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국적 인종의 치료와 희망

진맥의 원리 3. 손끝의 절대감각이 섬세하게 인지하는 과학이다.

by 백승헌

보니파시오 맥산한의원은 하루가 다르게 붐볐다.

흰색 커튼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벽에는 한국의 전통 의학서가 영문으로 번역된 채 정갈히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다양한 피부색과 국적, 다른 문화를 지닌 환자들이 이곳으로 왔다. 언어도 다양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비롯해서 중국어, 베트남어, 따갈로그, 스페인어, 프랑스어까지 다양했다.

보통 병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파란 눈의 노부인 옆에 앉은 건 피부가 짙은 아프리카계 청년이었고, 그 옆에는 백발의 필리핀 로컬 교수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언어는 달랐지만 누구나 같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건강한 몸과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있을 것이었다. 몸이 아픈 환자의 간절한 희망은 완전한 건강회복일 터였다.


“Doctor Kang, next patient ready—her name is Teresa, from Guatemala.”

(강 선생님, 다음 환자분은 과테말라 출신 테레사입니다.)

필리핀 간호사인 안젤라가 따갈로그 억양의 영어로 말했다.

강승운은 진료실 문을 열며 테레사를 맞이했다.

그녀는 30대 후반의 남미 여성이었다.

오랜 기간 관절염으로 손과 무릎이 뒤틀리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녀는 의료시설이 열악한 고향에서는 진통제만으로 버텼다. 만약 침술치료를 조금만 일찍 받았어도 그 정도까지는 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최근에 마닐라로 이주하며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Buenos días, señora Teresa. Soy el doctor Kang. Estoy aquí para ayudarle.”

(안녕하세요, 테레사 씨. 저는 강 박사입니다.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강승운은 서툴지만 정중한 스페인어로 인사했다.

테레사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고, 이내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진맥의 원리는 손끝의 절대감각이 섬세하게 인지하는 과학이다.

어떤 기계로도 알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그것은 미인대회에서 미인을 가리는 기준을 기계로 평가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절대적 감각과 직관의 세계였다.

그는 초감각적으로 테레사의 맥을 짚었다. 얇고 끊어질 듯한 빈맥, 차가운 손목이 느껴졌다.

차트의 정보들과 진맥, 망진, 문진을 종합적으로 진단한 후 말했다.

“체질은 소음인부체질에 소양인주체질, 간 기능이 약하고 순환이 막혀 있어 위장의 염증이 반복적으로 쌓이고 대장의 기능저하가 심각합니다. 대장기능저하로 인한 관절염입니다.”

그는 옆에서 번역을 도와주는 필리핀 간호사에게 조용히 설명했다.

이후 진행된 침술은 맥산침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는 사암침법으로 폐·비장 계통을 강화하고, 동씨침법의 특효혈을 이용해 관절의 염증을 다스렸다. 무릎 주변에는 정경침법을 활용해 기혈순환을 촉진했다.


그녀의 손과 무릎의 변형이 온 건 무조건 습병(濕病)이었다.

홍수난후 나무가 뒤틀려있듯이, 습이 지나가면 관절모양의 변형이 생겼다. 퇴행성관절염이나 류마티스관절염등이든 관절의 변형오면 반드시 습(濕)이 찬 것이었다.

실제 관절병은 다 습(濕)을 지니고 있었다. 또 염증을 없애는 탁월한 침법은 정확한 경락을 찾아 건측에서 치료했다. 금수 보하고 화사하는 치료가 효과가 빨랐다.

손가락과 무릎의 틀어짐도 침술치료를 하고 자극하면 회복이 되는 것이었다.

대저(골회혈)를 비롯하여 사암침법의 신장정격을 했다.

정경침의 특효혈로는 곡골과 횡골. 간사, 곡천, 곡택, 속골, 경골. 완골 등을 치료했다.

테레사의 얼굴에는 서서히 평온함이 깃들었다.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은 맥산침술을 음미하는 듯했다.

그녀는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진동들과 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침술의 침 끝에 희망이 전해졌다.

치료가 끝나고 나서 테레사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너무 좋아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좋아질 수 있죠? 너무나 감사해요."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치료의 작은 기적을 감사와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같은 시각, 수빈은 옆방에서 필리핀 교민 여성을 진료하고 있었다.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은 환자는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체력이 바닥을 쳤다. 면역력이 급속히 떨어지며 가쁘게 호흡을 했다. 기력저하로 인한 호흡곤란증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침향, 백출, 숙지황, 황기, 베트남의 침향, 필리핀 바닐라잎, 러시아산 차가버섯까지 혼합한 처방이에요. 다국적 특효 약재로 만든 기력강화제예요.”

수빈은 먹기 간편하게 만들어진 환을 보이며 설명했다. 수빈은 한국과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러시아, 필리핀 약초의 효능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힘없는 표정으로 겨우 말을 끄집어냈다.

“머리카락 빠지는 것보다 더 힘든 고통이 내 몸의 무감각이에요. 내 몸이 남의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죽어간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 것 같아요.”

수빈은 그런 환자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말했다.

“희망을 가지세요. 이 한약과 침술은, 당신의 몸이 ‘참된 자신’으로 돌아오게 도와줄 겁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분명히 가능해요. 강한 의지를 지니면 몸은 스스로 치료물질을 분비하며 회복을 도와줄 거예요.”

맥산한의원은 단지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었다.

다국적 인종들의 다양한 병증들과 마음까지 안아주는 작은 세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keyword
이전 02화2. 마음의 빛을 되찾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