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신경 맥산침 16. 몸이 아닌 무의식을 움직이는 마음을 위해서요.
침향의 집에 살기 시작한 지 3개월째에 수진은 슬럼프에 빠졌다.
“글이 안 써져요. 아무리 써도 다 같은 말 같고, 말이 건조해요.”
승윤은 말없이 그녀 곁에 앉았다.
“그럼 그냥… 아무것도 쓰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수진은 그 말에 울컥했다.
“난… 아무것도 안 하면, 다시 그때처럼 무너질까 봐 무서워요. 나 자신을 증명해야만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승윤은 조용히 그녀를 안았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 말은 침보다 강하게 수진의 숨을 풀어줬다.
그날 밤, 수진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침대에 누웠다.
두 사람의 팽팽한 신경과 감정이 끝자락까지 치달렸다.
수진이 먼저 승윤의 심장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맥박을 느꼈다. 승윤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초인적 인내심으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숨결은 억제되었지만 거칠었고 몸은 뜨겁게 달아 있었다.
수진은 손끝으로 승윤의 심장 박동을 세다가 말했다.
"심장이 터지면 어떻게 해요. 이렇게 심장이 뛰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요. 나는 앞으로 선생님 없는 세상을 살 자신이 없어요. 우리 영원히 함께 해요."
승윤은 대답없이 수진의 얼굴과 몸으로 전신을 서서히 밀착했다.
그 말은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불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수진의 몸은 승윤의 팔로 가볍게 들렸다. 그는 아주 천천히 그녀의 몸에 모닥불을 피웠다. 그녀의 몸이 조용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신음이 멜로디가 되어 두 사람이 춤을 추게 만들었다.
승윤이 그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주 천천히 승윤은 그 좁고 기다란 천국의 문턱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처녀지는 수풀과 깊은 옹달샘이 흐르는 계곡에 위치했다.
승윤은 시간과 공간을 잃고 헤매는 시간여행자가 되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는 사이에 승윤은 시간의 벽을 뚫었고 수진의 몸은 풍선처럼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그 밤이 지나고 나서 승윤이 수진을 보는 눈은 더욱더 깊고 뜨거워졌다.
매일매일이 천국의 뜨락에서 피어난다는 열화의 꽃이 피었다.
하루는 승윤이 수진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무의식 신경 맥산침을 놓을게요. 몸이 아닌 무의식을 움직이는 마음을 위해서요. 그침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깊게 해 주고 이어줘요. 무의식의 나쁜 기억을 제거하고 좋은 생각만 남게 해요.”
그 침은 아주 얇았고, 살갗을 살짝 스치는 정도였다.
수진은 눈을 감고 그 감각을 느꼈다.
“이제야… 내가 완전히 돌아온 것 같아요. 이 감각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요.”
승윤은 작게 웃었다.
“나도 그래요. 이젠 힘들이지 않고도 당신과 함께 잠들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완전히 몸과 마음의 열정이 하나가 될 때까지 함께 자지 말아요.”
수진은 눈을 뜨고 승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감각이 살아있는 여자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날 이후 자기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어요. 또 삶이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하지만 밉기도 해요.”
“왜 미운 거죠?”
“이제 나 혼자서는 살 수 없게 됐잖아요. 어디를 가도 자기만 생각나고 보여요. 하늘과 땅, 숲, 나무, 호수 그 어디를 보아도 자기가 비취고 보여요. 그래서 밉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수진의 눈빛에는 말보다 진한 정염이 담겨 있었다.
함께 살고, 함께 흐르고, 함께 느끼고 싶다는 열정이 이글거렸다. 두 사람은 그날, 한 권의 새 노트를 꺼냈다. 앞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서로 사랑하며 공존하기”
그들은 서로의 침묵에 익숙해졌다. 가끔은 그 침묵이 대화보다 더 가까이 닿았다.
수진은 이제 자신의 내면과 터놓고 대화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