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다시 집을 짓는다면

두 번째 집 프로젝트

by 세온

첫 집을 짓는데 2년이 휠씬 넘게 걸렸다. 처음 집 지을 땅을 보자마자 계약을 해 버린 후 잔금을 치르고 땅에 대한 등기가 넘어올 때까지 거의 1년, 토목 공사를 마무리하고 건축 허가가 나고, 집 짓고 완전히 이사를 하기까지. 우리가 처음 계약서를 쓴 날이 21년 3월 23일이었고, 이사를 한 날이 23년 5월 15일이다.

우리 부부 둘 다 70에 가까운 나이니, 두 번째 집을 지을 수는 없겠지만, 첫 집을 지으면서 생각과는 다르게 되어 후회스러운 일이 없지 않았다.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1. 토지 마련

땅을 보자마자 계약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땅을 보는 기준이 없었다는 말이다. 사기를 치려고 들면 얼마든지 당할 뻔한 어리숙한 우리가 그래도 복이 있었던지, 무사히 집을 짓고 잘 살고 있으니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부동산을 끼고 거래를 한다고 해도 땅주인과 짜고 덤비면 바가지를 쓰거나 건축을 할 수 없는 땅을 잘못 살 수도 있다. 물론 땅을 너무 따지다 보면 사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한눈에 반한 땅'이 가장 좋은 조건일 수도 있겠다.

땅 모양은 네모 반듯한 것이 좋고, 경사지지 않고 평평한 곳이 좋으며, 제대로 된 도로가 접해있어야(맹지는 건축 허가가 나지 않는다.) 하고, 그늘이 지지 않는 곳이 좋다. 도로보다 아래에 있는 토지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근처에 고압선은 없는지, 축사가 없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계곡이나 산 가까이의 토지는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지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등등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했다.

땅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토지를 샀으니, 토목 공사를 완료한 다음 잔금을 받겠다는 분양업자의 말을 너무 믿었다고 할까. 여유 자금이 있는 것을 알고 중도금을 빨리 달라는 말에 중도금을 치르고 나니 계약을 쉽게 물릴 수도 없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토목 공사는 지지부진 시간을 끌고, 드디어는 토지 분양 때 멀쩡히 존재했던 도면상의 도로를 최소한의 진입로만 만들어주고 없애겠다고 하는 바람에 해약하려고까지 했다. 결국 분양 도면에 찍은 도장의 힘으로 도로는 살아났지만, 도로에 경사가 생기는 바람에 토지의 동쪽이 도로 아래가 되어버렸다. 땅 모양이 네모반듯하지 않은 것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는데, 그래서 마당이 같은 평수의 다른 토지보다 좁아 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2. 설계 도면 준비

대략적인 설계는 내가 했다. 설계도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고등학교 시절에 실과 교과서에 나오는 설계도면을 따라 그리는 공부를 한 정도에,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접한 아파트 도면을 본 정도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방안지 몇 권을 사서 그리고 또 그리기를 반복하였다. 남편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듣고 고친 다음 또 보여주고.

아파트만 40년 이상을 살아온 우리라,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장점을 그대로 가지고 오고 싶었다 그래서 거의 아파트를 주택으로 옮긴 듯한 느낌으로 거실과 주방을 같은 공간에 두고, 팬트리장과 옷방, 파우더룸, 창고, 다용도실 등을 배치하여 수납공간을 확보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원주택의 장점을 살려서 좀 더 특징 있게 지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망이 좋은 서쪽이나 북쪽에 전망창을 더 크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북쪽이 추울까 봐 창문 크기를 줄였고, 남향을 고집하느라 전망 좋은 서쪽에 통창을 만들지 못했다. 요즘 많이 시공되고 있는 3 중창 시스템 창호(우리도 이것으로 했다.)는 단열과 기밀이 잘 되기 때문에 북쪽 창이라고 바람이 많이 들어오거나 하는 일이 없다. 게다가 남쪽에 통창을 만드는 바람에 도로에서 거실이 너무 개방적이 되어서 결국은 합성목으로 막아버리는 울타리 공사를 하게 되었다.

3. 붙박이장과 부엌 가구 공사

시공된 여러 집을 많이 구경하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림으로 그려놓았어야 했다. 가구업체 사장이 견적을 보러 왔을 때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아서 대강의 모양을 주문했다가, 나중에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일이 많이 생겼다.

부엌가구는 아일랜드 식탁에 전기레인지를 설치했는데, 후드를 천정 가운데에 만드는 바람에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집의 첫인상이 후드로 막힌 꼴이 되어서 참 후회를 많이 했다. 지금은 습관이 되어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지만, 처음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되는 나를 자주 발견하게 되었다. 다음에 집을 짓게 된다면 아일랜드 식탁에 개수대를 만들고(아일랜드 식탁 뒤편에 냉장고장이 있다.) 전기레인지는 벽 쪽으로 붙여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후드가 시야를 방해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4. 이층? 단층으로 짓겠다.

이층에는 서재와 작업실을 만들어 주거 공간과 작업 공간을 분리하려 했다. 그런데, 이사 와서 이층을 사용한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층 서재에 있던 컴퓨터를 일층 거실로 옮기고 난 다음부터는 거의 일층에서 많은 일을 하고, 이층은 딸네 식구들이 왔을 때 사용하는 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지금은 어렵지 않지만, 나이 들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더 귀찮아질 것 같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일층에 거실과 주방을 배치하고, 이층을 침실과 아이들 방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계단을 만드는 데도 제법 공간이 필요하고, 이층을 만들면 이층에도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 차라리 계단을 없애고, 그 공간에 서재나 작업공간을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이층에 베란다 공간을 만들려고 서쪽 공간을 확보했는데, 베란다는 100% 누수 하자가 발생한다고 시공사 소장이 반대를 하여 취소를 했다. 사실 이층에 올라가는 일도 많지 않은데, 이층 베란다에서 멋진 전망을 보면서 차 한 잔 할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베란다를 없애면서 2층 방을 서쪽으로 밀었으면 좋았을 텐데, 베란다만 없애는 바람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이층 작업실의 전망 좋았던 창이 박공으로 처리한 지붕에 반쯤 가려진 일이 생긴 것이다. 다시 짓는다면? 전망을 지붕으로 가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전원주택의 전망은 그 집의 보석이다.


5. 꽃밭은 천천히

마음이 참 급했다. 1년 전부터 주택으로 간다. 꽃밭을 만든다 하면서 많은 씨앗을 확보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축이 마무리되는 시기와 맞물려 작년 겨울부터 파종을 하고 모종을 기르기 시작했다. 3월 초면 이사를 할 줄 알았다가 자꾸 미루어지는 바람에 꽃밭의 흙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4월 초에 바로 조경 공사를 시작했다. 나무를 심고, 키우던 모종을 옮겨 심었다.

산흙 위에 마사토를 보충하기는 했으나, 5월 봄비 치고는 잦았던 폭우에 꽃밭이 진구렁이 되고, 심었던 식물들이 물러서 녹아나가기 시작했다. 거름기 없는 흙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고사하기도 했다.

꽃을 빨리 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전에 충분히 마사토와 숙성퇴비 등을 섞어 놓아서 물 빠짐이 좋고 영양이 풍부한 땅으로 만든 다음 나무를 심고 꽃을 키워도 늦지 않을 것이다.

꽃밭 조성에 가장 큰 힘을 쏟았고, 가장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솔길을 만들면서 물길을 만들지 않아 물탕이 되는 바람에 비 오는 날이면 비를 맞아가며 물길을 만들기도 했고, 마사토 층 아래 단단한 산흙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아 보울 현상이 생겨 한쪽 발이 푹 빠지는 바람에 놀라서 마사토를 더 보충하고 흙을 뒤집어 섞어주기도 했다.

값이 싼 시멘트 벽돌로 꽃밭 경계석을 만들었다가, 시멘트 독이 안 좋다는 소리를 듣고 구운 벽돌로 전부 교체하는 일도 있었다.

울타리, 대문, 태양광 등의 공사가 있을 때마다 나무도 심은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수난을 당했다. 꽃도 여러 번 자리를 옮긴 끝에 일찍 시들어서 치워버린 경우도 있었다.


6. 두 번째 집에도 이런 건 또 하고 싶다.

잔디는 최소화했다. 푸른 잔디가 전원주택의 로망이긴 하지만 잔디 깎는 일이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잔디를 많이 심었다가 꽃이 가꾸고 싶어서 잔디를 파내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우리는 적어도 꽃밭을 넓히기 위해 잔디를 파낼 정도로 많이 심지는 않았다.

꽃밭의 오솔길은 꽃밭이 넓기 때문에 관리용으로 만들기는 했다. 오솔길에는 강자갈을 깔았는데, 어느 정도 꽃밭 관리가 끝나면 오솔길을 잘 정리한 다음 맨발로 걷기를 집안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의 뒤쪽이 야산이다. 환경부 땅이기 때문에 개발될 염려가 없는 땅이다. 물론 경치도 좋지만, 바람이 잘 통하고, 건물 때문에 자연히 그늘이 생겨, 삽목을 하기에 그만이다. 장미나 수국

등 삽목이 까다로운 식물들도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뿌리가 잘 내려서 삽목의 즐거움에 푹빠져 살았다.

보강토 블록 2단이라 울타리와 건물의 사이가 2.5m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건물 뒤가 상당히 넓은 편이라, 그곳에 60cm 정도의 폭으로 작은 밭을 만들었다. 내년에는 그늘에서 커야 하는 나물이나 수국 등을 그 밭에서 키울 생각이다.

7.팬트리장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왠만한 생활용품이나 상온 보관 식품은 다 보관할 수가 있다. 상부장을 없앤 대신에 아일랜드 식탁의 앞쪽에도 수납 공간을 만들어 활용도를 높였다. 옷방도 붙박이장을 천정까지 만들어 넣고, 이층 서재도 한쪽 벽면을 붙박이 책장으로 설치하여 수납 공간을 충분히 확보했다. 계단실 아래도 옷방에서 출입하는 창고를 만들어 활용했는데, 아파트는 물론이지만 주택에서도 수납 공간의 확보는 아주 중요하다. 다용도실이 다소 좁은 편인데, 다음에 지으면 좀 더 넓은 다용도실을 만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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