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서로의 삶에 중심이 된 사랑

우울증 14. 뇌와 심폐, 위장의 메커니즘이 무너지면 나타나는 증세입니다

by 백승헌

우기가 오기 전, 승윤은 다시 만 다지오로 향했다.

수진은 같이 동행하지 않았다. 보니파시오에 남아 인터넷 강연과 글쓰기, 그리고 상담을 이어갔다. 두 사람이 떨어져 지내는 어느 날 밤, 승윤에게서 긴 편지가 도착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이 없습니다.

간혹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나를 깊이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나의 중심에 선 하나의 영혼을 만납니다.

나는 나 자신과 더 깊이 대화하게 됩니다. 또 내속에 있는 또 다른 영혼에게 말을 걸며 대답을 기다립니다.

수진 씨, 나는 이제 알겠어요.

당신은 내 인생의 중심에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당신이 나를 기억해 준다면,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수진은 편지를 읽고 한참을 울었다. 그 문장들 사이에 그의 숨결이 전해졌고 두 개의 심장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사랑의 울림이었다.


그 밤, 그녀는 자신의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다.

“사랑은 붙드는 게 아니라, 함께 흘러가는 것.”

승윤이 보니파시오로 돌아오기로 한 날이 정해졌다.

수진은 한의원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윤을 놀라게 할 하나의 이벤트였다.

그가 가까이 뚜벅 다가오자 그녀가 갑자기 튀어나오며 말했다.

“다녀왔어요?”

승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결심한 듯 말했다.

“수진 씨. 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순간, 수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 눈물은 아픔이 아닌, 회복의 증거였다.

“저도요.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둘은 서로를 꼭 안았다. 말이 없어도 통하는 그들만의 언어가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수진은 어느 날 승윤과의 관계를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엄마,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이제는 함께 살아가고 싶을 정도로.”

어머니는 말없이 식탁에 앉아 있던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그 사람은… 아픈 너를 본 사람이니, 괜찮을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그 사람은 너의 아픔을 전부 이해하고 있니?”

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수진은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멍해져 있는 상태였다.

승윤은 수진이 우울증 약을 끊기까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침 치료나 한약복용 외에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그건 배려였지만 마음을 확인할 수 없는 깜깜이 상태였다.


며칠 뒤에 수진은 용기 내어 말했다.

“내가 병원 입원까지 했던 거 말 안 했죠. 사실 그땐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제 우울증은 그렇게 심각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같았어요. 진짜 그래요?”

"우울증은 뇌와 심폐, 위장의 메커니즘이 무너지면 나타나는 증세입니다. 알고 있었어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수진이 먼저 입을 뗐다.

“… 그럴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혹시 힘들어하실까 봐 그랬어요.”

승윤은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지금은 괜찮아졌으면 된 겁니다.”

승윤은 오랫동안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앞으론, 언제나 곁을 지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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