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기

동그란 은행나무

by 세온

어제 구로동 대학병원에서 건너편을 향해 찍은 사진이다.

서울이 열섬 현상으로 같은 위도 상의 지역보다 기온이 높은 편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가을의 끝자락을 찾아다니며 단풍 여행을 마무리하려던 나로서는 셔틀버스가 지나는 병원 주변 아파트와 병원 곳곳의 곱게 물든 단풍나무, 벚나무들이 뜻밖의 선물 같아 참 반갑고 고마웠다.

병원 옆의 가로수가 은행나무였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감상하려는데,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동그란 은행나무다.

전봇대에 치렁치렁 걸쳐진 전선과 통신케이블을 건드릴까 봐 최소한의 모양으로 다듬다 보니 생긴 모양이겠지.

은행나무 가로수길의 아름다움을 누리고는 싶지만, 떨어지는 낙엽이나 발에 밟혀 고약한 냄새를 유발하는 열매 때문에 퇴출 대상이 된다고들 하던데, 용케 버티고 있는 걸 보면 확인은 안 해봤지만 이곳이 은행나무와 관련 있는 지역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시골의 가로수는 잎이 떨어져도 그 잎을 치우는 일이 별로 없지만, 도시의 도로는 가로수 잎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낙엽을 치우는 일도 큰 일이다. 11월이면 특히 큰 잎을 자랑하는 금천구의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는 낙엽을 쓸고, 나무를 자르는 일을 대대적으로 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도시의 나무가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뼈를 깎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라서 더 큰 도시인 서울로 옮겨 살아온 세월이 60년을 넘었다. 도시에서 사람이 살기에는 시골보다 편한 게 맞다. 교통도 편하고, 먹거리나 생필품을 마련하는데, 또는 아플 때 병원을 찾는 일에 불편을 겪어본 기억이 없다.

시골로 이사한 것이 2023년 3월이니 3년이 다 되어간다.

다니던 대학병원 진료를 위해 아침부터 나서서 여행하듯 기차 타고 전철 타고 여유 있게 출발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서울역에 내려 1호선 전철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전철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승객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1호선 전철역에서 시위한대요."

어떤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안전요원이 계속 안내를 하고 있었다. 혼잡하기 이를 데 없다.

겨우 전철을 타고 구로역까지 콩나물시루를 연상하면서 불편함을 참고 갔다.

셔틀버스를 타러 가는데 이번에는 구로역 연결통로 보수 보강공사 중이란다.

임시 통로로 빠져나와 육교 아래에 줄을 섰는데, '쾅!쾅!쾅!' 귓전을 때리는 공사 소음이 견딜 수 있는 데시벨을 넘어선다.

한참을 견디고 섰는데, 한 무리의 자원봉사자들이 육교 주변의 쓰레기를 청소하면서 지나간다.

생활에 편리한 도시에 살기 위해서는 사람도 견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소음, 혼잡, 오염으로부터, 또는 내가 아파트에 살 때 힘들어했던 층간소음이랴든지.

수렴동 계곡에서 그렇게 예뻤던 복자기나무가 신림동 산복도로에서 단풍도 들지 못하고 시커멓게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은행나무는 도시의 공기 오염에는 복자기니무보다는 강한가 보다. 모양은 공처럼 동그랗게 잘렸지만 그래도 노랗게 물들어 도시의 도로를 감성 있는 가을로 채워주고 있으니.

시골로 이사 와서 시골의 평화를 맛본 내가 다시 도시로 가서 살 수 있을까. 도시의 동그란 은행나무처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견뎌 내면서.

다소 불편하지만 시골의 평화를 택할 것인가, 조금 견디면서 도시의 편리함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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