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지정(戀慕之情): 사랑하여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56. 죽을 고비를 넘기면 살길이 보인다.
“성유림 씨는 어디에 있나요?”
승학은 수선재에 도착하자 말자 오범석 원장을 찾아가 물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호흡이 곤란하여 급히 병원으로 옮겼어요. 공황발작까지 온 상태로 매우 위독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앰뷸런스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여기 가까운 병원에서 산소흡입기를 하고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상태가 위중해서 지금까지 입원 중일 겁니다.”
“언제 그 일이 있었나요?”
“선생님이 지리산을 떠나고 한 2주 후에 그랬습니다. 정말 심각한 병증이더군요. 호흡을 못해서 인사불성 직전까지 가더군요. 보기만 해도 무서운 상태였습니다.”
승학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만약 자신이 있었다면 그런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체질침법으로 호흡곤란이나 심 정지나 의식불명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병원인지 혹시 아시는 가요?”
오원장은 병원의 위치를 알려주며 말했다.
“성유림 씨의 부모님은 한의학을 잘 믿지 않는 것 같더군요. 단지 여기 손원장님과 친분 관계가 있어 휴양차 보낸다고 하더군요. 만약 가시더라도 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마시고 병문안만 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승학은 오원장에게 그렇게 말하고 바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한 달 이상 산속에서 자란 더부룩한 수염과 검게 탄 피부는 마치 산도적 같았다. 하지만 승학은 이발을 하고 면도를 할 경황이 없었다. 한달음에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승학은 차창 밖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내내 아픔이 저미는 느낌을 받았다.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환자의 고통과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승학은 생명의 위험을 느껴 한 달여간 사투를 겪을 때 일이 떠올랐다.
밤에는 호흡이 안 되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낮에는 걸을 수 없이 숨이 차서 내내 누워 있었다. 그 당시 승학은 계속 꿈을 꾸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꿈이었다. 죽음 쪽은 편하게 느껴졌다. 삶은 고통이었고 아픔이 심했다. 이 두 경계선은 선명하게 달리 보였다. 죽음의 세계는 평화로웠고 한줄기 강력한 빛이 승학을 향해 비추고 있었다.
‘저 강렬한 빛 속으로 가면 죽음의 세계일까?’
승학은 그 빛이 좋았다. 한 순간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데 승학의 어머님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뗄 수는 없었지만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이미 두 명의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였다. 승학까지 간다면 세 명의 자식을 잃게 될 터였다. 순간 승학은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승학은 자신처럼 죽음의 경계선에서 유림이 겪었을 고통이 헤아려졌다. 아마도 자신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의식이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당시 승학은 거의 모든 의식이 정지 상태였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같은 병은 아니었지만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중환자실에 있어서 면회에 제한이 있습니다.”
승학의 마음과는 달리 병원에서는 면회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승학이 면회를 요청하자 간호사가 말했다.
“환자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승학은 순간적으로 멘붕이 왔다. 자신이 무슨 관계로 여기를 왔는지 잠시 생각했다.
“친척 오빠입니다. 병환이 위중하다고 해서 만나러 왔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유승학입니다. 성유림 씨한테 전화해서 제 이름을 대면 알 겁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간호사는 인터폰으로 연락을 하며 말했다.
“성유림환자의 어머니가 유승학이라는 사람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시면 손계환 선생의 제자라고 전해주세요.”
간호사가 그렇게 말하자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직접 내려오겠다고 했다. 승학은 피곤에 절은 상태로 잠시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한 참 후에 어떤 귀부인이 찾아와서 말했다. 그녀는 기품과 미모가 돋보였지만 차가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승학의 몰골을 보고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제가 성유림 엄마입니다. 무슨 일로 제 딸을 만나려고 하는지요?”
“저의 사부님이신 손계환 선생님이 따님이 건강하도록 잘 보살피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고 듣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유명하다는 병원에는 다 다녔지만 차도가 없어요. 그런데 요즘엔 호흡곤란이 극심해서 생명이 위태로워요. 병원에서는 폐나 기관지에 이상이 없다고 해요. 그런데 호흡을 못하니, 방법이 없다고 해요.”
“제가 지리산에 가서 귀한 약초를 구해서 왔습니다. 그것을 복용시키면 효험이 있을 겁니다.”
그녀는 약간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달에 500만 원어치 약도 먹였어요. 그런데 그것을 먹고 오히려 병원에 실려 갔어요. 귀한 약초도 이젠 믿을 수가 없어요. 약을 구입할 생각이 없어요.”
그녀는 승학이 마치 약초 장사인 것처럼 말했다. 승학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이미 단단히 불신을 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말로도 설명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승학이 가만히 있자 그녀가 말했다.
“오후 6시 면회시간에 잠깐 올라오세요. 보아하니, 지리산까지 가서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네요. 수선제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잠시 얼굴만 보고 가세요.”
그녀는 병실을 적은 메모지를 주며 되돌아갔다. 승학은 멍하니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앞으로 4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왜 이제 오세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승학이 면회를 가자 말자 유림이 승학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 표정을 보고 적잖이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차가운 성격의 유림이 승학에게 따뜻한 표정을 짓는 것이 충격이었던 것이다.
“2주 정도 예상했지만 겨울이라서 약초를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죄송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옆에서 말했다.
“귀한 약초라고 해도 여기서는 복용할 수 없어요. 가져가세요.”
유림이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잠깐 나가 계세요. 좋은 분한테 무슨 그런 실례의 말씀을 하세요.”
그녀는 약간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제 서야 유림이 승학을 보고 말했다.
“너무 그리웠어요. 선생님과 단절된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랬어요.”
승학은 가만히 유림을 지켜보고 있다가 말했다.
“많이 힘드셨죠? 지금도 호흡이 매우 힘드신가요?”
“예. 그래요. 선생님이 곁에 있을 때는 그나마 좀 나았어요. 그런데 2주가 지나자 맥이 풀리며 증세가 악화되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 병증이 심리적 요인과 육체적 요인이 결합되어 그렇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3개월 내로 완치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그럴 수 있나요? 5년 넘게 앓은 고통스러운 중병을 그리 빠르게 완치할 수 있다고요?”
“예.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면 앞으로 삶의 길이 보입니다. 그리 될 겁니다. 저도 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유림은 갑자기 승학을 가까이 오라고 하고는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이제 감정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연모지정을 가지고 있어요. 어떡하죠? 그래도 되는 건가요?”
“우선은 병을 완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제 감정은 어느 정도 느끼셨을 겁니다. 하지만 건강회복 후에 연모지정은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승학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승학의 눈앞에 보이는 유림은 생명이 위중한 환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다른 감정은 오히려 힘이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