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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Sep 19. 2023

나 B형 여자, 말기암에 걸린다면...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를 본 소회와 함께


뉴투브에서  우연히 재미있는 동영상을 봤다.


A형 B형 AB형 O형 이 같이 밥을 먹고 있다.

좀 제멋대로인 AB형이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던지고 뛰쳐나간다.

오지랖 넓은 O형은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AB형을  따라 나간다.

B형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밥을 먹는다.

소심한 A형은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B형을 쿡쿡 찌르며 묻는다. 혹시 AB형이 나 때문에  삐져서 나갔니?

 

나는 저절로 쿡 웃음이 났다.  내가 혈액형까지 알고 있는 친구들을 각각의 혈액형에 넣어 봤더니   거의 맞았다.


나는 B형이다.


며칠 전에는 또 유튜브에서 한석규 김서형 주연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왓차 오리지널 시리즈를 봤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작품인 줄 알고 다 본 다음에 확인해 봤더니 작년 12월에 오픈한 작품이다. 뒷북도 참 늦은 뒷북이다.



출판사 대표 정다정과 작가이며 인문학자인 강창욱은 결혼 후 사사건건 부딪히는 일상을 견딜 수 없어 이혼을 결심한다.


일상을 함께 나눈다는 환상

갈등은 대화로 다 풀 수 있다는 만용

그리고 헤어지더라도 각자 어디서든 잘 살겠지 라는 착각

그렇게 우린 이별을 덤썩 받아들였다.ㅡ


'한석규 배우가   나오는데 한석규의 내레이션을 안 쓴다는 건 엄청난  손해 아니겠냐' 는 감독의 말에 백번이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배우  한석규 님의 내레이션.


이혼을 앞두고 별거 중인 어느 날 아내 정다정은 대장암 말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언젠가는 간병시설로 들어가겠지만 그전까진 환자처럼 안 살고 싶은 정다정은 강창욱에게 부탁한다.


자기가 날 도와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오래는 아닐 거야... 자기가 싫으면 말고... 이젠 자기 삶도 있는데 내가 그 삶을 잠시 멈춰달라는 부탁이잖아...


그 후 라면만 끓일 줄 알던 강창욱은 아내를 위해  부엌에 선다. 아내가 먹고 싶다는 건 좋은 재료를 골라 사서 소금과 간장을 쓰지 않은 무염 음식을 만들어  낸다.


이 드라마는 강창래 작가의 실화를 담은 작품으로 암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했던 요리 레시피를 글로 엮은 동명의 책이 원작이라고 한다.


아빠 엄마랑 이혼하려 했잖아요... 의리 같은 건가요?


아들의 물음에


엄마가 부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빠였던 것 같아... 엄마 아빠는... 그런 사이야...


라는 강창욱의 대답이 좋았다. 그리고


아빠가 엄마를 간호하고 챙겨준 건 의리 때문도 아니고 엄마가 불쌍해서도 아니야... 너무너무 사랑해서 그랬던 거  같아... 이제야 그걸 알다니... 참 바보 같지...ㅡ


아내를 보낸 후 아들에게 한 이 말도 눈물 나게 좋았다.



참 많은 일을 함께 겪었다. 나이 들고 25 년이 지난 후 이제야 대화를 한번 해볼 만하니까 한 명이 먼저 가버렸다


ㅡ병상에 누워서  절절한 눈빛으로 다시 한번만 더 따뜻한 남쪽 바다  해변을 걷고 싶다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ㅡ만남과 끝이 이런 거다. 서로 사랑했는데 참 어려웠다.


  여러 번 돌려 보면서 눈물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ㅡ 나는 그런 경우 정다정처럼 남편에게 케어를 부탁할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예스라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많은 일을 함께 겪었지만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같이 살면서 상대의 마지막을 지켜보거나 지켜줄 것 같고 사이가 그리 나쁜  편도 아닌데...


   혹시   성격 때문이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맨 앞의 저 혈액형에 대한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는 B형이고 B형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다고들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 맞는 것 같다.

  개인주의에 대한 많은 설명이 있는데 그중에  다음 설명이 가장 맘에 와닿았다.

 

ㅡ개인주의는 자신만의 사적인 영역을 지키려 하고 이 영역을 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만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경향ㅡ


  그래서인지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을 좀처럼 잘 못한다. 재직 중에도 휴무를 바꿔달라고 부탁하기가  싫어서  개인적인 모임이나 행사를 아예 포기했던 적이 많다. 하물며 상대의 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부탁을 어떻게..... 아무리 남편일지라도....

  

  이 성향은 반대로 다른 사람의 부탁이 들어오는 것도 싫어한다는 뜻이고 나는 그걸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  나를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것이 싫다.

반대로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뜻이겠지... 이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나쁜 여자인가!!


작품 속의 정다정처럼 말기암에 걸려도 그럴까?


엄마 누구에게 부탁하는 거 싫어하시잖아요?라고 아들이 물었을 때 정다정은 이렇게 대답했다.


ㅡ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필요한 것... 딱 한 번의 용기 같아....ㅡ


 하.....용기라.... 딱 한번의 용기....


마침 친구의 전화가 왔었다. 얘기 끝에 내가 물었다.


ㅡ넌 말기암에 걸렸을 때 남편에게 모든 케어를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아? ㅡ


  친구는 당면한 거 아니냐고 대답했다.


그런데


내 남편도 B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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