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는 했다.
모든 슬픔과 아픔, 너에게 느꼈던 미움과 배신을 이겨서, 그걸 억지로라도 밟아서 너와 다시 걷고 싶곤 했다.
끝이 없는 불안과 아픔의 고리가 끊이지 않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던 날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세상에 쉬운 건 없다"고 나보다 먼저 인생을 경험해 본 여러 사람들이 말한다.
쉬운 게 하나 없는 세상에서, 하물며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며 진심을 나눠야하는 사랑은 어땠겠을까.
맞다.
내게 사랑은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져있는 난제이기도 하다.
사랑은 어려운 질문이다.
분명히 풀어갈 수는 있지만 정확히, 그리고 그 풀이가 빠르게 진행되지는 못한다.
'이터널 션샤인' - 영화에서와 같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건 바람이 지나갈,
그 바람을 느낄, 그 정도의 시간만 있어도 되지만
사랑 안에서 헤엄치는 것은 부표도 없는 깊은 다이빙장 안에 갇혀있는 것과 같다.
그 곳에서 물 맛을 느껴도 보고,
깊게 들어가다 코로 물을 먹어보기도 하고,
귀에 물이 들어가며, 몸이 불어 터지는 상황을 지속해서 경험하게 된다.
상대의 깊은 곳까지,
모든 걸 보게 되고 경험하게 된다면,
사랑이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달콤하지 않음을,
따뜻하지 않음을
그리고 안전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러다 익숙해져버린 상대에게 실망하고 지루하게
되어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 그 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랑의 배수구’를 열게 된다.
물은 점차 조금씩 줄어들어
결국 다리가 땅과 맞닿게 된다.
사랑이 저문 후 ‘공허’를 만나는 것이 바로 이 순간이다.
물이 가득 채워져 있던
(이제와서 이야기하는, 물은 사랑임을 첨부한다)
다이빙장에서 아무것도 없는 깊은
허무의 공간을 만나게 되면 괜히 무섭고 두려워
다시 물을 만나고 싶어한다.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두려움에 안긴 순간이 바로 사랑이 미화되는 순간이다.
이전과 달라진 상황에서,
그 어두운 공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같은 결과가 뻔히 도출될 선택을 하는 것(물을 찾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우리는 깊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건 물 뿐만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그 해결책은 사다리가 될 수 있으며, 줄도 될 수 있다. 하물며 지푸라기도 그 공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해결책을 찾아내며
사랑의 어려움, 미화성, 그리움을 이겨내고는 했다.
사다리 찾기를 예로 들어보도록 하겠다. (여기서 사다리는 공허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매개체) 눈 앞에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가만히 있다고 해서 사다리가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나가려면 밟아야하고, 밟으려면 찾아야하고, 찾으려면 움직여야한다.
그래서 나는 우선 움직였다.
무섭고 불안했어도 나를 깨우는 일을 먼저 하려했다.
한참을 걸었다.
해가 부신 날에도, 날이 흐린 날에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보면, 움직이는 내게,
반대로 찾아오는 것이 많았다.
새로운 것과 눈빛을 나눴고,
웃음을 나눴고,
그러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며 나는 건져졌다.
움직이지 않았으면 얻을 수 없는 손짓이었다.
나는 이제 공허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안다.
현명하다고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그럭저럭 ‘나간다’라는 목적을 달성한다.
때문에, 나는 너를 다시 사랑하지 않는다.
‘너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바보 같은 질문 또한 던지지 않는다.
나는 나를 깨우며 사랑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제 내게 묻는다면, 아픈 것도 사랑이냐 묻는다면,
잔인하게 찢어진 마음과 아물수도, 달랠 수도 없이 비참한 흔적마저 사랑이냐 묻는다면.
세상의 어느 것도 사랑하지 않았냐고 물을 것이다.
네겐 저 잔디 밭의 초록색 물결이,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이, 바닷가의 눈부신 윤슬이, 그 찬란함이 사랑이 아니였냐고 물을 것이다.
사랑은 저 잔디 밭의 포근함을 지닌 것이다, 밤하늘의 아름다움과,
바닷가의 벅찬 뜨거움을 흘러내리도록 담은 것이다.
내게 묻는다면, 다시금 사랑을 묻는다면, 이 그대로를 전해줄 것이다.