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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아쉽지 않아

17화 - 놓쳐버린 것들, 잃어버린 것들

by 물오름달
내가 다시 피어날 계절을 너는 이미 알고 있다

내겐 버려진 시간이 있다. 고작 일 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공부를 안 했을 뿐인데 이미 친구들과의 격차는 너무도 벌어져 있었다. 고작 반 학기 학교를 못 나갔을 뿐인데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어졌다. 아니, 그건 원래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은 병원에서 나왔지만 생활은 그대로였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하염없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아빠의 양팔을 부여잡고 거실 한 바퀴를 순회하는 게 하루의 전부였다. 그러다 잠깐, 바람을 쐬고 싶을 땐 모자를 얼굴 끝까지 눌러쓰고 휠체어를 탔다.


덜그럭 덜그럭.

기분 나쁜 승차감이 엉덩이를 아프게 울렸다. 낮아진 시선으로 본 세상은 생각보다 징그러웠다. 지하철역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불쾌한 표정과 푹푹 내쉬는 더운 한숨들, 거대한 버스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러워진 길거리가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현실. 이 같은 것들이 내 눈엔 선명히 들어왔다.


살면서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동네가 낯설게 느껴졌다. 마음이 불안해서인지 아니면 그나마 있던 소속감마저 사라져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는 불에 덴 듯 볼록하게 올라온 흉터가 아물기도 전이었다.


"어머님, 남은 수업 일수를 채워야 유급을 면할 수 있어요."


아침부터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에 엄마는 먹던 밥그릇도 싱크대에 넣어버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살던 곳은 준공된 지 40년도 넘은 낡아빠진 아파트였다. 오래된 아파트가 방음이 더 잘 된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예외였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나무도 삭아서 도저히 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을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한 번 닫으면 안에서는 절대로 열 수 없었다. 갇히고 싶은 게 아니라면 웬만해선 닫지 않는 편이 좋았다.


"더 이상 수술 확인서만으론 어려울 것 같아서요. OO이 상태는 어떤가요?"


오랜만에 듣는 담임 선생님 목소리였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른들 대화에 난데없이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내 상태? 말해 뭐 해. 아직 무릎은 다 꺾이지도 않았고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걸을 수도 없다. 계단은 물론이거니와 작은 턱조차 나에겐 오를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수업을 듣기 어려운 상태라면 0교시 조퇴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등교 후 조회까지만 함께하는 건 어떨까요?"


방법을 찾은 듯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유서가 깊은 곳이라 교내 엘리베이터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우리 교실은 3층. 1층이면 노력해 보겠는데 3층은 영 무리다.


"선생님 죄송해요. OO이가 아직 휠체어를 타고서만 움직일 수 있어서 그것도 어려울 것 같아요."


나는 다 먹은 식기를 눈앞에 두고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에 돌아온 나를 보고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반가워할까? 신기해할까? 아니면 조금 불편해하려나?


만화가 다 망쳐놓은 게 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나는 그들에게 있어 주목을 받을만한 주인공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길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으니 그만큼 환영해 주는 사람도 있겠지. 어린 마음에 그렇게 기대를 했었다. 생각보다 싱거워서 실망했던 만남은 심지어 빨리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그럼요 어머님, 교문까지만 오실 수 있을까요? 등교시간 맞춰서 제가 갈게요."


엄마는 정중히 감사 인사를 드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의 배려로 유급의 위기에서 한 걸음 벗어났다. 원래는 학생이 학교 안으로 들어와야 맞지만 내 사정을 봐서 선생님이 수고로운 발걸음을 해주시기로 했다. 학교 다닐 땐 이렇게 따뜻한 분일줄 차마 몰랐다. 힘들었던 시기에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천만다행이었다.




다음 날, 등굣길에 지나는 후배들을 많이 보았다. 제각기 다른 색의 넥타이를 매고 같은 곳을 향해 걷는 모습을.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두 손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사실 누구와 마주쳐도 상관은 없었다.

겉모습을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관심받는 걸 싫어하지도 않는다. 누차 이야기 하지만, 내가 불안정한 무릎을 약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도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다.

다만, 내가 상상했던 만남은 조금 더 극적이고 재밌는 장면 속에 있었다. 퇴원했다는 사실을 이렇게 무참히 들켜버리는 게 아니란 말이다.


운동장 저 멀리서부터 담임선생님이 잰걸음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같이 간 엄마 아빠는 이미 허리를 반쯤 숙여 인사하고 있었다.

바쁜 업무시간에 짬을 내어 나와주신 건데도 선생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온 선생님은 그대로 앉아 있는 내 몸을 감싸 안았다.


"OO아 오랜만이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고생했어."


그 말을 듣는데 하마터면 수도꼭지가 틀어질 뻔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었다. 막연한 공포가 선이 되어 나를 가둘까 봐 무서웠다. 할 수 있는 건 버티는 것뿐이라서 무작정 버텼다. 무너지고 나면 그 끝엔 지독한 어둠이 드리워질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졸업 후 친구가 말해줘서 알았다. 내가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온 첫날, 이미 소문이 쫙 났었다고.


재활운동을 열심히 해 교실로 돌아갔을 때 반응이 뜨듯 미지근했던 이유도 이거다. 복도 창문에 이름 모를 아이들 몇몇이 쪼르르 붙어서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학교 수업 일수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가는 것으로 겨우 채웠다. 첫날에는 학생들 많은 등교시간에 갔지만 나중에는 이마저도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인적이 드문 점심시간에 찾아가는 걸로 바꿀 수 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와 학교를 다녀오고 나서 이곳저곳 나들이를 많이 갔다. 먹으러도 가고, 운동하러도 갔다. 아빠의 재활 방식은 나랑은 맞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많이 됐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할 것 같을 때 아빠는 자꾸 걸으라고 재촉했다. 낮은 턱은 스스로 오르내리도록 했고 길가에 놓인 운동기구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빠진 근육을 원래 상태로 돌아오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손 놓고 있는다고 저절로 회복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은 누워 있었던 시간만큼 움직여야 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자꾸 아픈 이유가 근육이 빠져서라고 한다. 누워있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우리 몸앤 노화가 찾아온다.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가만히만 있어도 좀이 쑤실 만큼 온몸이 아프고 불편해진다. 나는 누구보다 활력 있을 젊은 나이에 침대에 가만히만 누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몸이 상한 만큼 마음도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계속되는 불행 앞에서 정신이 멀쩡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리적인 고통은 반드시 심리적인 고통을 데려온다. 그 닭장 같은 집에서, 좁은 우리에서. 나는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진 한 떨기의 꽃이었다.


무릎을 완전히 꺾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약을 먹는 동안 피가 나면 안 된다고 했기에 협진 아래 미루게 됐다. 그 사이 무릎을 꺾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쓸데없는 공포심을 주었다.

어느 선까지는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완전히 꺾는 건 사람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 교수님께 다리를 맡기고 나면 순간적인 힘으로 무릎을 꺾는단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피가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딱딱한 다리를 어떻게 힘으로 꺾는다는 거지?


말만 들어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미 병원에서 갖은 고통으로 너무 많이 데어버린 나는 차마 그 끔찍한 경험을 행할 자신이 없었다. 그 말은 내게, 수술실에 다시 들어가라는 것과 비슷했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을 만큼 회복이 됐다. 물론 아직 걸을 수도 없고 스스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할 수도 없지만 엄마 아빠가 옆에서 살뜰히 보살펴 줬기에 그다지 큰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탄 휠체어에는 발을 올릴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어 있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밤 산책을 나간 그날은 이상하게도 발판이 세워져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별로 불편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그대로 한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힘이 풀려 신발 밑창과 바닥이 맞닿아진 무렵이었다.


눈앞이 짙은 회색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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