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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야토 Jul 24. 2024

일본식 대중사우나에 가다

5일 만에 와버린 슬럼프

[일본 50일 살이 5일차]


오늘도 어제처럼 술에 찌든 채로 늦게 일어났다. 사장님은 이제 4일 뒤면 한국으로 가시는데 하필 일 배워야하는 기간에 체크인이 많이 없었다. 얼른 배워서 익숙해져야 되는데 괜히 일 못해서 클레임 들어오고 안 좋은 리뷰가 달려서 민박에 피해주면 어떡하나 하며 걱정이 됐다. 그리고 방에서 빈둥대면서 문득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올해 초 이혼하고 나서 다시 시작하는 의미로 새로운 경험을 하자며,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아 가고 나 자신을 찾을 거라는 다짐을 하고 일본으로 왔는데 벌써 도쿄에 온 지 5일이나 지났고 딱히 한 건 별로 없다. 이렇게 시간만 흘러가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무기력해졌다. 사실 오늘 당일에도 청소할 방이 있었고 혼자서 청소와 정리를 하고 나서 사장님께 검사를 맡기로 했었다. 근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의욕이 없어져서 계속 늑장을 부리며 우울의 늪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방 체크인 시간이 얼마 안 남아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부랴부랴 청소를 시작했고 방정리가 다 끝난 후, 사장님께 검토를 받았다. 사장님은 방을 쭉 둘러보고 몇 군데 지적을 했지만 그래도 고생했다며 격려를 해주시고 근처 대중사우나를 가보자고 해서 세면용품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숙소에서 5분 정도 걷고 나니까 대중사우나가 보였다.


사우나 이름은 '만년탕'. 사우나 하루 이용료는 인당 500엔으로 한국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고 규모는 작지만 온천수라서 그런지 탕에 들어가니 뭔가 냄새도 좋고 피부가 부드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만년탕 입구


일본에서 온천은 가봤어도 우리나라 목욕탕&찜질방 같은 대중탕은 처음 와보는데 여기서도 온천처럼 사람들이 이마에 수건을 올리고 이용을 했고, 번화가에 자리해서 그런지 사람이 많긴 했지만 일본인들 특유의 남한테 피해 안 끼치려는 문화 때문에 조용조용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오랜만에 욕탕에 들어가서 있으니 생각도 정리가 되는 것 같고 개운했다. 역시 나와서 활동을 하니까 에너지가 좀 솟는 것 같다.


그리고 특이하게 우리나라에는 없는 전기탕이란 게 있는데 이벤트탕처럼 칸으로 나뉘어 있는 욕조안에 제트탕(거품 나오는 칸)이랑 전기가 나오는 칸이 있었다. 전기탕에 사람이 비어 한번 이용을 해봤는데 전기가 나오자마자 테이저건에 맞은 정상수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경직되는데 뭔가 아픈 듯하면서도 기분이 오묘하게 좋았다(나 변탠가?). 전기탕은 돌아가면서 사용해야 돼서 10분 제한이 있는데 보통 다른 사람들은 아파서 2~3분 하고 나오지만 나는 10분을 꽉 채워서 나를 감싸고 흐르는 전기의 고통에 내 몸을 맡겼다.


만화에 나오는 나무 열쇠!


그렇게 일본식 목욕탕을 즐기고 나서 사장님과 마트에 들러 스시벤또와 술을 사와 밤늦게까지 얘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술을 마시며 조금 진지한 얘기도 하고 서로의 과거 얘기도 꺼냈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에 대해 그리고 오늘 무기력했던 사실도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걸 듣고서 사장님은 나 보고 혼자 도쿄로 올 생각을 하고 그걸 바로 추진하다니 기특하다며 칭찬을 해주셨고 힘든 걸 건강한 방식으로 극복하는 게 보기 좋다면서 내 앞길이 분명 잘 될 거라고 응원해주셨다.


그래, 조급할 필요 없어.. 우울할 수도 있고 무기력할 수도 있어. 당연한 거야. 그런 시간조차도 나를 알아가는 소중한 과정일 테니까. 노력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더디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자. 물론 가끔 뒷걸음질 칠 수도 있어.


괜찮아, 다시 나아가면 되니까.


오늘은 사장님이 날 끌고 나와준 덕분에 슬럼프를 하루 만에 극복할 수 있었다. 입국 첫 날부터 친삼촌처럼 잘 챙겨주시며 내 미래를 응원해주시는 사장님에게 너무 감사했다. 만약 이렇게 좋은 사장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미 벌써 한국에 돌아갔을지도.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社長 お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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