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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야토 Jul 26. 2024

배우한테 난파(ナンパ) 당한 날

서른 살 남자의 우당탕탕 어질어질 난파 경험


난파(ナンパ): 헌팅, 작업, 연애를 목적으로 거리에서 이성에 접근하여 말을 거는 행위



이번엔 일본에서 난파를 당했던 일화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일본 50일 살이 6일차]


금일, 방 청소를 끝고 숙소에서 쉬고 있다가 문득 저녁으로 야끼니꾸가 먹고 싶어져서 오픈채팅으로 동행을 구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었고(이하S형), 성격도 좋은데 잘생기고 판교에서 웹 개발자로 일을 하는 중이며 최근에는 팀장이 됐다고 했다(완전 능력자).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생소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상당히 흥미로움을 느끼는데 말도 재밌게 하고 대화도 잘 통했다.



신주쿠 야끼니꾸 맛집 '장춘관(長春館)', 자릿세가 있지만 고기 질이 굉장히 좋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야끼니꾸와 맥주를 곁들이며 S형과의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끝낸 후 숙소로 가는 길, 우리는 도쿄 최대 환락가인 가부키초를 통과해야만 숙소로 갈 수 있었다. 가부키초 끝자락쯤 와서였을까, 형과 한국어로 대화하면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 두 명이 뒤에서 우리 보고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두 분 한국인이세요??"


"오, 네 맞아요~ 어쩐 일로..??"


"우와!! 저희도 한국인인데 그럼 같이 놀아주시면 안 돼요??"


에..!?? 도쿄에서 한국인 여자 둘이서 굳이 한국인 남자들을 헌팅한다고?? 살짝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했다. 심지어 나는 정말 밥만 먹고 오려고 머리도 안 감고 츄리닝 차림에 크록스 신고 나와서 부끄러움에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S형이 여행 마지막 날이라면서 오늘 집에 들어가서 좀 쉬다가 새벽에 클럽가는 거 어떻겠냐는 말을 마침 하는 찰나였었다. 나는 사실 클럽을 좋아하진 않지만... S형이 일본 클럽 생각보다 너무 재밌다며 계속 꼬시니까 뭔가 귀가 솔깃..했다.


그렇게 놀까 말까 생각하고 있는 순간 먼저 말이 걸려왔으니! 두 남자는 호기심에 그녀들에게 대답한다.


"앗, 엇, 음, 네... 그럼 어디서 놀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 여긴 한국도 아니고 도쿄 가부키초 한복판에서 영문도 모르는 채로 난파를 당했으니 뇌정지가 와서 어디서 놀지부터가 생각이 안났던 것이다. 여자 둘은 웃으면서 아무데나 좋다고 대답하길래 그냥 다짜고짜 근처 이자카야로 가자고 했다.


얼떨결에 3명으로 늘어버린 동행


그렇게 이자카야에 들어가서 서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갑자기 그녀들이 "저희 사실 미성년자예요.."라면서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상황이지.. 싶었는데 딱 봐도 미자로는 안보여서 신분증 검사를 해보니 우리보다 2살 어린, 그냥 온전한 성인이었다.. (뭐야?). 그러고 그 여자들한테 둘은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니까 자매라고 하는 둥 (누가 봐도 안 닮았는데) 되도 않는 거짓말을 계속 해댔다. 나중에 알고보니까 둘이 같은 학교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계속 컨셉을 잡았던 거구나..ㅋ


근데 좀 신기했던 건, 이 여자들이 유명 스케치코미디 채널에 출연하는 유튜브 배우였던 것. 얘기 듣고 나서 바로 검색해보니 진짜 해당 채널의 영상, 릴스, 숏츠에 자주 출연하고 조회수도 엄청 많은 나름 인플루언서였다(!!) 신기하긴 했지만 그녀들의 텐션은 우리와 결이 달랐다. 나도 나름 텐션 높은 ENFP라 자부하고 다니지만 이 인간들은 정말 뭐에 씌인 것마냥 행동했다. 대화하다가 갑자기 돌고래처럼 초음파 소리를 내는 리액션을 하질 않나, 술집에서 나와 밖으로 돌아다니는데 환락가의 야한 간판들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공중제비를 도는 등 그냥 미친사람이 따로 없었다. (이 외에도 지나가는 외국인 보고 한국어로 소리지르기, 근처에 한국인 붙잡고 엔화 환전해달라는 등.. 수많은 기행들이 있었음)


가부키초 거리 풍경


우리는 그녀들이 미친 행동을 할 때마다 She is chinese! 라고 외쳐댔고 결국에는 가부키초를 5바퀴나 돌며 그녀들의 텐션에 못 이겨 중간에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갔다. 5바퀴를 도는 동안 인형뽑기, 카지노, 클럽 등 안 들어간 데가 없었다...(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 텐션이 감당하기 벅차서 그렇지 코미디 연기자들이라 그런지 사람 자체는 재밌긴 했다.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얘기할 때 숙소가 꽤 멀리 있다고 하길래 여기는 왜 왔냐고 물어보니까, 택시 잡아서 기사님보고 다짜고짜 "도쿄에서 제일 핫한 곳으로 가주세요!"라고 해서 여기로 데려다줬다고 한다. (...나는 이제 어디가서 P라고 말 못할 것 같다 ㅎ)


그렇게 우당탕탕 어질어질한 도쿄에서의 첫 난파 경험, 끝.

おわり




일본 헌팅 용어 관련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가 여자를 헌팅하는 것을 난파(ナンパ)라고 하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헌팅하면 갸쿠난(逆ナン)이라고 한다. 근데 난파라는 단어가 워낙 유명해서 갸쿠난 당했다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제목에는 난파로 적어 보았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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