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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Sep 09. 2024

10. 바이러스공격과 면역력의 방어

바이러스의 약은 바이러스가 많은 지역의 약재 중에 있다.

이틀 전 목 잠김은 약과 침으로 하루 만에 풀렸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약화된 면역력으로 인해 바이러스 침공이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엔 간헐적 기침이 나오며 뒷머리가 묵직했다. 내 몸의 신호 중에 가장 뚜렷한 것은 하체의 미세한 통증이다. 

이미 뎅기열 바이러스에 2차례, 코로나 바이러스 2차례에 노출된 적이 있어 그 신호는 명확하게 인지가 되었다. 나는 감기 바이러스에는 대단히 강해서 감기몸살이나 일반 감기는 10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했다.

감기몸살이나 감기가 근접을 하지 못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나는 뎅기열과 코로나 바이러스의 걸린 이유를 생각했다.

왜 유독 뎅기열 모기한테는 약했을까? 

그 이유는 뎅기열에 걸릴 때마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당연히 모기들의 공격을 많이 받아서 대수의 법칙상 걸렸던 것이다. 말레이시아 있을 때는 방갈로에 살아서 집 밖엔 모기들이 많았다. 여기 베트남에서는 정원에 흙이 많아서 모기농장이었다. 

모기채를 휘두르면 최소 한 번에 40마리에서 50마리들이 달려들었다. 당시 나는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자주 정원에서 모기들과 싸우며 앉아 있었다.

그래서 뎅기열 걸려서 사경을 헤맨 이후 정원에 화강암을 깔았다. 담배는 손상된 폐로 인해 자연스럽게 끊었다.  코로나에 걸린 원인도 역시 노출환경이 문제였다.

베트남 환자 불특정 다수를 진료하다 보니, 바이러스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의 바이러스도 불특정 환자들에 의한 전염일 수가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 중에 감을 딸 때 몇개를 남겨두며 까치밥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생각나서 길거리에서 주은 돈을 새집에 넣어두었다. 2만7천동으로 한끼 식사비는 된다.>


3년 전 모기떼와 환자들로 인해  뎅기열과 코로나의 합동공격을 받았을 땐, 사경을 헤맸다.

무려 14일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매일 생과 사의 경계에서 선택을 하는 꿈을 꾸었다. 흔히 말하는 임사체험 같은 것을 계속했다. 열은 39도 언저리를 왔다 갔다 했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한국인들 몇 명을 비롯해서 다수의 베트남인들이 격리시설에서 사망했다. 베트남 보건당국이 알았다면 나 역시 격리시설에서 죽었을 것이다.

한국과 달리 베트남의 격리시설은 집단수용이 되어 뎅기열과 코로나에 걸린 나로서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내가 강력한 뎅기열과 코로나에 걸렸음에도 살아남은 이유는?

바이러스 천국인 말레이시아에서 연구 때문이었다. 그곳은 한국이나 베트남에 없는 열감기와 목감기, 뎅기열 등을 비롯한 무수한 바이러스들이 수시로 창궐했다.  열감기의 경우, 게릴라처럼 낮에는 멀쩡했다가 한밤에 39도에서 40도까지 오르는 고열이 발생했다.   

양약으로 낫지 않는 바이러스가 많아 많은 감기환자들이 내원을 했다. 

나는 당시 열대 바이러스 약재를 개발해서 감기나 목감기 특효제를 개발했다. 

바이러스 천국엔 반드시 그 치료제가 있기 마련이다. 바이러스 특효제는 하루나 이틀이면 감기나 기타 바이러스를 물리쳤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뎅기열과 코로나의 합동공격이어서 힘들었다. 

증세를 보면 정확히 뎅기열 바이러스가 워낙 강력하게 작용했다. 그 바이러스는 기전이 조금 복잡해서 A급이나 B급에 걸리면 사망의 위험성이 높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연구로 나는 2019년 코로나가 시작됐을 즈음에 바치스(바이러스치료제)를 개발했다. 

내가 살아난 것은 그 약의 효과 때문이었다.

나는 코로나가 크게 확장될 것을 예상하고 많은 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코로나 창궐기간은 무료로 바치스를 나눠주었다. 한국인이나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무료로 주었다. 


베트남 한인재난상조위원회 강성문 위원장

베트남 전역이 봉쇄되었을 시기엔 그가 바치스를 공급해 주었다.

그는 삼엄한 봉쇄를 뚫고 2군 타오디엔까지 와서 바치스를 받아서 공급을 했다. 내가 호치민에서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이타심과 책임감이 강한 분이다. 무연고 한국인의 죽음을 수습해주고 힘든 분들을 도와주는 그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와 리스펙트를 표한다.


나는 바치스를 지금까지 한 번도 광고나 홍보를 해 본 적은 없다. 알음알이로 무료 공급을 했다. 사람들이 믿지도 않겠지만 일부 부정론자들의 공격을 받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 특효제 ‘바치스’의 효력을 경험하고 증언해 줄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나는 내 가족들이 양약을 먹지 않고 감기를 치료하고 코로나 걱정 없이 사는 것에 만족한다. 

지금도 코로나에 걸린 환자는 무료로 바치스를 공급한다. 나는 세계적 재난인 코로나에 대해선 상업성을 배제하고 싶다. 단 예외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지만 예비용으로 구매하는 경우다.

앞으로도 나는 인종을 따지지 않고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무료로 바치스를 공급할 것이다.

오늘 나는 바치스를 먹어야겠다. 

아무리 바이러스의 공격이 거세다고 해도 면역력을 높이면 이길 수 있다. 가장 효과 있는 면역력 강화제를 복용하면 바로 바이러스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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