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by 노닥노닥

걸리다

1. 어떤 일을 하다가 도중에 들키다

2. 관계하거나 부딪히다

3. 막히거나 잡히다

4. 시간이 들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어.

술을 마시지 않지만, 창 밖 너머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 그들의 세계가 궁금해졌거든.

사실 그 사람들이 궁금했다기보다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에서 사람들의 모습들,

그 조각조각들을 보다 보면 널 닮은 모습도 하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 거야.


계산을 기다리다 술에 취해 나누는 이야기들을 엿듣게 되어버렸는데 이건 네 모습이 아닐 것 같아.

하긴 네가 떠나고 없으니 무엇이 정답일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

호기심으로 내디딘 나의 발걸음이 결국 허탕을 친 꼴이 되어버렸어도 괜찮아.

이미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은 나의 기다림에 익숙해졌거든.


답을 찾을 수 없음을 알고 있는 호기심, 답을 들을 수 없음이 틀림없는 기다림.

부조리(不條理)들은 요란히 넘실대는 바다 같던 젊은 날 내 마음의 지형을 고르게 다듬어냈지.

기다림은 내 마음의 문제지만, 고요함은 내 태도의 문제라 내 기다림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을 거야.

물론 쉬이 끝나지도 않겠지만.


밤이 늦었어.

오늘도 소복이 쌓인 너의 흔적들을 뜨거운 물로 씻어내버리려 해.

그러다 습기 가득 찬 거울을 손으로 꾹꾹 눌러 닦아내면 어느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만 같아.

샤워기에서 터져 나와 흐르는 물에 내 눈물을 감추듯 이 새소리에 내 울음소리도 숨겨지려나.


고요한 기다림에도, 숨죽인 슬픔에도 불구하고,

목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숨길 수 없는 기침을 토해내서 누군가에게 이 오랜 기다림을 걸리게 되는 날.

남들에게 걸려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잡아봐도 울컥 대는 내 마음을 들키게 되는 날 말이야.

내가 티를 낸 건지, 아니면 티가 난 건지, 그게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런 날이 오겠지.


아침이 밝았어.

꼭꼭 숨어버려서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 너겠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숨바꼭질이 끝날 거라는 희망으로 나는 오늘도 눈을 떠.

찾는다!



사진: Unsplash 의 Sinitta Leu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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