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時
행복은 찾는 것도, 만드는 것도 아니야.
지키는 거야.
아악!
선선한 저녁 공기를 가르는 비명소리에 굴러가던 바퀴가 멈췄다. 바닥에 다리가 끌리면서 준비되지 않은 각도로 무릎이 꺾여버렸다. 깜짝 놀란 부모님은 얼른 나의 상태를 살폈다.
"왜 그래! 괜찮아?"
또 이 느낌이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눈앞이 어지러운 느낌. 평생에 걸쳐 숱하게 경험해 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무릎이 꺾였다고 하니 모두 놀란 기색이었다. 그래도 나쁜 건 아니라며 날 달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무릎이 건강한 사람이 부럽다.'라는 솔직한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이 글을 연재하고 나서부터 오늘까지다. 정확히는 불안 없이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한 발 한 발, 언제 장애물을 밟을지 몰라 움츠리고 긴장하는 자신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앞만 보고, 하늘만 보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아마 살아가면서 영원히 느끼지 못할 자유겠지.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하고 싶은 만큼 운동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루하루 달라지는 몸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손쉽게 건강해질 수 있을 거야. 몸이 뻐근해서 걱정하는 일도 없겠지.
생각대로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다칠까 봐 한 번 참고, 망설이는 시간이 쌓일수록 몸은 조금씩 굳어간다. 그렇게 점점 조심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한 구석에 마음을 쓰다 보면 다른 구석이 말려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방치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 그건 꿈이었다.
어느 순간 꿈을 좇기보다 잊기 바빴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지 않으면 못 베기는 성격인 걸 알면서도 나중에, 더 나아지면.이라는 말을 변명처럼 사용했다. 시간은 어리석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나이만 먹었다. 금보다 귀한 시간을 두려워하는 데에만 쓴 게 미치도록 아깝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이렇게나 무르고 나약하다.
힘든 걸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라 뒤에서 몰래 많이 울었다. 무릎이 불편한 게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유독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차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렇게 울고 나면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다. 비워낸 만큼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울고 얼마나 좌절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딱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아픔이 내게 왔다.
이후에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회복하고 나니 불편할 게 없었다. 사실 그동안 실내에서만 생활했던 게 답답했던지라 밖에서 나가노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집과 병원이 아니면 서 있는 곳이 어디든 마냥 좋았다. 그렇다 보니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 정말 맞다.
수술하고 일 년 반쯤 지나서 돌연 첫 삐끗을 하고 말았다. 저녁을 먹으려 앉으려다 식탁 기둥에 그만 무릎이 밀려서 일어난 사고였다. 외부 압력으로 인해 돌아간 무릎이라 더 아팠고, 오랜만의 삐끗이라 정신이 아득했다. 사람 적응력이란 게 무섭다. 이렇게 아픈 걸 초등학생 때는 어떻게 그리 자주 했을까.
처음 삐끗했다는 걸 알았을 때, 아프긴 했지만 웃음이 났다. 와,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삐끗을 한다고? 기껏 갈아 끼운 인공 인대가 안 좋은 자극을 받았을까 봐 걱정됐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하면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전과 같이 삐끗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역시 다 나은 게 아니었다.
잠시 지나면 통증이 사라질 걸 알아서 웃을 수 있었는데 이번 건 느낌이 달랐다. 점점 아픔이 가중되었다.
책상에 고개를 묻은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다. 엄마랑 동생 말을 들어보니 계속 아파하다가 갑자기 짐승 같은 소리를 내서 무서웠다고 한다.
앞으로 꼬꾸라졌던 고개는 뒤로 한껏 젖혀졌고 무게 중심이 넘어가 위험해질까 봐 엄마가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고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면서 정신도 함께 들었다. 삐끗이 위험한 이유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라면 다칠 위험 없어 안심이지만 언제 어디서 혼절을 할 줄 알고 편한 마음으로 다니냐는 거다. 하지만 이건 다른 병명을 앓고 있더라도 해당되는 사람이 많을 테니 굳이 구시렁대지 않겠다. 그저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사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수술로 무릎이 완전히 괜찮아지지 않았다는 걸.
손으로 만졌을 때 더 이상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빼고는 거의 똑같다. 이마저도 엄청난 변화이지만 난 더한 것을 잃었기 때문에 굳이 비교하자면 전이 더 낫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후회가 막심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뿐, 생각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현재에 집중하는 게 훨씬 현명하다.
"하나둘셋넷"
"다섯여섯일곱여덟"
"둘둘셋넷"
"다섯여섯일곱여덟"
그늘 한 점 없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구슬땀을 흘리며 준비운동을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회장들이 앞으로 나가 동작 시범을 보이면 맞은편 학생들이 따라 한다.
오늘은 어떤 활동을 하게 될까? 기대하는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뭔들 다 귀찮다는 자세로 얼굴을 구기는 아이도 있다.
체육시간을 좋아했던 나는 전자에 속했던 것 같다.
사실 '오늘 뭘 할까?' 궁금한 마음보다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종목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간절한 마음이 더 컸다. 4교시에 있는 체육만 바라보며 어제부터 기대했는데 얄짤없이 벤치 신세를 지게 된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저 멀리 담장 밖까지 울려 퍼졌다. 집합 신호였다.
두 줄로 모인 아이들이 우렁차게 앉아 번호를 외친다. 하나! 둘! 셋! 넷!......
자기 순서가 온지도 모르고 멍 때리다 걸린 친구가 있으면 모두들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중간에 번호가 뚝 끊기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그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숫자를 부르는 스피드가 점점 빨라진다.
훅 하고 주저앉는 순간, 잠시지만 주위에 시원한 바람이 일렁인다. 집중하고 있다가 내 순서를 무사히 넘기고 나면 뒤를 돌아본다. 그게 뭐라고 마치 게임을 하는 듯 해 재밌었다. 대기하던 중에 손 끝으로 만진 모래의 감촉까지 전부 생생하다.
주저앉을 때 일렁이던 바람. 참 좋아했는데. 나는 이제 쪼그려 앉을 수가 없다.
무릎을 꺾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버렸기 때문이다.
꺾었어야 했을 타이밍에는 폐색전증 때문에 할 수가 없었고, 그 뒤로는 일상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점 잊혀졌다. 정형외과 외래는 더 이상 잡혀 있지 않았다. 타이밍만 보다 완전히 놓쳐버린 셈이다.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리던 때를 기억한다. 눈앞에 있는 문제를 모른 척 넘기고 숨어버렸던, 당시의 심리적 두려움도 한몫했다고 본다.
어리석게도 무릎을 굽히는 자세를 안 하고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무릎 꿇는 것도 쪼그려 앉는 것도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그런데 살다 보니 아니,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보니 훨씬 불편하게 느껴진다.
지금 와서 손 보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아예 꺾을 수도 없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세한 건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해봐야 알겠지만 여러모로 상황이 안 좋다. 그나마 내 몸을 지탱하던 근육들은 운동 부족으로 빠진 지 오래고, 장시간 외출은 무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서울 토박이로 20년을 넘게 살다가 믿을만한 대학병원 하나 없는 시골동네로 이사를 왔다. 자연과 가까이 사니 좋은 점도 있지만 그 외에 모든 것들이 불편하다. 교통도, 놀 거리도 없는 적적한 곳에 나의 하루도 조용히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돈이 있으면 다 해결될 일이라 세상만사 돈이 원수다 하는 말을 이젠 이해할 수 있다. 때가 아니라며 미루다 보면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악착같이 도전하는 끈기가 필요하다.
어렸을 땐 꿈과 희망이 겹겹이 색칠된 세상에서 살았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고 믿었고, 돈이 좀 없어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만 있으면 재미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착하게만 살면 아플 일도 힘들 일도 없다고, 나는 특별하다고, 우리 가족은 반드시 행복할 거라고. 기분 좋은 착각 속에 살았다.
착한 사람들이 이 세상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고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객기 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도 있는 거다. 어찌 됐든 지금보단 좋아질 수 있게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다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휩싸인 기분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불안하지만 바드러운 무릎으로 지치지 말고 뒷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야겠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나에게 하는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