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체질의학 소설> 생사초탈

생사를 초탈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다.

by 백승헌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44. 죽음에 대한 두 개의 다른 운명


“저 사람들 참 이상하네, 이 여름 대낮에 말쑥하게 차려입고 산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뭐야?”

“글쎄 말이야. 이상하네, 근데, 그 사람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표정이 좀 이상하지 않았나?”

“그러게. 좀 이상해. 그쪽 산은 아무것도 없잖은가. 가서 뭘 하려나. 한식도 지난 지 오래됐는데.”

승학 누나의 죽음 이후 1년 가까이 될 즈음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시골동네에는 낯선 사람에 대한 일종의 경계 의식 같은 관심의 눈빛이 있다. 일상의 무료함을 낯선 사람을 보고 풀려는 듯 일제히 눈을 돌린다. 그러다가 혹시 자신이 아는 사람이면 정색을 하고 반긴다. 모르는 사람이면 눈길을 떼지 않고 지켜본다. 그날도 그랬다.

동네 한복판을 한 쌍의 남녀가 손을 잡고 침울하게 가고 있었다. 도회지에서 온 듯한 그들은 멋쟁이들이었다.

동네사람들과 아이들은 늘 그랬듯이 일제히 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성은 아름다운 외모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하얀 원피스에 높은 샌들을 신었다.

남성은 양복에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신식 결혼식 같이 화사한 옷차림이 신기했다.

아이들 몇몇은 그들을 따라가며 구경했다. 그런데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산 쪽으로 갔다. 동네어른 몇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저렇게 잘 차려입고 산으로 가다니, 쯧쯧 무슨 일이야.”

그들이 보이지 않는데도 괜히 참견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이틀 후 승학은 소 풀 뜯기기를 하러 산으로 갔다.

시골의 여름철에는 주로 산으로 소를 몰고 가서 소 풀을 먹였다. 소를 풀어놓고 나무그늘 아래에서 놀고 있으면 되었다. 그날도 그랬다. 늘 쉬었던 곳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산중턱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곳은 음습한 곳이었다. 소 풀을 먹이는 애들이 전쟁놀이를 하는 장소였다. 그들은 산의 으슥한 곳에 진지도 구축하고 본부도 만들었기 때문에 그곳에 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명의 시체를 발견하고 혼비백산하며 고함을 쳤던 것이다.

“사람이 죽어있다. 남자와 여자가 옷을 벗고 죽어 있다.”

“발가벗고 죽어 있다.”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아마 소수의 아이들이 그 광경을 보았으면 기절했을 일이다. 워낙 여러 명이 대낮에 한꺼번에 보는 바람에 두려움이 사라진 듯했다. 놀라움과 신기함이 섞여 있는 아이들의 외침이 승학의 의식에 죽음의 그림자를 다시 드리웠다. 승학은 또 다른 죽음을 대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발걸음은 그곳으로 나아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뛰어가며 불안감을 느꼈다.

승학이 그 근처까지 갔을 때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한 여름의 뙤약볕에 시신이 썩어 가는 냄새였다. 승학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침내 보았다.

벌거벗은 남과 여의 썩어 가는 시신이 보였다. 그들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있는 듯했다.

남자는 고개를 풀숲에 쳐 박고 있었다. 여자는 눈을 부릅뜬 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승학은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이 확 돋았다. 겁이 나고 오금이 다 저릴 지경이 되었다.

1년 전 누나의 죽음과는 또 다른 죽음이었다. 처참하였다. 여자의 입가에는 마른 핏기가 오래된 팥죽이 말라붙어 있는 것처럼 묻어 있었다. 승학은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애써 침착해지려고 노력하였다.

누나의 시신이 묻혀 있는 근처에서 또 다른 죽음을 본 것이었다.


승학의 가슴에 고여 있는 슬픔이 다시 솟아 흐르기 시작했다.

그날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승학은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썩어 가는 시신이 어둠을 타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어둠이 서쪽 하늘까지 검은 먹칠을 하듯 밀려오자 승학은 두려움에 진저릴 쳤다.

귀신이 바로 앞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혔다.

승학은 그날 밤 잠을 못 이루었다.

‘사람은 왜 죽는 것일까? 그 벌거벗은 남녀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살고 싶어 하는데도 병들어 죽는 사람이 있고 건강한 사람이 생목숨을 끊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 죽었던 그들의 죽음은 승학의 망막에 깊이 각인되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자 그 젊은 남녀의 죽음에 얽힌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다녔다. 입빠르기로 소문난 옆집 순이 엄마가 집에 와서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글쎄, 그 사람들이 농약을 먹고 죽었다고 해요. 여자는 울산에 있는 큰 회사 사장 딸이고 남자는 그 집 자가용기 사래요. 남자 기사가 그 아가씨를 늘 태워다 주면서 눈이 맞았데요. 둘이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하려고 했지만 여자 측에서 반대가 심했데요. 그래서 둘은 헤어지기는 싫고 영원히 떨어지지 않으려고 함께 죽음을 택했다고 해요. 유서에 그렇게 써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딸의 죽음으로 인해 한동안 부끄럽다고 이웃과 어울리지 않았던 탓이었다. 순이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었다.

“부모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대하지 않겠어요. 딸은 대학생이고 기사는 제대로 학교를 나왔겠어요. 당연히 반대했겠죠. 그런데 보통 사이가 아니었던 가 봐요. 서로 도저히 떨어질 수 없으니까 자살을 선택한 것이겠죠.”

그녀는 말을 하며 혀를 끌끌 찼다. 어머니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자 측 부모님이 와서 울고불고 야단이었대요. 그냥 죽어도 그럴 텐데, 옷을 벗고 몸을 섞은 뒤에 부둥켜안은 상태로 농약을 마셨다지 뭡니까. 절대 놓지 않으려고 했는데, 고통이 심해지자 서로의 손을 풀고 따로 떨어져 죽었던 거래요.”

그제 서야 어머니가 말했다.

“산목숨 끊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어.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함께 죽는 사람도 있다니,”

어머니는 남의 일 같지 않은 듯 속울음을 삼키며 뒷마당으로 가 버렸다.



승학은 마루 끝에 앉아 부엌 앞에서 하는 말을 죄다 다 들었다.

그들이 마을을 지나는 것도 보았고 죽은 모습까지 보았지 않는가. 순식간에 의문이 풀렸다. 그들은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랑,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사랑, 발가벗고 죽음을 택한 수치심도 없는 사랑.’

승학은 어린 마음에도 사랑하면 죽음까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음에 새겨졌다.

승학에게 있어 죽음은 선택의 여지없는 상황과 선택이 있음을 느끼게 해 준 사건이었다.

승학은 그 사건을 통해 생사를 넘어선 사랑이 실재함을 눈으로 확인했다.

사랑은 죽음을 초탈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느꼈다. 누나의 죽음은 인간의 운명을 떠올리게 했고, 젊은 남녀의 죽음은 절대적 사랑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것은 승학을 평생 따라다닐 주제가 되었다. 늘 숙명과 운명의 연구를 했고 영원한 사랑을 갈구했다. 승학에게 일어났던 두 개의 사건은 죽음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승학이 생사를 넘나드는 중병에 걸렸을 때는 사랑에 대한 갈구가 절실했다.

죽음을 보았던 기억들과 생존에 대한 욕구가 늘 부딪쳤다. 그러나 승학은 죽기 전에 그 누군가가 그리웠다. 그런 몸상태에서도 감정은 뜨겁게 올라왔다. 발가벗고 죽은 남녀처럼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승학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승학은 그 이름 모를 그리움과 회생 가능성까지 희미한 몸을 한탄했다.

어느 날부터 하늘을 우러러 기도를 올렸다. 간절히 온 생애를 다 바쳐 사랑할 오직 한 사람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기도의 응답이 없자 승학은 깊은 명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명상 중에 승학은 한 여인을 보았다. 둘이 나란히 오솔길을 따라 대로변까지 걸어오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긴 머리칼이 흑단처럼 치렁치렁했으며 머리 위로 높이 머릿결을 올리고 있었다. 승학이 감히 꿈꿀 수도 없는 기품이 여인의 전신에 흐르고 있었다.

승학은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가 자신이 영원히 사랑해야 할 사랑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날 본 것은 환상 같았지만 먼 미래의 일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승학은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얻었다. 명상이지만 너무나 생생한 현실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구적 환상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승학은 그렇게 믿었다. 그날 본 장면이 한 생애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날의 장면은 승학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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