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치료의 원리 17. 암세포의 정상세포 전환치료는 명확한 효과가 있었다.
꿈결같이 흘러가는 어느 날 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통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수진은 울음을 터뜨렸다.
영문을 모르던 승윤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아빠가 위암이라고 해요. 어떡해요. 빨리 서울로 가봐야겠어요.”
그녀는 아빠를 싫어했지만 갑작스러운 암선고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승윤은 가만히 그녀를 안고 어루만졌다.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승윤은 급하게 수진을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수진이 없는 침향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혼자서 살아왔지만 이런 적막감은 처음이었다.
그다음 날부터 승윤은 진료 외 시간에는 카톡만 쳐다보았다. 가끔은 수진이 심어둔 식물을 보살폈다. 그 식물은 여전히 생생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절대 시들지 않았다. 그 식물은 수진의 숨결이 묻어 있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수진 역시 서울에 가서도 오직 승윤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병증은 심각했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어 카톡을 하거나 통화하기가 힘들었다.
수진의 아빠는 식사를 잘하지 못했으며 미세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병원에서의 치료가 절망적이 되자 수진은 승윤에게 카톡을 보냈다.
“선생님, 아빠의 암을 치료할 수 있겠어요? 병원에서 수술하기에도 조금 애매한 부위라고 해서 망설이고 있어요. 만약 치료할 수 있다면 가고 싶어요.”
"생각을 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승윤은 그 자리에 바로 답변을 줄 수 없었다.
수진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불러오고 싶었다.
하지만 암치료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환자가 수진의 아버님이라면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승윤은 지난 암치료를 떠올렸다.
‘환자는 50대 중반의 중국계 필리핀인이었다.
그는 간암과 위암, 대장암이 발견되었다. 말기암으로 폐 전이가 되며 수명은 1달 이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삶을 간절히 원했다.
그의 부인과 함께 승윤을 찾아 맥산 한의원을 방문했다.
그는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녀가 전해준 병원 진단서로 볼 때는 거의 불가능한 몸의 상태였다. 승윤은 냉철하게 판단하고 말했다.
“이 정도까지 전이되었다면 힘듭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절실한 눈빛으로 말했다.
“단 한 달 만이라도 더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치료가 잘 안 되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각서를 써 왔습니다. 사인도 했어요. 저를 치료하다가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입니다.‘
그의 부인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선생님, 안 되는 것을 알아요. 병원에서도 포기했어요. 하지만 한의학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잖아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승윤은 하는 수 없이 1개월 시한부 암환자인 그를 치료했다. 처음 1달은 고비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2달째부터 회생의 기미를 보였다. 통증이 조금 남았다고 했다. 3달 째는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좋아했다. 4 달재는 회복의 자신감을 가졌다. 그만큼 몸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 시점에 중국인 명절인 춘절이 있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춘절을 맞이하고 다시 치료하겠다고 했다. 승윤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그는 고향에 가서 춘절 음식을 마음껏 먹고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그 기억은 오랫동안 승윤의 가슴에 고통스럽게 남아 있었다.
만약 끝까지 그를 못 가게 막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
암치료의 원리는 명쾌했다. 암세포의 정상세포 전환치료는 명확한 효과가 탁월했다. 그것은 분명히 가능했다. 한데도 환자의 죽음을 겪은 것에 대해서는 심한 자책감이 들었다.
승윤에게 있어 그 기억은 오랫동안 유령처럼 떠돌았다.
하지만 승윤은 수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버님을 모시고 오세요. 최고의 비법으로 혼신의 치료를 하겠습니다.”
악몽 같은 기억을 떨치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해야만 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