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가을이 붙었어요(#14)
드로잉 왕초보 성장일기
산책길이 가을로 가득합니다. 가을. 가을. 가을...
낙엽이 소나기처럼,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애써 모른 척 주머니 손 넣고 낙엽만 밟으며 그냥 지나칩니다. 찬바람 한 번 불었다가, 낙엽 한 번 몰아붙이다가, 노란 단풍으로, 빨간 단풍으로 온갖 수단 다 해 봅니다,
이래도 저래도 안되니.
'정말 모른 척할 거야?"라며 앞서가는 보드리'엉덩이에 단풍 한 잎을 붙였습니다. 남들이 보면 일부러 연출한 줄 알겠습니다, 아닙니다. 순전히 가을이 장난친 겁니다.
저는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영어로 가을이 왜 fall'떨어지다'인가를.
말뜻처럼 가을은 떨어지는 '뭔가'봅니다.
단풍도 떨어지고
바람도 떨어지고
농익은 홍시도 떨어지고
뭔가 떨어지는 게 가을이군요.
그런데 오늘은 가을이 떨어지는 위치를 잘못 잡았나 봅니다. 우리 '보드리' 엉덩이에 떨어졌네요. 자세히 보니... 떨어진 게 아니라 붙은 거네요.
"춥다. 귀찮다..." 이래저래 핑계로 모른 척했더니 가을이 짓궂게 심술부린 거지요?
네~네 잘 알겠습니다
당신이 오셨다는 신호군요. 가을님!!
잘 모시겠습니다
환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오지는 마세요. 그리고, 추위랑은 같이 오지 마세요.
당신의 그 단풍 '때깔'은 참 좋은데 추위는 싫어요. 바람은 오케이~ 바람은 낭만과 함께 오니까 심하게만 아니면 괜찮아요.
바람 핑계로 옷깃 세우는 거 좋아요. 영화배우처럼 멋있어 보여서.
저는 이 멋진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사진 찍어 드로잉 해 보았습니다. 제 눈으로 본 걸 제 손으로 그리는 거죠.
그 기쁨은 뭐랄까? 창조의 기쁨? ㅎㅎ 그런 거 비슷해요. 그래서 전 그림 완성 후에 제 손을 쓱 쳐다보며 칭찬해줍니다
"수고했어! 나도 못하는 일을 네가 해냈어"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인지 그림도 잘 그려지네요. 30분 구도 잡고 수업시간 내 총 90분에 완성했습니다.
군더더기 낙엽은 빼고 강아지 엉덩이 단풍만 강조했습니다, 단풍 가득한 숲도 과감히 생략했습니다. 그런데 이글 읽고 계시는 당신의 가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