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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Nov 18. 2023

불량품들의 사계

신은 나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33

신은 나와 헤어질 결심 했다.    


                            


우리는 저마다 집을 하나씩 갖고 있다. 집이란 형태가 각기 다르지만. 내가 말하는 집은 몸을 뉘는 집이 아니다. 반듯하게 몸을 걷게 하는 집이다. 나에겐 그 집이 바로 신발이다.     

나는 걷기 시작할 때부터 신과 함께했다. 오늘 그 신을 정리하려고 한다.

신발장 아래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를 꺼내어 헝겊으로 광을 내면 보이지 않던 실금들이 더 깊어진다. 꼭 맞는 말처럼 구멍에 발을 집어넣어 본다.  

나의 신은 수백 배 넘게 나간 몸무게를 짊어지고 기꺼이 나와 같이 걸었다. 친숙하다 못해 이제 내 피부의 일부가 되어 버린 그 낡은 신발에 지금 경건하게 묵념을 올린다.


어느 날 신발 수선집 사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신발뒤축 닳은 것을 보면 신발 주인 성격이 급한지 차가운지 아랫것 취급하면서 아낄 줄 모르고 함부로 끌고 다녔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저 말을 들으면서 뜨끔 했다. 사방팔방 그를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먼지 앉을라, 흙 묻을라, 아끼다가 시간이 흐르면 앞코 탁탁 치면서 구겨 신고 아무 곳이나 던져 놓았다가 다시 주워 신었다. 그가 더는 못 움직일 정도가 돼야 내 일방적인 사랑은 멈췄다. 사람 관계도 그러지 않았나 잠깐 생각해 봤다.        


이사 다닐 때마다 구두와 운동화를 신기보다 끌고 다녔었다. 동고동락 한지 십 년 넘은 것부터 자주 신지 않은 것까지 모두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신기에는 그렇고 다른 사람에게 주고 욕먹을 신발도 버리기로 했다.

그들을 버리려고 마음먹고 저녁에 잠자리 들 때는 ‘내일은 꼭 분리수거 봉지에 넣어 버려야지’ 하고 생각만 몇 번이었던가. 아침에 일어나면 아직은 신을 만하다는 핑계로 버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애매한 마음도 끝을 내야만 한다.   


버리려는 신발마다 사연이 있다. 방이동 살 때다. 빛바랜 발그작작한 운동화 한 켤레가 바깥 진열대에 있었다. 가게 주인이 만 원에 준다고 해서 발에 커도 샀다. 그런데 신을 때마다 발가락이 닿지 않는 곳이 안으로 들어갔다. 몇 번 신다가 신발장에 여태 있다.

이십 년 된 검정 스니커즈는 이제 얼굴도 가물거리는 남자에게 선물을 받았었다. 버리려고 꺼냈다가 매번 기사회생했었다. 오늘은 떨쳐내기로 큰맘 먹었다.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요술 할매가 신을 법한 코가 뾰족한 빨간 부츠도 드디어 동화 속 그 마귀할멈에게 보내버리기로 맘먹었다.

수선집에 가서  수없이 뒤축을 오공본드로 붙이고 갈았던 검정 부츠도 보내기로 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최장수 이십삼 년 된 밤색 앵클부츠는 가죽이 쭈글쭈글해지고 앞코가 벗겨졌지만,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라 끝까지 가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끈질기게 데리고 다니던 그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결과였다. 또한, 그들도 내가 버리지 않은 한 나를 위해 헌신했다. 신발도 한 켤레여야만 제 역할을 하듯 나도 신발과 한 몸이 되어 진창을 걸어왔다.


하지만 보낼 것들을 정리했는데도 여전히 신발장은 비좁다. 신발 위에 신문지를 깔고 신발을 올려놓은 신발장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오늘은 독하게 마음먹고 최근에 한 번도 외출 안 한 신을  끌고 나왔다.

이신 저신 마당에 나열해 놓고 안팎을  점검했다. 일단 끈 없는 스니커즈는 비닐봉지에 한 켤레씩 넣어 단단히 묶었다. 운동화는 줄을 묶었다. 끝까지 짝을 이루어 또다시 누군가의 몸을 지탱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서였다.     


나는 마당에 널려있는 신발들에 중얼거렸다. 나의 신들아! 따로 떨어질 수 없었던 시간아! 버려짐으로써 부디 네 이름과 기능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

인천 큰언니네 가는 길에 신발들을 가지고 갔다. 수거함에 넣기 전 그래도 미련이 남아 다시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렸다. 언니가 신발을 잡아당겨 떠 밀 듯이 통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안 돼!” 괜히 성질을 부렸다. 나는 어차피 버릴 거면서 마지막으로 진한 작별 의식이라도 하고 싶었다. 버리기 아까운 신발은 수거함 위에 올려놨다.


“신들아, 너랑 코드 잘 맞는 친구 만나 안전한 곳으로만 잘 데리고 다니거라. 혹시 바다를  건너게 되면 말이 안 통하더라도 너의 뚝심으로 버텨라. 두서없이 끌고 다니기만 했던 나 같은 사람 만나지 말고 너의 신빨로 그의 몸을 무사히 지내게 보살펴주고 잘 쓰이다 마무리했으면 한다.”     


요즈음은 신발 기능이 다양해졌다. 걷는데 최적화됐다. 신과 함께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갈 수 있다. 하물며 신발 자신은 구석구석에서 우리의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하늘에 계신 보이지 않은 신이시여! 저는 당신의 큰 뜻을 모릅니다만, 전쟁과 미얀마 내전, 아프리카 가뭄, 파키스탄 홍수, 곳곳에 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왜 보고만 있습니까? 그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데도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은 저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나의 신발은 내가 찾을 때만 나를 이끌지만, 우리 가슴 한복판에 살고 있는 당신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에게서 총을 거두어들이고 당신의 손끝에 매달려 있는 저들에게 사랑과 헌신으로 살펴주십시오.

신발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제 말이 옆길로 샜지만, 요즈음은 신발이 다 닳도록 신는 사람을 거의 본 적 없습니다. 혹시 진득하지 못하고 새 신으로 자주 바꾸어서 당신이 화가 났는지요.

그런 일로 삐질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보이지 않는 당신과 신발 차이를 생각하다 진도가 너무 나가버렸습니다. 가장 낮은 곳을 걷는 신발의 마음으로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다시 신발을 말하자면 내 신발은 나에게 자신을 맞춘다. 신과 발이 서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면 그 먼 길을 걸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직장에서 리고 캔 맥주 하나 들고 터덜터덜 걷다가 우리는 신발 끈을 수없이 질끈 고쳐 묶었다. 그렇다, 신발은 까다롭고 서툴렀던 길을 기민하게 대처해 우리를 건너편으로 데려다줬다. 나는 신빨의 영험을 믿는다.

그러고 보니 신발과 같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나 무사히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신에 감사하다는 말을 해본 적 없다.      


오늘도 능숙한 발놀림으로 진창을 걷던 그들이 달빛 아래 젖어가고 있다. 서로의 몸에 사선을 그으며 실밥 같은 길을 밟고 돌아올 때, 저토록 아득한 달맞이꽃은 빈 곳을 메우다가 수십 번 지고 말았다.


언젠가 나는, 궂은날이나 먼 길을 떠날 때 실금이 있는 그들을 다시 찾을 것이다. 신은 무섭다고  어둡다고  그 길을 피 한 적 없었다.

그래서 무릎을 접고 고개를 숙이고 신발끈을 묶고 신과 함께 길을 떠날 것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침묵으로 나를 지켜준 신이여 안녕!          


그렇지만 에게는 아직도 12개 신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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