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는 싶은데, 왜 막상 시작하지 못할까?
사장의 책 쓰기_책 쓰기를 주저하는 이유
아마 새로운 일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막연한 불안도 있고 구체적인 불안도 있다. 대개는 무슨 새로운 일이나 작업을 처음 손 델 때, 출발할 때 그런 불안감이 생긴다. 살면서 나도 그동안 수많은 불안을 겪어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막상 그 순간이 닥치고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별거도 아닌데 그 순간에는 안절부절못하고 좌불안석, 세상 모든 것의 흔들림인 양 노심초사했던 기억이다.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괜히 하는 거 아닌가, 부끄럽지 않을까, 주홍글씨가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오면 어쩌나..." 등 오만가지 생각이다. 지나고 보니 죄다 괜한 걱정이었을 뿐이다. 쓸데없는 생각의 공회전이고 감정 소모다.
내가 좋아하는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 Gῑtāñjali 95〉를 인용해 본다.
"내가 처음으로 생명의 문턱을 넘어섰던 그 순간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깊은 밤 숲 속의 꽃봉오리처럼 이 엄청난 신비의 세계로 나를 피어나게 하였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아침에 햇살을 바라볼 때면, 나는 한순간 이 세상이 낯설지 않음을 느낍니다. 이름도 없고 형체도 없는 신비가 어머니의 품처럼 나를 감싸 안고 있습니다.
그러하듯이 죽음도, 똑같이 내가 알지 못했던 미지의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내가 이 삶을 사랑했기에 죽음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오른쪽 젖가슴을 앗아가면 아기는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왼쪽 젖가슴에서 위안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밑줄)의 시구를 좋아한다. 작가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했다지만, 나는 신세계로 해석한다. 시구처럼 지금도 새로운 일을 눈앞에 두면, 적잖은 세월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그걸 가라앉히는 방법이 좀 더 다양하고 세련되었을 뿐이다. 가령 타고르의 이 시구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러면 대개는 마음이 차분해진다.
글쓰기, 책 쓰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다른 물리적인 불안이나 세상 불안과는 종류나 차원이 다른 불안이다. 죽을 일도 아니고 파산할 일도 아니고 생활고와 관련된 불안도 아니다. 그냥 새로운 영역 진입에 따른 불안이다. 지금의 생활불안도 감당하기 힘겨운데 불필요한 불안을 굳이 하나 더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불안이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다른 선택이 된다. 지금까지 해온 고민의 길이가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 많이 하는 인간들에게 가장 좋은 지렛대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이용하여 그냥 한 발짝만 앞으로 내디디기만 하면 된다. 눈 한번 딱 감고 나면 다른 세상이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