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책을 읽거나 뭔가 끄적거리다가도 자야 할 것 같은 시간이 되면 나는 일단 전에 한 번이나 두 번쯤 읽었던 단편소설들 중에 하나를 골라 펼쳐 들고 엎드린다. 출근해야 하는 부담감은 사라졌지만 밤에는 자고 낮에는 활동하는 기본적인 일상을 유지하고 싶어서다.
대개 자정에서 1시 사이이다. 1시를 넘겨서 엎드리는 경우는 있지만 자정 전에 엎드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독서등이 달린 독서대를 최대한 눕히고 엎드려 책을 읽다가 잠이 오면 그대로 불만 끄고 자면 된다. 잠이 오지 않아도 눈의 피로가 심하게 느껴지면 불을 끄고 눈을 감는다. 읽었던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의 전개가 궁금해서 잠이 달아나는 경우는 없다. 스토리보다는 문장을 음미하는 시간이라 할 수도 있겠다. 너무 너무 맘에 드는 문장을 다시 만나거나 발견하게 되면 가만히 낭독도 해 본다. 이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잠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또 너무 빨리 오지 않았으면 한다.
낮동안의 활동량이나 내적 컨디션에 따라서 엎드리자마자 잠이 올 때도 있고 30분이나 1시간이 지나도록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일단 불을 끄고 최대한 잠들기 편한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아 본다. 잠이 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다시 독서등을 켜고 또 책을 읽는다. 잠이 올 때까지 서너 번을 불을 켰다가 껐다가 할 때도 있다. 물론 등산을 한 날이나 모임이나 음주 등의 날들은 예외이다.
그런데 이 루틴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불면'이 가끔씩 반갑지 않은 방문객처럼 뜨문뜨문 찾아오다가 이제는 아예 눌러앉아 버릴 것처럼 자주 온다. 밤은 사자처럼 빨리 달려오고 아침은 거북이처럼 느리게 오는 계절 탓일 수도 있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다. 백수이지만 백수처럼 생활하지 않겠다는 처음의 야무진 의지가 느슨해진 탓이다.
며칠 전에는 새벽 4시를 넘기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아들과 남편이 출근하고도 한참이나 지난 아침 9시 무렵이었다. 일어날까 말까 망설이는 가수면 상태로 한 시간 가까이를 이불속에서 있다가 겨우 일어났다.
다음 날에는 새벽 6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겨우 잠이 들어 아침 열 시 무렵 잠에서 깨어났지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눈알이 뻑뻑하고 몸은 나른하고 이불 밖 집안의 공기는 싸늘했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데 머릿속은 소란스러웠다.
이래서는 아니 되겠다.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 벗어나야 한다. 아침을 좀 더 일찍 시작해야 하나...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는 한데 가장 어렵지...그렇다고 낮 11시 12시까지 늘어지게 자는 것도 아닌데...커피를 마시지 말까. 커피를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다. 하루에 한 잔 마실 뿐인데. 많아야 두 잔... 그렇다면 신체의 활동량을 늘려야 하나. 그래도 하루에 만보 가까이는 꼭 걷는데... 너무 천천히 걸어서 효과가 없는 걸까.... 가끔 보는 천변의 그 여자처럼 나도 경보 선수처럼 입술을 앙다물고 머리를 휘날리며 누군가를 아니면 무엇인가를 이기고야 말겠다는 듯이 전투적으로 걸어야 하나... 그 여자는 정말 볼 때마다 그렇게 걷는다.
한 달이 넘도록 산에 가지 않아서인가. 일주일에 한 번은 산행을 해야 하는 건데... 일주일에 한 번 다리의 근육이 뭉치고 땀을 흠뻑 흘려주는 것도 필요한데... 그렇다고 낮잠을 자지는 않았는데... 따져보니 그래도 하루에 다섯 시간은 잠을 자는 것이니 괜찮은 건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새벽 네시를 넘기는 것은 건강한 생활이 아니다. 나는 최대한 남편과 아들에 맞춰서 평범하고 건강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
다행히 3일째 되는 날에는 2시 무렵 잠이 들었다. 이틀 동안의 불면이 아무래도 조금은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또 새벽 다섯 시를 넘겨버렸다. 덕분에 작가 최은영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수록된 단편 중 '답신'과 '파종' 두 작품이나 끝까지 두 번째 읽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저녁처럼 어둑어둑하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밝은 햇살이 집안 가득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새벽 5시 넘어 잠이 들었는데도 9시 무렵 잠이 깼고 그러고도 한 시간 가까이 따뜻한 이불속에서 뒹굴었다.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사회에서 도태된 것처럼 우울하고 막막할 것 같다는데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나는 비사회적 성격인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비사회적 성격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니,라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아침이었다.
그러나 나라고 어찌 적어도 육체적으로 편안하고 게으른 이 생활이 만족하기만 할까. 이제 낼모레가 환갑이라고 말해도 어색하거나 억울하지 않을 나이인데도 주위에 일없이 노는 사람들이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사회생활을 하여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회사에 다니거나 가게를 운영하거나 일찌감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친구는 퇴직한 남편과 함께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거나 보험설계사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남편 회사의 경리일을 보거나.....
그러니 일말의 죄책감과 불안을 안고 살 수밖에...
웬만해서는 입맛이 없지 않은데 오늘은 입맛마저 없었다. 쪄 놓은 지 이틀이 지난 작은 고구마 두 개를 해치우듯 먹고 정오 무렵 집을 나섰다. 햇살이 환하고 바람이 거칠게 부는데 12월의 바람이 차갑지가 않았다.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잎이 돋아날 것처럼 훈훈한 바람이었다. 길지도 않은 머리카락이 시야를 방해할 만큼 마구 흩날렸다.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겨대며 아파트를 나와 천변을 건너 공원 옆길에 들어섰다. 100m쯤 앞에 실핏줄 같은 잔가지들을 다 드러낸 나무들 사이에 빨간 꽃이 핀 듯한 나무가 보였다. 잎을 다 떨궈낸 가는 가지 위에 오종종종 모여서 피어 있는 자잘한 꽂인 듯했다. 내가 아는 겨울의 빨간 꽃은 동백꽃인데 동백꽃은 확실히 아니었다.
뭐야... 꽃인가? 꽃일 리 없겠지... 내 모르는 겨울꽃인가? 마구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기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무 가까이 다가갔다. 그건 꽃이 아니라 산수유나무 열매였다. 잎은 모두 떨어져 버린 가는 나뭇가지에 산수유 빨간 열매가 오종 종종 달려 있었다. 햇살과 바람에 시들고 쪼그라들어 있었지만 그 빨간색만큼은 바래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커피배달을 나가는 아가씨의 빨간 립스틱 바른 입술 같이 당돌해 보였다. 어젯밤 갑자기 빨간 열매가 달린 것도 아니건만 오늘 갑자기 꽃처럼 눈에 들어오다니... 어이가 없었다. 뜻밖의 훈풍과 나쁜 시력 때문이겠지만 불면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어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 말고 다른 걸 마실까 하면서 메뉴판을 좀 오래 올려다보다가 결국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이상하게 커피숍에서는 커피 외에 별로 마시고 싶은 음료수가 없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청년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한 잔 주세요"라고 말했다. 청년은 더욱 인상 좋게 웃으면서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말씀이시죠?" 하고 되물었다. 나는 심상하게 "네..."라고 대답했다가 곧 내 물음의 오류를 알아챘다. "아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라고 했나요? 아이 참....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라니.... 히히... 여름 내 주문하던 습관이 돼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라니... 참... 히히... "라고 멋쩍게 웃으며 가볍고 장황한 셀프디스를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