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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Sep 12. 2023

사람 없는 풍경은 지루하고 풍경 없는 사람은 비루하다

 --석양 속에서 ---

by찌니Aug 29. 2023


  저녁 6시 50분 무렵부터 8시까지 시흥 배곧 한울공원에서 지는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  날씨가 그리 맑지 않아서 붉게 타는 장엄함 보다는 신비하고 아름답고 아련함을 안겨 준 석양이었다.  해가 다  넘어가고 나서는 어쩐지 좀 안타깝고 슬프기도 했다.  

  경기도 시흥의 배곧 한울공원은 바다의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넓은 공원으로 경기도의  '한강'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7시가  넘으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인 듯 가볍고 편안한 복장이었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부쩍 많았다. 슬리퍼를 끌고 집을 나와 걸어서 매일이라도 이 석양을 볼 수 있는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중엔 저마다 크고 무거워 보이는 수동카메라를 목에 걸거나 손에 들고 나타난 연령도 다양한 한 무리의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사진동호회 사람들 같았다.  석양이 아름다운 장소 중 손꼽히는 곳이라는  명성이 맞는가 보았다.  

  긴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벤치와 그네 벤치와 테이블 벤치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일찌감치 점유한 테이블벤치의 바로 옆 자리에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딸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 젊은 아빠가 비눗방울을 불어주고 딸아이가 까르륵까르륵 웃으며 비눗방울을 따라 뒤뚱뒤뚱 뛰어다녔다.  석양빛에 물든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의 눈은  석양과 그들을 번갈아 보느라고  바빴다.   한참을 놀던 아이를 아빠가 안고 엄마와 함께 석양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나도 모르게 사진 찍어줄까요? 너무 예뻐요... 해버렸다. 타인에게 말 걸기를 잘 못하는 내가 말이다. 그랬더니 젊은 엄마가 집에서 아무렇게나 하고 나와서 안된다고 했다. 내 눈엔 날씬하고 젊고 예쁘기만 한데...
석양빛에 가려서 자세히는  안 나올 텐데요.....라고 한껏 다정하게 한번 더 권해 보았지만 거절당했다.

   석양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몇 년 전에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그 꿈의 배경이 해가 지고 있는 들판이어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킨 거였다. 그리고 조금 전 저 아름다운 풍경 속의 아이처럼 내 어린 아들이 등장했다. 

  내 어린 아들은 소매 없는 티와 반바지를 입고 해가 지는 노란 들판에서 오리 궁둥이처럼 뒤뚱뒤뚱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가을 들판인 듯 갈대가 흔들리고 여기저기 다 익은 농작물이 보였다.

  꿈속의 젊은 나는 아이를 불러 손바닥만 한 아들의 옷을 벗겨 수풀 위에 가지런히 놓고 나도 윗 옷을 벗었다. 상체가 알몸이 된 나는 알몸의 아들을 안아 올렸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내 아들은 내 품에 달이 물에 잠기듯 부드럽고도 자연스럽게 폭 안겼다. 

  나는 들판 너머 석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 양


  내가 한 자 한 자 끊어서 말하고 아들이 서툴게 그대로 따라 말했다.


 서  걍...


  노 을


 노   으을...


  들 판


  드일   판...


 고 추


  고   추우...


 옥 수 수


옥  슈  슈...


석양의 노란빛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누군가 뒤에서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밀어내듯이 나는 꿈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꿈속의 그 노을빛과 나의 맨 살에 닿았던 어린 아들의 맨 살의 감촉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잠에서 깬 나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던 건 다시 오지 않을 그날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참 후 일어나 방을 나와 달아나려는 꿈의 잔영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두려는 듯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아들 방의 문을 열어 보았다.  나의 게슴츠레한 눈에 이불 밖으로 나온 털이 숭숭 난 근육질의 탄탄한 청년의 다리가 보였다. 그 모습은 그때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던 꿈의 잔영을 남김없이 날려버렸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잠깐 돌아갔다가 되돌아온 듯 아쉽고 아련했다. 


  작가 전경린 님이 어느 소설에서 이렇게 썼었다.  
 
  사람이 없는 풍경은 지루하고 풍경이 없는 사람은 비루하다...   


  읽은 지 오래돼서 소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풍경'이었는지 '자연'이었는지도 헷갈리고 '비루하다'라는 표현도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그 의미는 확실히 맞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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