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유쾌한 제사가 있었답니다
---아버님.... 로...또.... --
"이번주 목요일(7일)이 제사다..."
출근하던 남편이 재차 확인했다. 지방에 사는 시동생과 시누이 모두 바쁘신지 올해도 우리들끼리만 지내게 되었다. 나물 세 가지 전 세 가지 떡 과일 생선 포 고기 탕국 정도만 조금씩 준비하면 될 듯하여 마음이 가볍다.
지난 2021년 네이버 블로그에 '우리들만의 유쾌한 제사 이야기'를 올렸던 기억이 났다. 어떤 이웃님에게 읽다가 웃음 터졌다며 '근래 읽은 글 중 최고'라는 과분한 칭찬을 받은 글이어서 여기에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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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 제사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마트의 반찬가게 코너에서 걸음을 멈춘 나는 유리문 안에 깔끔하게 소분되어 진열된 반찬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나의 눈길이 머물러 있는 반찬은 동태전 깻잎전 꼬지전 등 전 종류다.
비싸군... 혼잣말을 하면서도 쉽게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뒤따라 카트를 밀고 온 남편도 내 옆에 서서 나의 눈길을 붙잡은 전들을 같이 들여다보았다.
"이번엔... 저거... 사서 할까??"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남편이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그건 아니지..."
남편이 먼저 카트를 밀며 자리를 떴다. 나는 약간의 미련이 남는 듯 다시 전종류에 눈길을 주었다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 그건.... 아니지..."
나의 목소리는 남편보다 조금 더 컸다. 그래야만 일말의 남은 미련을 떨쳐 낼 수 있다는 듯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갓을 쓰시고 도포를 입으시고 제사를 지냈다. 학교에 낼 월사금도 겨우 겨우 내던 가난한 집에 제기와 제상은 최상급이었다. 크고 높고 무겁고 닦아놓으면 반들반들 윤이 났다. 제삿날 저녁이면 두 오빠는 그 제사상과 제기들을 꺼내 윤 나게 닦았다. 병풍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아궁이에서 불씨를 담아와 향불을 준비했다.
밤 12시, 사랑방엔 수염마저도 정갈하게 매만지신 할아버지를 필두로 도시에서 내려온 친척 한 두 분과 집안의 남자들이 꽉 들어찼다. 제사 의식은 엄숙하게 진행되었으며 시간은 길었다. 험험, 할아버지의 거짓 기침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절을 하고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고 앉았다가 일제히 일어섰다. 맨 뒤에 서 있던 작은오빠는 서서 졸다가 비틀대고, 앉아서 졸다가 큰오빠한테 작게 쥐어 박혔다. 나는 문 밖에 서서 잔심부름을 하며 어서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맛있는 음복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제사가 끝나고 할머니와 엄마와 언니와 내가 제사상을 허물고 음복상이 차리는 동안 아버지는 처마 끝에 서서 지방을 태우셨다. 아버지는 양손으로 옮겨가며 다 태운 한지재를 자정도 넘은 깊고 까만 밤의 허공으로 휘이이, 날려 보냈다. 그 재는 분명 땅으로 내려앉지 않고 혼과 함께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어린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탓인지 나는 아직도 제사에 대한 기본 의식을 아주 무시하지는 못한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끼리만 지내게 되었어도.
전날은 회사 일로 11시에 귀가했다. 12시 무렵 잠자리에 들면서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놓았다. 피곤한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은 그냥 간단히 해, 과일만 좀 올리고... 우리끼린데 뭐...라고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몸은 곤죽처럼 피곤한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어났다. 하품을 물고 주방의 불을 켜고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손을 씻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큰 냄비에 고기가 삶아지고 작은 찜기에 조기가 쪄지는 동안 전기그릴에 미리 준비해 둔 꼬지(남편 작품)와 동태와 동그랑땡을 부쳐냈다. 조금씩 한다고 하는데 모두 한 접시에서 조금 많은 분량들이었다.
다 하고 나니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큰 냄비부터 찜기 밀가루 들러붙은 쟁반 계란물 풀었던 볼 도마 칼 등 조리 도구...
모두 잠든 새벽부터 아침이 오기 직전까지 나는 거의 두 시간 동안을, 혼자, 귀신처럼, 우렁각시처럼, 사부작사부작 움직여 제사 음식을 준비했다. 이것도 성격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여러 사람과 떠들썩하게 일을 하는 것보다 조용히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당연히 몸은 더 힘들지만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나 혼자만의 상념에 젖어들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가당찮게도(내 생각), 어울리지 않게도(친구들 만장일치), 맏며느리가 되었고, 제사를 지내게 됐을 때 엄마한테 제사음식을 배우며 물어봤었다. 꼭, 지내야 되냐고...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엄마는 말씀하셨다.
ㅡ 자식 잘되게 보살펴 준단다...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남편이 하품을 하며 주방으로 들어섰을 때 내가 준비한 제사 음식은 식탁보에 덮여 식탁 위에 얌전하게 놓여 있었고 싱크대는 물기 한 점 없이 깨끗이 닦여 있었다.
퇴근길에 나는 반찬가게에 들러 고사리 도라지 취나물(시금치가 없어서)을 사고 떡을 샀다. 이번 제삿날은 근무가 겹쳤으니 이 정도는 이해해 주시겠지...
집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탕국을 끓였다. 압력밥솥을 열어보았다. 맑은 물 밑에 적당히 불은 하얀 쌀이 얌전히 밥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미리 압력밥솥에 쌀을 씻어 물양을 맞춰 놓은 것이다.
재작년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우리끼리 제사를 지내게 되었고 그때도 나는 출근날이었다. 퇴근해서 급히 돌아오니 집의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고 탄내가 진동을 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연기도 자욱했다. 그 속에 남편이 당황하고 어이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주방에 가 보았더니 압력밥솥이 새카맣게 타 있었다.
출근하면서 집에 있는 남편에게 오후 여섯 시 무렵 밥을 해 놓으라고 시켜놨다. 남편은 평소 가끔 밥을 하는데 한번 할 때마다 엄청 많은 양의 밥을 해놓았다. 그 생각이 나서 나는 적당량의 쌀을 미리 밥솥에 담아 놓고, 밥솥에 쌀은 넣어뒀다고 말한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쌀을 다 씻어 물까지 부어놓은 줄 알고 생쌀이 든 압력밥솥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그대로 불을 켠 것이다.
나는 어떻게 뚜껑 열어 확인도 안 해봤냐고 나무랐고 남편은 그냥 밥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나를 원망했다.
압력밥솥은 너무 타서 다시 밥을 할 수가 없었고 큰일을 치를 때만 꺼내 쓰는 커다란 전기압력밥솥은 베란다 창고 깊숙이 들어있어서 꺼내오기 번거로웠다. 그렇다고 한 번도 안 해 본 냄비밥은 자신 없었다.
'햇반'을 생각해 낸 것은 나였다. 남편도 두 말 없이 찬성하고 집 앞 슈퍼에 뛰어갔다 왔다.
그 해 제사상엔 그래서 '햇반'을 올렸다.
한바탕 소란스러웠지만 제사는 무사히 시작되었다. 그냥 뒷전에 서 있다가 남편과 아들, 달랑 둘만 지내는 제사가 어쩐지 적적하고 적막하고 쓸쓸해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제사나 명절은 늘 떠들썩하고 북적거렸는데.
그래서 슬금슬금 남편과 아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같이 절을 했다. 적적함과 쓸쓸함을 조금이라도 지우고 싶어 입을 열어 말을 해 보았다.
" 아버님 어머님 햇반 처음 드셔 보시죠? 맛 괜찮죠? 드시고 올라가셔서 자랑하셔요... 햇반이란 거 먹어봤냐? 우리는 먹어봤다... 맛있더라... 우리 자식 놈들 은근 신식이다... 세상 좋아졌더라...라고요..."
나의 너스레에 남편과 아들 둘 다 입을 씰룩이며 웃음을 참았다. 쌀을 태운 덕(?)에 그 해 우리들의 제사는 뜻밖에도 유쾌하게 마무리됐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의 제사가 엄숙함과 무거움을 벗고 유쾌하고 가벼워진 것은.
남편이 짐짓 엄숙하게 절을 하는데 수북이 담은 쌀밥 위에 꽂은 숟가락이 넘어가고 있다. 내가 어... 하는 동시에, 남편이 잡으려 손을 뻗는 사이에 숟가락이 쌀밥을 완전히 이탈하여 상 밑으로 투두둑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어이구... 참말로... 그거 하나 제대로 못 꽂아서..."
새 숟가락을 가져다주면서 나는 계속 말했다.
"죄송해요 아버님 어머님.... 이이가 좀 엉성하잖아요.... 야무지지 못하고..."
옆에서 바닥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하던 아들이 픽 하고 웃었다.
"어떡해요 아버님 어머님... 손자도 엉성해요..."
잠깐 뜸을 들인 후 마지막 고백을 했다.
"사실은 저도 엉성해요... 아시죠? 우리 엉성한 세 식구.... 험한 세상 잘 살 수 있도록 잘 돌봐 주세요..."
곁눈으로 남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화를 내거나 제지하기는커녕 살짝 엄숙했던 얼굴이 풀어진 듯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님 어머님 너무 뭉뚱그려 잘 봐 달라니까 어렵죠? 그냥 구체적으로 부탁할게요..."
절을 두 번 한 후 잠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서 고인을 기리는 시간이었다.
"로... 또..."
아들이 먼저 킥, 하고 웃었다. 나는 얼른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남편은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나무라거나 조용히 하라는 눈짓도 없었다.
그런 남편의 표정에서 더욱 신이 난 나는 다음 말을 계속했다.
"1억... 쫌... 안될까요? "
풉, 하고 남편이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의 웃음소리에 아들도 좀 더 소리 내 웃었다.
나는 더욱 기가 살아서는...
"1억이 힘드시면... 5천이라도..."
남편은 고개를 반대쪽으로 약간 돌린 채로 아들은 꿇어앉아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그 상태로 킥킥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는 더더욱 기가 살아서는 시부모님께 진짜 고자질하듯이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저이 좀 보세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인데 체면상 못하다가 내가 대신하니까 좋아하는 거..... "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이번엔 좀 더 크게 웃었다. 그러더니 대뜸, 유머라고는 약으로 쓸래도 없는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술 한잔씩 올리면서 말씀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