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의 선택

새로 고침 -2

by 세온

아이들을 위한 명작동화 중 하나인 인어공주 이야기.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와 두 다리를 바꾸어버린다. 하지만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왕자를 폭풍 속에서 구출하고도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왕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결국 바닷속의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인어공주는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아니면 예견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살다 보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큼 중요한 결정을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18년을 보내고, 대학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 서울 생활을 선택하게 된 일이 그렇다.
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 살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자손과 한국의 식구들을 잇고 싶었지만, 결국 일본행을 피해버린 선택이 그렇다.
만약에 내가 고향을 떠나지 않고 그곳의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계속 살았으면 어땠을까,
만약에 내가 한국에서 편안하게 살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가 두 나라를 오가며 내가 하고자 한 일을 이루어냈으면 어땠을까. 결국 아버지 형제분이 모두 돌아가시고, 양쪽 가족은 서로 왕래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고향을 떠나고 고향 친척과 친구들과 멀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퇴직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노안이었다.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글씨를 읽기가 힘들었다. 갈수록 나빠진 시력은 핸드폰조차 읽기 힘들게 만들었다. 문자나 카톡을 주고받는데 오자가 부지기수였다. 독서 생활도 당연히 어려웠다.
남편이 갑자기 눈이 나빠졌다. 백내장이란다. 다행히 한쪽 만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신속히 수술을 했다. 의술이 좋아서 지금은 불편 없이 볼 수 있지만, 회복되기까지 6개월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작년 여름, 나는 노안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6개월만 견디면, 다초점으로 하면 돋보기 없이 볼 수 있다는 말에 수술을 선택하였고, 7월 말에 실시하였다. 입원, 수술, 당일 퇴원. 모든 것이 하루 만에 해결되었다.
한 달 이상 병원에서 지시한 대로 안약을 계속 넣어야 했지만, 돋보기 없이 글씨를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컸다.
하지만, 8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불편한 것이 남아있다. 눈에 더께가 낀 것처럼 답답했다. 찐득한 안약을 눈에 넣은 듯한 느낌이다. 피곤하면 더 심해진다. 차츰 나아지리라 생각은 하지만 불편하다. 미리 예상하고, 그 정도야 참을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도, 회복되지 못하고 계속 그런 느낌일까 봐 걱정이다.
인어공주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좀 답답하지만, 돋보기를 쓰지 않아도 되고, 핸드폰 보기가 어렵지 않고, 마트 가서도 제품 설명서나 영양정보도 읽을 수 있다. 독서를 위해서 전자책을 샀고, 블로그를 만들어 글도 쓴다. 더 나아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자격까지 얻었으니, 이 정도면 나는 선택을 잘한 셈이다.
평범한 일상을 당연한 것처럼 살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그 일상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물론 타의로 잘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를 해야 한다거나, 운영하던 가게가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떨어져서 폐업을 하는 수도 있지만...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만난다. 그냥 있어도 잘 살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리셋을 하려고 드는 것일까. 그들이 새로운 인생을 선택한 빛나는 용기를 칭찬한다.
나의 경우 남편의 퇴직 희망으로 동반 퇴직을 결심하게 되었으니 자의 반 타의 반인데, 그래서 하고 있던 일을 놓는다는 사실에 적응하기가 수월한 건 아니었다.
생산적인 일. 즉 돈 버는 일, 나의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그만둔다는 사실에 대한 공허함에 살짝 우울하기까지 했다. 1년을 관계를 끊지 않고 계약직을 전전한 이유도, 재봉을 배운다고 쏘잉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부지런하게 몸을 놀린 것도 그런 우울증에 붙잡히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해당되는지 출퇴근 안 하는 생활이 당연해지고, 해가 있는 대낮에 둘레길 산책을 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졌다. 확실히 내 생활이 리셋된 느낌이다.

일상. 새로 고침. 나는 또 한 번 내 인생에 리셋을 걸고 있다. 젊은 시절 꿈에 부풀어 온 힘을 다해 노력하다가 결국 여건과 재능의 부족을 느끼고 포기해버렸던 글쓰기. 브런치 작가의 합격은 내게 새로운 기회다. 합격된 지 겨우 3일째인 햇병아리가 잘도 글을 쏟아내는 이유는 그만큼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컸다는 뜻이다.
그냥 살았으면 아무 문제없었을 인어의, 인간으로 새로 고침을 한 용기가 가상하다. 그 용기를 빛나게 하려면 해피엔딩으로 이야기의 결말을 그려야 옳다. 하지만 인어와 인간을 한 자리에 평등하게 올려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꾼은 비극으로 결말을 처리해 버렀다.
나의 인생을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는데 필요했던 나의 용기를 스스로 칭찬한다. 그리고 해피 엔딩의 결말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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