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주택살이에 적응하기

편한 내집 만들기

by 세온

내집같이 편하게 지내라는 말을 우리는 종종 사용한다. 편해야 내집이라는 뜻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아파트가 참 좋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쓸 필요가 없는 공간이었지만, 퇴근하고 문 열고 들어오면 언제나 편히 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더구나 전망좋은 아파트라, 사계절 달라지는 경치를 보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만족했다.

하지만 퇴직을 하고 낮에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층간소음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 층간소음을 내가 만들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하면서, 편안하던 공간이 차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 많이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아파트에서 식물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래 위 층이 없는, 즉 층간소음에서 자유롭고, 마당에 쏟아지는 햇빛에 얼마든지 건강하게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살게 된 주택도 아직 내집이 아닌 새로운 환경이었다.

우리 마음에 들게 우리가 설계를 했고, 그 설계대로 잘 지어진 집이니 마땅히 편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편한 내집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집을 지어본 사람들 사이에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집은 세 번 정도 지어보아야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집을지을 수 있다고 한단다. 우리는 생판 처음 지어보는 집이니 아무리 마음에 들게 지었다고 하더라도 빈틈이 없을 수가 없다.

집을 지으려고 할 때 나의 첫번째 선택 조건은 꽃들에게 '충분한 햇빛을!'이었다. 마당 가득 쏟아지는 햇빛이 좋았고, 집을 앉히는 방향도 남향을 택했다. 그 결과, 남서쪽에 위치한 도로에서 우리 집 거실이 너무 개방된 모양새가 된 것이다. 단지 안쪽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편이긴 했지만, 산책하는 사람들이 종종 집안을 기웃거렸고, 처음에는 인사차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차츰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졌다.

또 하나, 앞집과의 사이에 철제 울타리를 세웠는데, 이유는 장미넝쿨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앞집의 창고와 주차장이 우리 집 전면에 배치되어 있어서, 꽃밭을 예쁘게 조성해도,훤히 뚫린 철제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창고와 자동차가 시선을 방해하였다. 게다가 현관을 북쪽으로 내어, 앞집 사람들이 들고 날 때마다 수시로 인사를 하는 일이 살짝 부담스러워졌다.

아파트 생활 40년 동안 은연 중에 배인 사생활 보호. 현관 문만 닫고 들어가면 타인의 시선은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이 오롯이 우리들 공간에서만 살던 습관이 문제였다. 내 집에서 타인의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는 낯선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스멀스멀 우리의 편한 느낌을 흔들어대는 고약한 녀석이었다.

결국 합성목 울타리를 세워 도로쪽을 막고, 앞집 창고 쪽을 가리고, 그 다음에는 앞집과의 사이 철제 울타리에 덧대어 합성목으로 가려버렸다.

가리고 나니 깨끗하고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매일 인사를 주고받다시피 하던 앞집과 거리감이 생기는 느낌은 어쩔 수 가 없었다.

이야기의 순서가 바뀌었지만, 주택살이에 먼저 불편함을 느끼게 한 것은 뜻하지 않은 소음 때문이었다. 아파트에서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정화조 브로어의 소음 문제에 남편이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 아파트에서야 단지 내에 큰 정화조 시설을 만들어 관리사무소에서 관리를 하지만, 주택에서는 택지 안에 개별정화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요즘 큰 전원주택 단지에서는 오폐수 직관으로 처리하여 개별정화조를 설치할 필요가 없는 곳도 있지만 드문 편이고, 우리 단지는 소규모이기 때문에 개별정화조를 설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화조에 산소를 공급하는 시설인 브로어의 소리가 이제껏 살면서 들을 필요가 없었던 소리인지라, 조용한 집안에서 그 소리가 날때마다 남편이 힘들어했다. 합판으로 박스를 만들어 씌우기도 하고, 방음 스펀지를 사서 붙여보기도 하고, 가끔 꺼 보기도 했지만, 끄면 벌금을 물 수 있다고 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도로쪽 울타리를 만들면서 브로어 케이스를 함께 만들었다. 좀 나아진 편일까. 요즘은 남편이 브로어 소리에 그전보다는 덜 신경쓰는것 같다.

세 번째 이야기는 꽃밭이다.

우리 땅은 경사진 산을 깍아 조성한 토지다. 아랫집과는 높이가 5m 이상 차이가 나서 2단으로 보강토 블럭을 쌓아, 건축 허가 신청을 할 때 구조안전 진단을 따로 하기도 했다.

우리가 이 땅을 살 때는 반만 평평한 모양이고 나머지는 그냥 야산의 형태였다. 높은 곳은 깍고, 낮은 곳은 성토를 하여 평평하게 땅을 만들었다. 산흙 위에 집을 짓기 위해 마사토를 한 트럭 이상 깔았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했던 모양이다. 꽃밭 조경 공사를 할 때 마사토를 더 넣어야 할 것을 안 넣어도 되겠다는 업체의 말을 모르니까 믿을 수 밖에 없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면서 꽃밭이 진구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마침 그곳에는 습기에 약한 다알리아 등을 심어두었는데, 폭우가 끝나고 식물들이 정신을 차리고 예쁜 꽃을 피울 때 쯤에 그곳 식물들은 하나 둘 썩어나가기 시작했다. 놀란 우리는 골재 회사에 가서 마사토를 한 트럭 사서 삽으로 양동이로 옮겨 특히 진창이던 곳의 흙과 섞어주는 등 애를 썼다. 물길도 따로 만들지 않아서 비만오면 꽃밭에 나가 물길을 터 주느라 비를 홀딱 맞기 일쑤였다.

산흙에 거름기가 없어서 식물들도 잘 자라지 못했다. 퇴비를 따로 넣지 않아서 분갈이용 흙이나 숙성 퇴비를 사서 지금도 흙과 섞어주고 있다. 꽃밭에 꽃을 심기 전에 먼저 했어야 하는 일을 나중에 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를 더 사서 심고, 울타리를 다시 하고, 태양광 주차장을 만들면서 심어놓은 나무와 꽃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는 일도 숱하게 했다. 올해 처음이라서가 아니라, 몇년씩 사는 사람들도 더러 식물들을 자주 옮긴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지만, 여러 번 옮긴 나무들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것도 있어서 걱정이 된다.

벌레나 개미 같은 것들이 집안으로 많이 들어올까봐 걱정했는데, 숲세권 아파트에 살면서 노린재 등이 수시로 집안으로 날아들 때에 비하면 오히려 벌레는 없는 셈이다. 집을 지을 때 단열과 밀폐가 중요한데, 그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다만 여름에 자주 햇빛에 노출되다보니까, 선크림이나 모자가 무색하게 얼굴이나 팔다리가 많이 타고, 아침 저녁으로 주로 일을 하게 되는데, 야산이 가깝다보니까 모기에서 수시로 물리는 점은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긴 팔과 긴 바지에 모자를 쓰고, 얼굴까지 감싸라는데, 더운 여름에 그렇게 일하기가 쉽지 않다.

또하나 배달과 마트 문제인데, 배달은 원래 우리가 외식도 잘 안 하는 편이라 큰 문제가 아니었고, 읍내다 보니까 제법 큰 마트들이 많아서 큰 불편은 느끼지 못한다. 다만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트는 없기 때문에, 차로 가야 한다. 버스는 자주 있지도 않지만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병원은 내과, 안과, 피부과 등의 진료를 보았는데, 읍내 중심 상가 쪽으로 가면 병원이 모여있어서 쉽게 이용하였다. 다만 큰 병원이나 치과, 정형외과는 아직 기존에 다니던 병원으로 한 시간 넘게 걸려서 다니고 있다.

집 지은지 8개월, 완전 이사를 한 지는 6개월째다. 서울 집도 팔렸으니 되돌아갈 수도 없다. 이제 이 집이 내집 같고, 이 동네가 익숙해졌다.

아직 세 계절을 살았지만, 앞으로 네 계절을 한 해 두 해 살아나갈 때마다, 아파트 생활을 접고 주택 살이를 하게 된 우리의 선택이 꽤 괜찮은 일이었다고 느끼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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