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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야토 Aug 02. 2024

아키하바라와 일본의 서브컬처 1편

일본 서브컬처의 성지에 가다

3월 21일, 오늘은 사장님이 한국으로 출국하시는 날이다. 내가 처음 와서 묵었던 방은 원래 손님을 받는 방이라서 사장님이 부재하는 동안 사장님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부터 내가 있던 방을 청소하고 사장님 방으로 짐을 옮겼다. 그리고 사장님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숙소관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들을 알려주고 방을 내어주셨다. 


새로 이사한 방의 모습 (책상, 수납장, 행거 등이 추가됨)


역으로 가기 전에 사장님께서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여 따라갔는데 이때 간 곳이 나의 신주쿠 인생 한식당으로 남았다. 가게 이름은 '홍대포차'라는 곳이고 원래는 술집인데 점심에만 먹을 수 있는 런치메뉴가 정말 가격 대비 구성이 너무 너무 알찼고 메인 음식과 반찬 전부 맛있었다 (진짜 광고 아니고 내돈내산임). 치킨정식, 제육정식 하나씩 시켰는데 둘 다 한화로 10,000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홍대포차 쇼쿠안도리점(ホンデポチャ 職安通り店)

 -주소: 小泉ビル 1F, 2 Chome-41-5 Kabukicho, Shinjuku City, Tokyo 160-0021 일본

홍대포차 지점이 두 개인데 런치정식은 '쇼쿠안도리점'에서만 먹을 수 있다



식당에서 밥을 다 먹고 이제 사장님과 정말 작별할 시간이 왔다. 나는 사장님의 캐리어와 짐을 들고 신오쿠보역까지 배웅해드렸다. 사장님은 나에게 건강하게 잘있으라는 당부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역 개찰구로 들어가셨다. 일본에 온 지 9일만에 혼자 민박을 관리하는 호스트가 되어버리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사장님은 내향적인 성격이라 일본에 와서 일만 하고 사람도 잘 안만나셨다고 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얘기를 풀어놓을 사람이 없다 보니 내가 오고 나서 그동안 묵혀놨던 고민이나 고충을 말하시기도 하고 이런 저런 깊고 진솔한 대화를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니 심적으로 몇 달은 같이 함께 지낸 기분이어서 좀 더 아쉬던 것 같다.


그렇게 사장님을 떠나보내고 나서 오후에는 오타쿠의 성지인 '아키하바라(일명 아키바)'에 가보기로 한다. 이번에 동행할 사람은 일본 미대를 준비중인 스무 살의 어린 남자 동생, '타마키 군'이라는 앤데 온라인에서 만나서 동행 전에 연락을 해보니 재밌는 친구 같았다. 타마키 군이라는 이름은 내가 만나서 지어준 일본이름이고 원래는 한국인이다. 작년에 일본 미대 입시에 미끄러져 올해 다시 재수를 하는데 잠깐 여행으로 도쿄에 왔다고 했고 일본 학교를 준비중이어서 그런지 일본어를 현지인만큼 구사할 정도로 높은 일어 실력을 갖고 있었다.


아키바에 타마키 군과 동행한 이유는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있었지만 만나기 전부터 느껴지는 오타쿠의 기운 때문이었다. 오타쿠스럽다는 게 전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좁게는 만화, 애니에 미친 사람이지만) 요즘은 어떤 한 분야에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니 만화나 애니를 좋아하든, 게임을 좋아하든, 운동을 좋아하든, 공부를 좋아하든 열광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보기 좋았다. 타마키 군은 만화와 애니를 좋아하는 오리지널 근본덕후다. 


아키하바라는 서브컬처의 대명사인 '만화, 애니, 게임'과 관련된 볼거리와 살거리가 전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된 곳이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여기서 잠깐 일본의 서브컬처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일본은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옷이나 스타일이 어떻든 취미가 뭐든 비난하거나 안 좋게 보지 않는다. 민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가 나아가서는 '시선과 인식'에 대한 문제로 확장된다. 자신 혹은 대중의 취향과 안 맞는다고 나쁜 시선으로 보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에게는 민폐를 끼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메이와쿠(迷惑) 문화: 타인을 침해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의 문화 및 정신, 한국어로는 민폐(民弊)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패션이나 취향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하고 표준을 중요시해서 그런지 틀에서 벗어나면 오지랖을 부린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기준을 벗어난 것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브한 것은 발전하지 못한다. 대중적(main)인 것이 기준이고 정상(normal)인 것이다. 비대중적(sub)인 것은 비정상이고 보통 이하(subnormal)의 것으로 간주해버리니 말이다.


나는 일본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좋은 문화에 대해서는 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내가 일본에서 느낀 몇 가지 좋은 것들을 얘기하자면 하나가 위에 말한 취향을 존중해주는 문화고 두 번째가 비교하지 않는 문화다. 일본인들은 돈이나 명예에 대한 자랑이 없고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취업은 했냐, 결혼은 했냐는 둥 앞에서 대놓고 꼽주는 말도 절대 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우울증이 많은 이유, 출산율이 적은 이유,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 비교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고유한 인생의 방향과 속도가 있다. 우리나라도 기준에 집착하지 않는,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해주는 분위기로 변했으면 좋겠다. 비교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나지만 내 곁에는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로 채우고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고 나 하나로 자그마한 힘을 줄 수 있다면, 내가 그들의 삶의 길에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다면.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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