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어의 억양을 익히면 성조가 자연스럽게 된다고?
“베트남어 성조보다 억양을 배우면 된다고요? 그것이 훨씬 쉽다는 뜻인가요?”
오랫동안 베트남 거주를 했는데도 베트남어를 못하는 분들도 많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알프스마 카페에 세분의 손님이 나를 만나러 왔다. 그 세 분들은 공교롭게도 30년 이상 거주하신 분들이고 경북출신 2명에 부산출신 1명이었다.
그분 들 중에 한 명이 내게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성조(tone)는 단어마다 있는 것이고 억양은 문장의 강세에서 나타나는 어조(tone)입니다. 영어로는 같은 뜻이고 영어의 강세와 어조(Stress and intonation)와도 유사성이 있지요. 베트남어를 자꾸만 성조로만 생각하면 정말 어렵고 하기 싫어집니다. 하지만 억양이라 하면 쉽고 재미있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분들 중에 경북 출신의 나이가 드신 분이 말했다.
“제가 30년 이상 여기 거주하면서 한 번도 이와 유사한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 정말 그런 가요?”
“베트남어가 성조 때문에 어렵다는 말만 주로 많이 하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베트남어에 성조라는 큰 장벽이 생긴 겁니다. 앞으로 베트남어는 너무 쉽다? 고 말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한국인의 베트남어 습득은 아주 쉬워질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부산 출신의 원로 목사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지구가 네모이고 먼바다가 폭포가 있을 거라고 상상했던 시절엔 원거리 항해가 힘들었지요. 지구가 둥글다고 갈릴레오가 말한 이후에 원거리 항해가 시작되었지요. 백 박사님이 말씀하신 ‘베트남어는 너무 쉽다?’ 나 ‘베트남어 성조와 한국어 성조’ 등은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혹은 전회입니다.”
16세기 폴란드의 과학자 코페르니쿠스는 당시에 일반적이었던 [천동설]을 뒤집었다. 오히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운행한다는 [지동설]을 주장해서 종래의 우주관을 180도로 전회(전환)시켰다.
“지나치게 황송스런 말씀이십니다. 저는 중국어나 베트남어를 배우면서부터 경험적으로 그러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저는 중국어 성조 생각 않고 발음했지만 그곳에 사는 화교가 중국 북경에서 오셨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착각인가 했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제 발음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 아, 성조가 아니고 억양이구나를 알게 된 것이지요.”
실제 그랬다. 한국어를 잘하면 중국어나 베트남어는 정말 쉽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느꼈다. 어쩌면 그런 생각 때문에 중국어와 베트남어가 쉬웠는지 모른다.
그분들은 베트남어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처음 배우려고 하다가 성조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포기한 경우였다.
한분이 웃으며 농담을 했다.
"30년 이상 거주했는데도 베트남어를 못하니, 이거 부끄럽네요. 한국인에게 그렇게 쉬운 언어인 줄 모르고 공부를 안 했다니, 참 어이가 없네요."
나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하시면 아주 빠르게 잘하실 수 있습니다. 베트남어의 억양을 따라 하시면 성조는 자연히 익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씬 짜오 Xin chào)와 죽 주세요(씬 짜오 xin cháo)는 성조 하나만 다릅니다. 그런데 만약 중요한 모임의 서두 인사에서 씬 짜오(xin cháo)에서 성조 하나 잘못 발음했다고 죽을 가져올까요? 그런 것은 상황언어로 이해를 하지요. 하지만 씬 짜오를 늘 듣는 한국인이 저 억양을 잘못 발음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그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트남에 거주한다면 늦고 빠름 없이 베트남어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그토록 쉬운 언어를 누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포기한다면 그건 국가 경쟁력 손실이고 개인 발전에도 장애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베트남어 성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듣고 있던 중에 한 분이 가만히 말을 꺼냈다.
“제가 아는 분이 호찌민에서 베트남어를 잘했어요. 그런데도 중부지방을 가다가 차가 고장 나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근처 카페에 가서 베트남어를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아무리 성조를 열심히 발음해도 그들은 못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성조대로 발음해도 못 알아들으니, 참 어찌 그런 일이 있는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억양이라고 하시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억양은 성조를 포함하기도 하는 전체 문장의 발음입니다. 보통 성조는 개별 단어에서 보이는 것이라서 그것을 문장 전체에서 구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영어의 강세와 어조를 떠올려 보시면 쉬울 겁니다. 단 영어는 미국식, 영국식, 호주식, 필리핀식, 인도식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발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의사소통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억양에 따라 전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그래요. 제가 아는 분이 나중에 그러더군요. 아무리 성조를 바꿔해도 안 통하는 언어가 베트남어라고요.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지역 방언의 억양이 정말 중요하군요. 이해가 됩니다."
나는 그들에게 성조와 억양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했다.
“경상도 방언을 빠르게 하면 서울사람은 못 알아듣습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말을 하면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더군요. 전혀 못 알아듣는 베트남 사람과 거의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천천히 하며 표준말 발음 훈련을 해서 사람들이 알아듣더군요. 그와 같습니다. 저는 분명히 표준말로 말했지만 경상도 억양이었기 때문에 서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 거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그렇군요. 그렇게 이해하면 성조보다 억양이 맞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베트남어 정말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어 외우기도 쉽고 문법이 단순해서 쉽고 시제에 따라 동사변화도 없으니, 정말 쉬운 것이지요."
그가 뭔가 깨달은 듯이 말했다. 실제 그렇다. 베트남어는 한자 차용단어가 무려 75%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너무 친숙하다. 중국어는 받침사용이 별로 없지만 베트남은 받침 사용이 많다. 그 받침 사용의 법칙을 이해하면 한국어와 거의 같다. 문법도 단순하고 시제도 오직 세 개의 단어로 다 통한다. 과거(đã)/진행(đang)/미래(sẽ) 이세가지다. 소유격이나 단수 복수의 표현도 단순하다. 이 얼마나 쉬운 언어인가?
단어의 성조보다 문장을 통한 억양이 더 중요한 이유
“성조는 신경 써지 않고 억양만 잘하면 베트남어가 된다는 건가요?”
만성 비염치료를 위해 내원한 W 씨가 말했다.
“단어의 개별적인 성조보다 문장이나 단어의 억양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베트남 사람들끼리도 북부지방과 중부지방, 남부지방, 동남부지방 사람들이 억양(방언)이 다른 거지요.”
그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그럼 각 지방 사람들의 다른 억양(방언)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북부지방과 중부지방, 남부지방, 동남부 지방 사람들의 억양을 모두 적응하기 위해 공부를 했습니다. 아무리 남부 호찌민 발음을 잘해도 중부지방 사람들과의 대화는 안 됩니다. 따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나의 설명을 듣고 그는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건가요? 공부 방식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건 사람을 치료할 때 체질에 따라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체질에 따라서 병을 고치고 치료해야만 효과가 빠르고 원인이 제거됩니다. 베트남어의 지방 억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지역 억양인지 알고 그에 맞춰서 발음해줘야 합니다. 저는 공부할 때 북부와 중부, 남부, 남동부를 구분해서 했습니다. 발음의 억양에 미묘한 차이를 두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모든 지방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제 서야 그가 이해를 했다고 말했다.
“제 비염을 치료하려고 안 가본 곳이 없고 수술도 여러 번 했지만 결국 모두 재발했지요. 그런데 박사님께서 치료한 이후로 완치된 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체질치료의 효과군요. 베트남어도 지방의 억양에 따라 발음해야만 소통이 가능한 것과 같은 원리군요.”
“맞습니다. 성조가 아닌 지방에 따른 억양의 학습이 되어야 어디 가든 소통이 잘 됩니다. 단지 하노이 발음의 등조이(đúng rồi) ‘맞아’는 호찌민에는 등로이(đúng rồi)하는 정도의 발음 차이는 구별해야 합니다. 사실 억양을 따라 하면 아주 쉽습니다. 각 단어의 성조를 발음하려 하지 말고 문장의 억양을 따라 하면 금방 발음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지요.”
그는 베트남어의 정수를 알게 되었다고 감사해했다.
그 후 그는 베트남어 공부에 일취월장의 실력을 보였다. 오랜 만성질환이 비염도 완치되어 머리가 맑고 코를 킁킁거리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나중에 그는 나를 만나면 베트남어로 대화를 했다. 그가 그토록 어렵게 생각했던 베트남어나 치료가 힘들고 포기했던 만성비염도 생각의 전환과 치료방식의 전환으로 모두 해결했다. 생각의 탄생과 치료의 선택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