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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아의 서랍 Aug 30. 2022

#2 까르푸 중산층

가장 보통의 유년

 월요일에 우리 가족은 까르푸에 갔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아니고 월요일에 갔던 이유는 아빠가 매주 월요일에 일을 쉬었기 때문이다. 아빠의 휴일은 일주일 중에 주말 이틀이 아니라 단 하루,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은 아빠가 집을 지키는 날이었고 외출했던 우리가 모두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오후가 되면 다 함께 아빠의 하얀색 스펙트라에 몸을 싣고 까르푸로 향하곤 했다.


 당시 전남 동부권에 까르푸 지점이 생긴 곳은 우리 시가 최초였는데,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에 들어섰다가 이후 6년 후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까르푸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것을 선언하면서 이후 홈에버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거의 매주 드나들던 까르푸의 철수는 어린 내게 꽤 충격적이었는데, 그와는 별개의 이유로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가족이 다 같이 마트 나들이를 가는 일이 손에 꼽았다.


 까르푸에 갈 때마다 뭐 대단히 재미있는 경험을 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거기 가는 일이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어서, 그곳에서 우리가 뭘 했었는지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냥 우리가 일주일간 먹을 것을 장보고 가끔 필요한 물건이나 의복 등을 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장을 보고 쇼핑을 하고 나면 까르푸 안의 푸드코트나 그 주변의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게 월요일 오후의 우리 가족만의 코스였고 거의 매주 그와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꼭 까르푸에 가서 장도 보고 쇼핑도 하고 외식도 하고 온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친구는 심지어 내게 부자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때까지는 한 번도 우리 가족의 일상적인 마트 나들이에 대해, 그것이 우리 가족의 소득 수준이나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딱히 으스대려는 의도로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고, 의외로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의아하게 느끼면서도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졌더랬다.


 그즈음 집에서 밥을 먹는데 우연히 TV 뉴스에서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다. 당시 나는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막 한자를 배우기 시작했던 터라, ‘중산층’이라는 단어의 한자어를 다 알지는 못했으나 중산층의 ‘중’이 한자의 가운데 중(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어림짐작해서 알 수는 있었다. 위에서 아래까지, 그중에서 가운데라는 뜻의 중(中).


 바로 그때 나는 우리 가족이 그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익히 들어왔던 부잣집처럼, 엄청나게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은 집도 있고 차도 있다. 사고 싶은 것을 다 사주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건은 적당히 사주신다. 집에서 전기나 물을 펑펑 틀어놓을 수는 없지만 쓸 때는 지나치게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 끼니를 거른 적도 없다. 엄마가 내 친구들을 불러 모아 생일파티를 해준 적도 있다. 무엇보다 친구들의 집과는 다르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까르푸로 다 함께 가서 장을 보고 외식도 하니, 계층으로 분류하자면 중간쯤은 되겠구나……. 내 이야기를 듣고 부러워하던 친구들의 반응을 생각하면서 우리 가족이 바로 뉴스에 나온 그 중산층이겠거니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한때나마 우리 부모님과 우리 가족, 그 속에 속한 나 자신을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학년이 거듭될수록 그와 같던 내 생각은 주변 환경의 변화와 함께 점점 부끄러운 것이 되어 갔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 나는 까르푸의 한국 철수와 함께 까르푸가 그려준 중산층이라는 꿈에서 쫓겨났다. 






 중학생이 되고 나에게 밀려온 현실은 분명하게 우리 가족은 중산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사실은 이랬다. 우리 가족이 일주일에 단 한 번 까르푸로 장을 보러 갈 동안 다른 친구들은 토요일, 일요일 주말 이틀 동안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근교에 있는 어린이 체험관과 같은 어린이들이 놀 만한 곳에 가보기도 하고, 아니면 이틀 동안 짧은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그랬다더라.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 모두 일주일에 하루씩밖에 쉴 수 없었고 그런 일에 쓸만한 경제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온 가족 까르푸 나들이’였던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까르푸에 가서 장도 보고, 애들 준비물 같은 것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먹인다. 가끔가다 마트 안에 있는 동전을 넣으면 작동되는 자동차 같은 것도 태워주고, 여름휴가 시즌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판촉을 위해 매장 내 인테리어에 변화가 생기니 시즌마다 분위기를 경험시켜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우리 부모님은 대형마트를 선택했던 것이다. 아주 가성비 넘치게.


 매주 까르푸에 간다고 부러움을 받을 게 아니었다. 사실은 내가 친구들을 부러워할 처지였던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는 없는 까르푸 대신 다른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친구들이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오던 많은 것들을 어른이 된 후에야 경험하고 채우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와 내 동생들의 어린 시절에 커다란 빈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자랐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모르고 살았고 덕분에 살아감에 있어 꽤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알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해서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오는 불편함과 난처함. 그것은 어른이 된 우리 앞으로 남겨진 과제다.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못했던 경험을 시켜줄 수 없는 노릇이니, 어른이 된 지금의 우리가 어린이였던 우리를 대신해 겪어주어야 하는 것들이다.






 여전히 나와 우리 가족은 중산층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 도대체 그놈의 중산층을 나누는 기준이 뭘까 궁금해져서 알아본 적이 있다. 알아본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중위소득의 75~200% 구간에 해당하면 중산층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이론상으로, 우리 가족은 중산층이 맞다. 그렇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누가 우리 가족을 중산층이라고 여기겠는가? 하지만 이론상으로나마 우리 가족이 중산층이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미리 알았더라면, 두 분의 마음에도 약간의 여유라는 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거나 이미 지나간 시절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아쉬움은 크지 않다. 어릴 때 못 했다고 앞으로도 못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번 돈으로 내 시간에 내가 하면 된다. 다만 지금에 와서야 바라는 것은 우리가 모두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고 학년생이 되었을 때,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족 간의 유대보단 외부적인 요소에 더 많은 신경을 쓰던 그때, 우리의 그러한 변화로 부모님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졌기를, 어떤 형태로든 집 밖을 벗어나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조금은 벗으셨기를, 지금은 그냥 그렇게 바랄 뿐이다.


몇 년 전 대만 여행을 갔을 때 발견한 까르푸. 반가운 마음에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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