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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Jul 29. 2022

우리

드로잉 왕초보 성장일기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흔하게  그리고 편하게 쓰고 있다

우리 엄마, 우리 가족, 우리 남편, 우리 형, 우리 누나...

우리 학교, 우리 동네, 우리 민족, 우리 정부 등등 셀 수 없다. 사람들은 왜 '우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까? 그리도 좋아할까?

 

정말 좋아서 쓰는 걸까? 도달하지 못하니 바람으로  쓰는 걸까?

민주가 되지 못하니 민주를 쓰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니 자유를 부르짖고

행복하지 못하니 행복에 대한 말들이 늘려있고 사랑이 미흡하니 사랑을 노래하고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같이, 더불어, 함께

with, together, we, our 등

단어도 여럿이다. 이름이 많다는 건 애매하다는 뜻도 된다.  


우린 모여서 우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떨어지면 혹 어찌 될까 싶어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오손도손 붙어서 산다

가게도 떨어지면 망할 거 같은지 붙어있다.

동대문시장, 남대문 시장 가게들도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밀어내고 다투기도 한. 곳곳에 경찰서, 파출소, 법원, 검찰청이 있다. 그들의 다툼을 처리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남들을 이기적이라고 예민해면서 자기의  이기적에는 너그럽다. 사실 우린 모두 이기적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되려고 노력하는 '우리'다.

우린 이기적 때문에 어울려 산다

부자, 가난뱅이, 파산자, 못난이, 잘난 이,

사기꾼, 도박꾼, 거드름꾼

바람둥이, 패륜아, 허풍쟁이, 범죄자, 착한 사람이 뒤섞여 다.

이런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할 리 없다. 서로  다른 걸 참으며  살아간다.

불편하고 싫을 때도 있지만 서로 양보하고  좋은 척 가면을 쓰기도 한다.

우리는  가까워질수록 예쁜 가면이 필요하다. 오래 쓰다 보니  가면이 얼굴에 붙어 얼굴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보통은 좋은 말이지만, 가끔은 강압적이다.

우리가 '우리'를 말하고 있을 때 나는 가끔 우리'가 아닌 따로인 나를 발견한다.

반대로, 그와 나는 분명 떨어져 각자지만, '우리'를 느낄 때도 있다.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에 끌려다니기도 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기도 한다.

우리는 보이는 우리를  위해 보이지 않는 환상의 우리를 좇는다. 

우리는 이미 우리지만 늘 우리를 갈구한다.


나는 늘 방황한다. 너와 나 우리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나는 누구일까? 우리 속의 내가 궁금하다. 우리의 각자 나일까? 우리의  일부 일까? 내가 존재하는  우리일까? 나 없이도 존재하는 우리일까?  

드로잉 =최송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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