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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Feb 18. 2024

나의 배웅은 고소한 맛 아메리카노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배웅

1. 떠나가는 손님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 나서 작별하여 보내는 일


풍미(風味)

1. 음식의 고상한 맛

2.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 됨됨이


씁쓸하다

1. 조금 쓰다.

2. 달갑지 아니하여 조금 싫거나 언짢


오늘따라 커피가 씁쓸하길래, 

마침 밤도 길고 쓸쓸하길래,

매번 가는 지나온 시간의 길이 아니라 오늘 밤만은 지나갈 시간의 길로 걸음을 옮겼어.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미래라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니,

걸음이 망설여지고 다른 걸음이 허무해져서 얼마 주저앉았지.

대책 없는 희망에 자비롭지 않았던 세상이 아니라 내가 틀린 거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었는데,

가끔은 그런 생각도 문득 들었어. 

'얼마나 해야 할까? 끝은 있나?'

그리고는 어느 순간 다짐했었지.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고.

그래서 그런가. 오늘 와본 이 길은 꽤나 척박하네.

그나마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약속의 이정표들만이 막막함을 좀 덜어주는 것 같아.

정말로 고마운 일이지. 

진실로 행복한 삶이야.


누군가를 만나는 걸 생각하면 어떻게 배웅해주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배웅을 하는 건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네받는 것 같다는 그런 실없는 생각.

떠나는 손님이 남은 내게 건네는 아메리카노 같은 거지.

쓴 맛은 맞는데 상대방에 따라 맛도 살짝 다르기도 한 것 같아.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때는 너무 써서 입에 대기가 어려웠었는데,

하나 둘 옆에서 마시기도 하고, 디저트와 함께 먹기도 하다 보니 이제는 꽤 마실 만해.

익숙해진 건가 봐. 

항상 누군가를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 마음에 남은 씁쓸함을 지울 수 없지만 그것마저도 괜찮아진듯해.

생각해 보면 배웅도 이별과 같은 건데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 같아.

그게 느낌에 불과하더라도 말이야.

정말 다시는 못 만나더라도 말이야.


언젠가 떠나는 이보다는 떠나보내는, 남아있는 이가 되자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면 나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이가 되겠지.

내가 건넬 아메리카노는 어떤 맛일까?

날 배웅해 주는 이들에게 내가 건네는 아메리카노는 산미보다는 고소한 맛의 풍미가 느껴졌으면 좋겠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진심이야.

과일향의 산미가 나면 나와는 너무 다른 것 같고, 씁쓸하면 꼭 그 맛이 나와 닮아서 그럴듯하잖아. 

어느 순간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참 나쁜 사람이었고 비겁하기도 했겠지만,

다른 순간에는 나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름대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 작고 소중한 텃밭 같은 삶이니까,


그래서 내 작은 바람을 담아보자면

나의 배웅은 씁쓸한 맛이지만 거기에 희미한 고소함과 풍미가 있었으면 해.

나를 보내고 되돌아가는 길에 맡을 그 찰나의 향기에 기분이 좋아질 수 있게 말이야.  

혹여 나에게 가당치도 않다고 하더라도.



사진: Unsplash의 �� Janko Ferli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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