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한마디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feat. 꼰대 아니고)
인생을 살다 보면, 필요할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지 않나요?
저는 좁은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때마다 여의도성모병원의 지독히도 좁은 지하주차장이 떠오릅니다.
사회 초년생이자 초보 운전자였던 저에게 그 주차장은 공포 그 자체였죠.
그때 고객이었던 소아과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벽을 보지 말고 앞만 보세요. 따라가다 보면 잘 내려갈 수 있어요.”
그 말은 아직도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때마다 제 귀에 들립니다.
벽에 부딪힐 것 같아 본능적으로 벽을 쳐다보려는 순간, 그 말이 저를 전방을 보게 이끕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아무리 좁은 주차장도 무사히 내려갈 수 있습니다.
제가 집을 살 때도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제값에 샀나?’, ‘집값 떨어지면 어쩌지?’
혼자 끙끙거리던 저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집은 비싸게 주고 사도 돼.”
그 말 덕분에 가끔 ‘내 것’이어야 하는 물건 앞에서 망설이는 제가 과감한 선택을 할 용기가 생깁니다.
운동은 또 어떨까요?
운동이 너무 귀찮을 때, 제 운동 멘토였던 직장 동료가 알려준 말이 떠오릅니다.
(다른 브런치글: 멘토가 몇 명인가요?)
“딱 스쿼트 10번만.”
이 말은 참 신기합니다.
정말 10번만 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작하고 나면 30번 이상 하게 됩니다.
시작의 마법을 여는 주문 같죠.
작년엔 계속 하락하던 테슬라 주식을 결국 팔았는데, 이후 트럼프 당선 후 주가가 급등했어요.
그때 절 위로해 준 주식 멘토의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그 돈은 내 돈이 아니었다.”
정말 그랬던 거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저는 확신이 없을 때, 실행이 두려울 때,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이런 한마디들이 떠오르며 저를 도와줍니다.
돌이켜보면, 이 말들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난 가이드 같기도 합니다.
이제 나이가 들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도 언젠가 내 자식이나, 젊은 동료에게 그런 한마디를 남길 수 있을까?
몇 년 전, 스물대여섯의 지인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저에게 도움을 청했고, 저도 도와주고 싶어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영상, 교육 프로그램, 카톡으로 건넨 말까지 —
제 나름대로는 좋은 한마디를 건넨다고 했던 것이죠.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예의 바른 지인은, 사실 부담스러웠지만 참아준 거였습니다.
그때 저는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내가 겪었고 좋았던 말’이, 꼭 다른 사람에게도 약이 되지는 않는다.
“미안, 난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었어.”
지금 생각하면, 그건 꼰대짓이었고
진짜 도움이 되지 못했던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고민합니다.
어떻게 해야 제 경험과 통찰을 담은 ‘한마디’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런 저에게 요즘 밀고 있는 한마디가 하나 있습니다.
“귀찮거나 힘든 일이 있다면 그것부터 해라.
내 번민을 짧게 끝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기 싫은 과제? 그거부터 해버려.
그러면 그 다음 시간들을 성취감과 평온함으로 채울 수 있어.
약사로서도, 저는 제 나름의 좋은 ‘한마디’를 찾고 있습니다.
복약 지도를 할 때 간절한 눈빛으로 조언을 구하는 분들을 만나면
많은 말을 해드릴 수 있지만, 정말 도움이 되었을지는 늘 고민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에게도 먹히지 않았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이약사의 한마디'들이 많았죠.
그래서 ‘이약사의 한마디’는 지금도 공부하고, 계속 고민하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보다 제가 먼저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한마디로 제 삶을 단단하게 채워야, 언젠가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필요할 때마다 떠오르는 ‘그 한마디’가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