께 옷을 들추고 부채를 부쳐 준다.... 오래되어 편안해진 불륜일까? 아니 재혼한 지 얼마 안 된 부부일 수도... 둘 다 혼자된 오래된 친구일 수도...
이마트 광교점 조선두부 점장 둘째 오빠
이사 셋째 주 토요일에는 제사가 있었다. 전주에서 남편의 누나인 형님 내외분과 시동생과 조카가 왔다. 이사 이후 첫제사이고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시댁 식구들이 모이는 제사라 조금 더 신경을 썼다. 제사음식 외에 수육과 불고기과 기타 밑반찬들도 더 만들었다. 건강에 신경 쓰는 형님도 건강이 좋지 않은 시동생도 밥 한 그릇을 다 비워서 내심 뿌듯했다. 그러나 워낙 칭찬이나 감정표현에 인색한 집안이라 아무도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반찬이 입에 맞나요? 형님은 탕국이 별로면 냉콩나물국도 있는데 드릴까요? 부추무침 그릇 주세요... 더 드릴게요... 부추무침 괜찮지요? 시금치가 너무 비싸고 비싼 게 좋으면 또 괜찮은데 영 시들시들한 것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파란 나물로 뭐가 좋을까 하다가 부추를 생각해 냈는데... 부추가 건강에도 좋잖아요... 부추가 파의 종류 같아서 제사에 올리면 안 될까 염려되어 네이버에 찾아보았더니 올려돼 된다고 나왔더라고요... 유튜브에 나왔는데 정말 방법도 간단해요... 살짝 쪄서 국간장과 참기름과 깨소금만 넣으라 해서 그렇게 했더니 정말 괜찮더라구요... 정말 괜찮죠? 형님... 수육과 먹어도 괜찮구요.... 수육이 이번에 정말 맛있게 잘 됐어요... 마트가 아니라 동네 정육점에서 샀는데 그 아저씨가 좋은 고기로 잘 준 것 같아요...
제사 후 월요일에는 역시 안양에 사는 둘째 오빠네를 초대했다. 말이 초대이지 그냥 제사음식 먹으러 오라고 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삼겹 수육은 넉넉하게 사서 남은 한덩어리를 삺으면 되었고 소불고기는 남은걸 내놓기 그래서 다시 구매해서 재웠다. 이번에 인기가 좋았던 부추무짐은 넉넉히 했는데도 다 먹어서 다시 했다. 재래시장 생선가게에서 산 조기도 두마리 남아 있었다.
둘째 오빠는 사립대학교 교무과에서 근무하다가 몇 년 전 정년을 채우지 않고 퇴직하여 2년 정도를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면서 그 당시 병원에 다니던 엄마의 케어를 도맡아 하다가 지금은 이마트 광교점에 조선두부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두부를 만들고 판매를 하다가 오후 서너 시쯤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나머지 판매를 맡기고 퇴근을 하는 둘째 오빠는 이번 나의 이사에 보태라고 맨 먼저 이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보내주었다.
"오빠... 고맙고 미안해... 나는 해준 것도 없고 잘해주지도 않는데... 오빠 두부 해 팔아서 번 돈이네..."
라고 통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목이 메었었다.
"그래...내가 이거라도 하고 있으니까 줄 수 있는 거다... 맘 쓰지 마라... 원래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안 하나... 살림 사는데 쓰지 말고 너한테 필요한 거 사라..."
오빠의 이 말에 나는 울음이 터져서 서둘러 통화를 끝내야 했다.
오빠는 직접 만든 조선두부 콩물과 두부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가지고 저녁 6시 무렵 집에 왔다. 이사 첫날 어수선한 집에 잠시 왔다가 가구를 다 들이고 정리된 집에는 처음 와 본 오빠는 이 방 저 방 들여다보면서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오빠는 미식가에 가까워서 조금 더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도 오빠는 연신 맛있다면서 잘 먹었다. 삼겹 수육과 조기와 된장찌개와 부추무침과 오이지와 도라지를 특히 맛있다고 하면서 진짜 내가 직접 한 거냐고 묻기까지 했다. 올케언니도 연신 맛있다면서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된장찌개의 된장은 어머니(우리 엄마) 된장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된장찌개의 된장은 엄마 된장이 아니면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은 워낙 음식 프로가 많잖아요. 유튜브 보면서 따라 하면 거의 다 맛있어요... 이 부추무침도 유튜브에 나온 거 그대로 따라 한 거예요. 진짜 괜찮죠? 시댁 식구들 왔을 때도 제일 잘 먹더라구요... "
라고 겸손하게 나의 요리 비법(?)을 알려줬다.
과일과 식혜(시판용)로 후식까지 먹은 후 오랜만에 과식한 것 같다며 커다란 방귀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오빠에게 내가 으스대며 말했다.
"내 음식 먹고 싶으면 언제든 와 오빠... 옛날에 오빠랑 자취할 때 갈치조림에 햄을 넣던 내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