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을 미루고 있었다. 서울 아파트에 살 때보다 덜 움직이는 셈이다.
아파트에서는 언제든 눈만 오면 다음 날 산행을 나섰다. 선자령과 함백산은 손쉽게 떠나던 눈 산행지다. 이번 겨울 아직 두 군데 다 가지 않았다. 눈이 억수로 온 날 우리는 자발적으로 양평에 갇혔다. 그냥 집 안에서 며칠을 집 안의 눈을 실컷 보며 지냈다.
왜 산에 안 가냐고 물었더니 추운데 산행을 갔다가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냐고 말한다. 작년과 올해의 체력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차를 새로 바꾼 것도 이유가 된다. 아직 풀옵션으로 산 새 차의 여러 기능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고속도로를 타고 먼 길을 나서는 것도 조심스러워한다.
충주 종댕이길 트레킹 후 한 달 만이다. 인제 자작나무숲을 찾았다. 여러 번 다녀와서 익숙한 곳이다. 강원도답게 숲길은 하얀 눈이 그대로였다.
기온은 최저 영하 5도 정도. 시간이 갈수록 기온이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눈이 녹을 정도는 아니었다.
입구에서 자작나무 숲까지는 넓은 임도로 걸어가는 곳이라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눈길에서 사고가 날까 봐 입구부터 아이젠을 착용하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길이 세 가지 코스가 있었지만 허용된 길은 임도길 밖에 없었다. 산길로 가려고 스패츠와 아이젠 등 완벽하게 준비를 해 온 우리는 약간 김이 샜다. 그래도 출입을 금한 길을 가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보다 더 창피한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임도길로 올라갔다.
겨울에 여행하기 좋은 곳으로 인제 자작나무숲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날도 꽤 많은 방문객들이 있었다. 험한 산길이 아니기 때문에 가벼운 복장으로 산책하듯 들르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도 눈길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운동화에 부츠에 간단한 아이젠이라도 신겨서 보내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모든 방문객들에게 의무적으로 아이젠 착용을 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 방침이다.
자작나무의 수피는 그야말로 하얀색. 눈이 오면 윈대리의 숲은 그야말로 순백의 숲으로 변신한다. 하얀 눈밭에서 하얀색 자작나무가 시원스럽게 쭉쭉 뻗어있는 모습은 판타지 동화나라의 느낌이다
지난번 폭설이 왔을 때 우리 집 정원에도 나무들이 눈의 무게 때문에 많이 휘어져서 부러질까 봐 눈을 털어준 일이 있었다.
보통 설화 또는 설해라고 하면 눈의 무게 때문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도 설해를 당한 것 같았다. 잎이 다 떨어진 활엽수는 거의 설해를 입지 않는다. 부러지는 나무들은 침엽수가 대부분이다. 침엽수는 겨울에도 잎이 그대로라 눈이 많이 쌓여 아름다운 설경을 자랑하는 한 편 설해도 입기 쉬운 편이다.
그런데 자작나무가 설해를 입어 휘어진 것이다. 자세히 보니 잔 가지가 많은 편이며 열매도 달려있었다. 자작나무 숲에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눈이 자작나무에 얼마나 쌓였길래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버린 것일까. 처음 보는 광경에 신기하여 감탄을 하다가 생각해 보니 안쓰러웠다. 과연 그 나무들이 원상으로 회복될 수나 있을지.
혹시 해서 검색해 보니 작년 12월~2월 사이에 폭설과 많은 양의 겨울비로 휘어진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봄이 되어 다시 꼿꼿하게 일어섰다는 기사를 보았다.(출처: 2024. 4. 17. 강원일보)
하지만 모두 회복하지는 못한 것인지 5월과 9월에 올린 블로그 글에서 휘어진 채로 있는 자작나무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이번 11월에 내린 폭설은 백여 년 만에 최고의 기록이라고 한다. 양평에도 거의 40cm 정도의 눈이 내려 쌓였다. 게다가 습설이었으니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게다. 비교해 보니 사진으로 확인한 것보다 훨씬 많은 범위의 나무들이 휘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또 설해를 당해 많은 나무들이 휘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부러지지 않고 휘어진 것을 보니 자작나무가 좀 유연한 편인가 보다.
올봄에 그랬듯이 다시 봄이 되면 꼿꼿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바램을 담아 갈대처럼 휘어진 자작나무의 사진을 많이 올려보았다. 휘어진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수피와 하얀 눈밭의 어울림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눈밭과 어울리는 하얀 수피를 가진 자작나무. 나는 그들을 나무의 귀족이라고 부른다.
처음 휘어진 자작나무를 만났을 때는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휘어진 이유를 생각하고 내 마음은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
포토존 날개와 나비. 순백의 분위기에 나비의 색이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떨어진 침엽수 잎 조각이 새 모양이라며 남편이 신기해한다
토끼 발자국도 있었다.
달맞이숲으로는 출입 금지라 이곳에서 되돌아가기로 했다.
가을에 단풍나무들이 예쁘게 물들면 또 다른 멋진 풍경 사진이 나올 것 같다.
휘어진 나무들을 다시 담는다. 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꼿꼿하게 바로 섰으면 좋겠다. 갈대처럼 말고 자작나무답게 쭉 뻗은 바른 자세로 서렴.
스틱을 준비하지 못한 가벼운 차림의 방문객에게 인기 있었던 나무 지팡이들. 꽤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녀서 준비된 지팡이가 동이 나지 않았나 했는데, 얼마나 많이 준비해 두었는지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오랜만의 겨울 트레킹을 마무리하면서 올 때마다 늘 구입하는 송고버섯에 상품권을 쓰고, 이번에는 메밀 과자도 한 봉지 사서 돌아왔다.
다음에 다른 계절에 다시 찾게 되면 휘어진 나무들이 초록 잎을 팔랑거리면서 꼿꼿하게 바로 선 자세로 우리를 맞아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