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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인 Apr 30. 2024

진돗개와 싸웠다 4화

겨우 3일 천하였다.

나를 보기만 하면 죽어라 짖어댔던 진돌이 녀석은 아주 순한 양이 되었다.
그렇게 주인 식구들이  없는 3일 동안 진돌이와 나는 폭풍전야처럼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었고 나는 완전한 승리에 도취되어 콧노래를 부르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주인네 식구들이 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주인아줌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아줌마는 집과 진돌이를 잘 돌봐주었다며 무척 고마워했다.
(고맙기는 뭐.... 아줌마 없을 때 진돌이 게 팼었는데 고마워할 필요까지야...)

그런데 나를 본 진돌이 녀석 상판대기가 일그러지면서 또  나를 향해 아주 맹렬히  짖어대는 것이다. 이것 봐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자기 집에 납작 엎드려 찍~소리 하지 않던 녀석이 왜 이런디야? 그뿐만이 아니다 녀석은 침까지 흘리면서 주인아저씨 얼굴 보고 왕!!~왕!!~왕!!~ 또 내 얼굴을 보고 왕!!~왕!!~

정말 미친 듯이 펄쩍펄쩍 뛰면서 짖어댔다.
물론 개는 사람처럼 표정을 지을 수는 없지만 녀석의 행동은 마치 주인에게 말을 하듯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일러바치는 것같았
연신 주인아저씨 얼굴 한번 보고 짖고 또 나를 보고 짖고 마치 주인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듯하였다.


주인님!!!~~ 저 인간이 말이죠!~~ 왕!~왕!~주인님 안 계실 때 저를 복날 개 패듯이 팼어요!!~~ 왕!!~~ 왕!!~~ 왕!!~~펄쩍!!~펄쩍!!~

아니... 그럼 개를 개 패듯이 패지... 사람 패듯이 패냐? 저걸 그냥!!~~

내가 아무리 눈을 부라려도 녀석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주인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큰소리로 짖어댔다.
진돗개가 영리하다는 것은 족히 알고 있었지만 이건 영리하다 못해 너무 영악한 녀석이다.
어떻게 말을 하듯이 저렇게 짖어댈까?
개의 이상한 행동에 주인아저씨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한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냥 헛기침을 하고선 주인에게 인사를 한 뒤 즉시 내방으로 올라갔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녀석을 팰 때 동네사람들이 비명소리를 들었을 테고 누군가 주인에게 고자질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집 식구들이 돌아온 뒤 또다시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다.
녀석은 지난번 보다 더 기고만장한 자세로 내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막 대문을 열고 나설라 치면 번개처럼 튀어나와 마치 동네가 떠나갈 듯 큰소리로 짖으며 물듯이 덤벼들었다.
그 바람에 나는 너무 놀라 앞으넘어지면서 대문에 머리를 꽝!~하고 헤딩하였는데 눈 앞에서 오리온별자리가 맴돌고 은하수가 펼쳐지면서 "은하철도 999"가 왜~액!!~기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아... 이제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다.

녀석을 완전히 이긴 줄 알았는데 그것도 겨우 3일 천하였던 것이니...
주인식구들이 돌아온 후부터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진돌이 녀석 집 앞을 뚜벅뚜벅 걸어서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전에는 그냥 나를 보고 왕왕 짖기만 하였는데 나에게 매타작을 당한 이후로 녀석은 복수의 화신이 되었던 것이다.
내 발소리를 듣고 녀석은 숨죽여 기다렸다가 내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갑자기 튀어나와서 천둥소리로 짖어대며 발꿈치를 물려고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놀라서 정신줄을 놓을 지경이었는데 도저히 예전처럼 진돌이 녀석 집 앞을 당당하게 걸어서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쩔 수없이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나는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고양이 스탭으로 아주 살금살금 기다시피 벽에 붙어서 지나가야 겨우 겨우 녀석의 레이더를 피할 수가 있었는데 그 전법도 별로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발 뒤꿈치를 들고 고양이 스탭을 밟으며 대문 쪽으로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살~~ 금... 살~~~ 금... 사~~ 살~~~ 금.... 아휴!~~ 이거 정말 인간체면 말이 아니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한낮 개에 불과한 녀석에게 살살 기어야 하다니... 조금만 더 가면 대문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삐리~삐리~삐리리~~ 삑!!~~(진돌이 레이더에 포착되는 소리)

왕!!~~왕!!~~왕!!~~ 아이쿠!!~~ 깜짝이야!!~~

벼락같이 짖으며 뛰쳐나온 진돌이에게 너무 놀란 나는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놀란 고양이처럼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만유인력으로 인해 대문 앞에 처박히고 말았다.
녀석이 쏜살같이 튀어나와 내 발꿈치를 물었기 때문이다.

개에게 물려 보았는가... 날카로운 이빨이 살갗을 파고들 때의 그 공포... 으 흐흐흐....

그러나 이빨 자국만 생겼을 뿐 피는 나지 않았다.
녀석이 얼마나 영악한지 피가 나지 않을 정도만 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돌이에게 갑자기 일격을 당한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녀석은 낮게 으르렁 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헉!!~~ 눈에서 광기 어린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

야... 진돌아... 우리말로 하자.. 말로... 지난번 내가 너 디지게 팬 것은 반성하고 있단다.

그러니 이제 그만 화 풀고 요구조건을 말하라. 퇴근할 때 너 좋아하는 것 사가지고 올게.
햄버거 하나 사 올까? 너무 싼 것이라고? 그럼 왕창 더 써서 통닭 한 마리 사 오면 되겠니? 오케이!!~
나 회사에 출근해야 하니까... 일단 우리 그걸로 협상하는 것으로 하자고.
진돌이의 눈치를 보며 겨우 대문 고리를 잡고 일어서려는 찰나.. 녀석이 또다시 달려들었다.

 왕! 왕! 왕! 왕! 왕! 왕! 왕!~~~
(통닭 안 사 오면 죽었쓰!!~~)

 우당탕탕!!~~ 옴마야!!~~ 다! 다! 다! 다! 다! 다! 다!~~~
(대문 박차고 두 손 들고 발이 안 보이도록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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