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 상황 2.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곁에는 언제나 제가 있어요.
그녀 한유경은 두 가지의 모습이 있었다.
치열하게 피어나는 붉은 맨드라미와 작약꽃 같은 은은함이었다. 그녀는 맨드라미의 ‘불타는 사랑’의 꽃말과 같은 정염이 있었다. 또 작약꽃의 ’정이 깊어 떠나지 못 한다‘의 꽃말과 같은 깊은 성정을 지녔다.
그것은 밝고 활달하며 온화하고 다소곳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찬홍은 그녀를 위해 가평의 ‘아침고요 수목원’을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무성하게 피어있는 맨드라미들과 작약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녀가 꽃밭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 순간 찬홍에겐 오직 그녀만이 아름다운 꽃이었다.
극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와의 행복한 순간이 떠오른 것은 의외였다.
어쩌면 그 상황을 잊으려는 찬홍의 결사적인 탈출구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은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이었다.
찬홍은 사면이 절벽인 무인도에서 구호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수없이 망설이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영원의 한 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한참 후에야 그녀가 전화를 받고 말했다.
“오늘 병원 검진결과는 어떻게 나왔어요? 한참 기다렸는데, 갑자기 좀 바빴어요.”
“검진 결과 나왔어.”
찬홍은 짧게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그녀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안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좋은 소식 먼저 말하고 나쁜 소식은 나중에 말해주세요.”
찬홍은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낮게 말했다.
“좋은 소식은 자기는 나의 빛이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거야. 오늘 그것을 새삼 깨달았어.”
“그래요. 아주 좋은 소식이네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찬홍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쁜 소식은 우리가 이별은 않지만 사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녀는 숨이 멎은 듯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그곳이 어딘가요? 내가 갈게요.”
“여기 그 병원 앞 공원이야.”
찬홍은 눈물이 쏟아져 나와 말을 잇지 못하고 끊었다.
그녀가 오는 시간까지 찬홍은 석고상처럼 못 박혀 있었다.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즐거운 듯한 오후를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찬홍은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 쬐는 봄날에 한겨울을 느꼈다. 왠지 추운 것 같고 햇볕조차 어두컴컴하게 보였다.
그녀가 다가 왔을 때도 찬홍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녀가 찬홍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곁에는 언제나 제가 있어요. 우리는 영원히 함께 일 거에요.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아요. 나는 자기와 함께라면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일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가까운 벤치까치 찬홍을 이끌고 갔다.
“말씀하세요. 무슨 말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찬홍은 맑고 푸른 봄날의 하늘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암이라고 해. 우리 이별은 없지만 사별은 해야 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